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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석 Myste Lee Nov 12. 2017

우리 모두는 '멜랑콜리'하다.

이 시대의 멜랑콜리


우리가 슬퍼지는 때는, 무언가 잘 안되고 있을 때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거나, 오랫동안 준비해온 것이 허무하게 끝이 났을 때, 기다리던 날이 갑자기 밀리거나 취소가 되었을 때도 슬프다. 긴 편지를 쓸 수는 있지만, 결코 당사자가 읽지 못하는 상태일 때. 내 마음을 다 보여주고 싶지만 그 마음을 전달하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을 때, 우리는 아프다. 인정받지 못하고, 잘 해내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놓치고, 미움을 받고,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다른 이는 알 수 없는, 오로지 이 세상 나만이 알 수 있는 그 아픔을 온전히 견뎌내고 흘러 보내야 한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던 일일수록  더 깊은 슬픔을 남기고, 흘러가버린 거 같지만 그 슬픔들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돈다. 언제였을까? 무심코 툭 튀어나오는 ‘행복하다’라고 던졌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을 감내해가며 해야 할 일들을, 언제나 노력하고 있음에도, 웃을 수 있는 날이 별로 없다. 치덕치덕 슬픔만 우리의 몸에 묻는다. 


내게 성공은 언제나 먼 단어였다. 노력 끝에 오는 달콤한 열매란 나에게 열리지 않은 미지의 무언가였다. 잦은 실패에 늘 움츠려 있었고, 늘 도전은 했지만, 종착지는 한결같이 실패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을 끈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울었다. 텅 빈 방안에서 엉엉 울어도 좋으련만, 내 슬픔이 새어나갈까 두려워 숨죽여 울곤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는데, 이번엔 이룰 거라고 자신했는데, 잘해보려고 노력해도 늘 그 자리였다. 나를 보며 한숨 쉬는 엄마에게 죄송하고,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는 아버지에게 죄스러웠다. 아무리 해도, 늘 죄스럽고, 미안해해야 하는 일들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게 찾아왔다. 하나를 겨우겨우 넘어가고 난 다음에, 또 다른 하나를 힘겹게 넘어간 다음에도 어려움은, 슬픔은 늘 나를 다시 찾아왔다. 


사실 ‘행복’과 ‘성공’은 동일어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와 ‘불행’은 동일어라고 느낀다.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거나, 우리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했을 때 우리는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동시에 불행하다고 느낀다. 사실 성공은 그냥 ‘뭔가를 잘하고 있다’라는 의미이다. 티비 속에서, 혹은 주변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부러워하지만, 실상 그 사람도 온전히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 사람이 이룬 ‘성공’적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 영역이고, 아마 나머지 영역은 우리와 다름없이 끊임없는 실패의 연속일 것이다.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라는 것은 사실 없다. 


좋은 삶이란, 아니 행복한 삶이란, 우리가 어느 부분에서 성공적 여야 하는지, 행복해야 하는지를 현명하게 선택해가는 과정이다. 사업가로서는 실패했지만 행복한 한 아버지를 알고 있다. 그는 큰 차와, 큰 집은 없었지만 사랑하는 딸이 4명이나 있었고, 아들도 한 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4명의 딸과, 1명의 아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꼈다. 그는 많은 돈을 벌지 못했지만, 우리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둘러보면 그렇게 성공적인 사람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그리고 순간순간 그들의 성공을 선택하며 현명하게 자신의 삶을 꾸리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버지 또한 슬퍼했다. 더 해주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슬픔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못한 사랑에, 직업에, 결과에, 또 어떤 것에.


그런 한국인에게 '알랭드 보통'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들은 행복하지 않아요. 사실 그렇게 행복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인에 대해 사랑하는 점은, 그들은 그들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행복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한국인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죠. 그건 굉장히 좋은 시작입니다. 그들은 슬퍼할 줄 알아요. 한국인들 만에  멋진 ‘멜랑콜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슬퍼하며 살아간다. 행복하다 위장하지 않고. 우리의 슬픔에 직면한다. 우리의 실패를 모르는 척하지 않는다. 울고 아파할지라도, 우리가 행복할 권리를 향해 또 살아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린 또 울고 아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의 울음과 아픔에 지적할 수 없다. 설령 실패에 빠져 있더라도, 슬픔에 잠겨 있더라도 우리는 분명 어떤 영역에서는 대단히 성공적인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가끔 우리에게 슬며시 다가와 손을 내밀고 같이 걸어가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슬픔속에서 현명한 선택을 찾아가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누군가와, 또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는 당신은 얼마든지 슬퍼할 자격이 있다. 그런척 하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의 한 영역에서 성공할 자격이 있다. 

울어라, 소리 내서 크게 울어라. 당신의 '멜랑콜리'를 응원한다. 


글_사진 이인석 (Myst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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