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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환 Nov 04. 2023

내가 앞으로 더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2가지

내가 행복을 느끼는 지점

내가 행복을 느끼는 지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1. 성장
2. 기여


두 가지인데, 둘 다 어쩌면 세상의 본질, 어쩌면 법칙에 가까운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이를 정리해두고 싶어 글을 쓴다.


1. 성장에 대해서

나는 발전하거나 더 나아졌을 때 왠지 모를 뿌듯함과 행복을 느낀다. 흥청망청 술을 마시거나, 집에 틀어박혀 웹툰을 보거나, 의미 없는 친목 도모 등의 행위에선 그다지 행복을 못 느낀다. 일시적인 만족은 내가 발전했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대체 나는 왜 더 나아졌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성장에서부터 시작해서,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우주까지 닿았다.

혹자는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바로 변화한다는 사실 자체라고 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질적인 것은 당연히 사라지거나 변하기 마련이다. 사람의 육체도 나이가 들고, 노화하고 죽는다.


비물질적인 것은 어떨까? 대표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 같다. 어제 가졌던 생각이 다음날 변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번외로, F감성에 위배되지만, 사랑도 영원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내 기준에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건 없다.


지금도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는 우주처럼, 모든 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모든 게 변한다. 나도,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이 변화하는 '모든 것'에 포함된다. 그러니 사람이 변화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이치인 것이다.


그런데 변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안정만 고집한다면?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법칙을 거스르면 살 수 없다.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서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죽는다. 마찬가지로 사람인 우리도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변화도 긍정적인 방향이 있고 부정적인 방향이 있다. 내 생각에, 성장은 긍정적인 방향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어제보다 나은 나, 더 발전한 내가 되는 성장이 그렇다. 반면, 부정적인 방향은 퇴보라고 생각하기에, 확장하는 우주의 성질과는 반대된다. 우주는 축소하지 않고 무한히 확장한다. (자꾸 우주 얘기를 해서 뭔가 사이비 종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나는 무교이다.)


어찌 됐든, 세상의 이치 자체가 변화와 확장이기에, 성장은 이 법칙과 나란히 갈 수 있는 가치관이다. 지금의 나로선 성장했을 때 내가 행복감을 느꼈던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단지, 성장이 자연의 이치, 본질과 밀접하게 관련돼서 그런 것이라고 볼 수밖에.

더 나아가서, 우리는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장은 어쩌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일 수도 있다. 


혹자는 우주의 성질과 비슷하다고 무조건 성장을 추구하라니,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성장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바로 두 번째 키워드인 '기여'와 관련된다.


2. 기여에 대해서

내가 기여를 내 행복의 기준으로 삼은건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비롯됐다. 학부 시절 선배에게 전공 관련 질문을 받고, 친절히 설명해 드렸던 적이 있다. 나의 전공은 AI와 다소 동떨어진, 조선해양공학이었는데, 그때 선배가 물었던 건 선박을 조종하는 공학의 일종으로 선박조종론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다소 어렵긴 했지만, 열심히 공부했었던 부분이기에 질문받았던 부분을 수월히 답할 수 있었다. 당시에 선배가 내게 엄청 고마워했었는데, 그때 뭔가 굉장한 행복감을 느꼈다. 나는 그게 내가 학문에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고 대학원을 진학하게 된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를 기쁘게 했던 것이었다. 학문과는 별개였다. 물론 공부도 재밌긴 했지만, 막 짜릿하게 행복한 그런 순간은 없었다. 있다면, 학문에 국한되지 않는, 성장했기 때문에 느꼈던 행복이었다.


아무튼 기여할 때 행복을 느꼈는데, 이게 세상의 이치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이란 걸까? 그걸 이제 말할까 한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오직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
- 아인슈타인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맞는 말이라고 여겨졌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2가지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봉사받거나, 봉사를 하는 것이다. 가령, 집에서 넷플릭스를 본다. 재밌는 콘텐츠를 제공해 준 넷플릭스로부터 봉사받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도, 누군가가 봉사를 해줬기에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누군가 디자인하고 원단을 수급하고 만든 것이다. 살고 있는 집도 누군가가 땀 흘려 건축하고, 인테리어 하는 등 많은 사람이 봉사한 결과이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모니터 화면도, 노트북의 화면도 누군가가 고민하고 


한마디로 얘기하면, 봉사가 세상을 이룬다. 즉, 누구에게 무언가를 도와주는 행위가 세상의 이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행복을 느끼는 지점은 기여, 다르게 말해서 봉사다. 


봉사, 기여가 없는 세상은 없다. 기여가 세상을 이루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이를 추구하는 게 되게 바람직하다고 생각됐다. 계속 기여를 추구하다 보면, 세상의 이치를 순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갈수록 원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서핑을 할 때 파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서퍼(surfer)'처럼 말이다.



결론

더 많이 기여하려면, 그만큼 세상에 줄 수 있는 게 많아야 한다. 즉, 더 성장해야 하기에 성장을 추구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래서 어쩌면 성장과 기여를 추구하는 건, 세상의 본질적인 이치와 닿아있다고 생각했다. 성장과 기여 모두세상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그렇기에 성장과 기여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건 더할 나위 없는 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며 더 성장해서 보다 많이 기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데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다 다르다. 그런데 나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성장과 기여를 추구한다. 그런데, 두 가지 가치관은 세상의 이치와 밀접하게 관련됐기에 나는 순항할 수밖에 없다.


순항하고 있기에, 더 성장하고,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 행복은 더 커질 것이다. 나의 행복을 세상이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AI 기술로 당신이 세상에 기여하는 것을 돕습니다.
디피니트 대표 김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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