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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Sep 22. 2024

현실판 골 때리는 그녀가 된 이유

풋살이 내 삶 안으로 들어왔다

모든 것은 당근마켓에서 시작되었다.


2년 전쯤 당근마켓 앱 내에 동네 생활이라는 탭이 생겼길래 동네에 무슨 재미있는 소식들이 있나 기웃거렸다. 같이 밥 먹을 사람, 산책할 사람,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는다는 소식들 사이에서 눈에 띈 글이 있었다.


왕초보 풋살* 모임 모집. 남녀 상관없음

*풋살: 실내 축구의 한 형태, 골키퍼 포함 5명의 선수가 뛰는 미니 축구


글쓴이는 K7 리그 소속 팀에서 뛰고 있는데, 감독, 코치 쪽 진로도 생각하고 있어 재능 기부로 알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살짝 콩닥거렸다. 헬스, 폴댄스, 스쿼시 등 다양한 운동을 해왔고, 테니스, 발레, 복싱 등 언젠가는 도전할 운동 버킷 리스트가 있었다. 하지만 축구(풋살)는 그 버킷리스트에는 한 번도 포함되지 않은 운동이었다. 하지만 그 당근마켓의 글을 보자마자 내가 항상 원해오던 기회가 눈앞에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SBS에서 방영하는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프로그램의 존재는 알았지만 한 번도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유튜브나 TV를 통해 콘텐츠를 스쳐 지나가듯이 봤던 적이 있고, 찰나의 순간에 내 마음속에 축구라는 씨앗이 심어졌던 것 같다.  


단톡방에 초대되었고,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다. ‘나 혼자만 여자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여자는 나 포함 4명이나 있었다. 확실히 풋살이라는 스포츠에 여자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이 분명했다. 대망의 첫 모임은 무더운 8월의 어느 토요일 오전 8시로 정해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풋살화, 반바지, 무릎까지 올라오는 축구 양말, 신가드(정강이 보호대) 등의 물품을 구매했다.


용산역 아이파크몰은 쇼핑하거나 영화를 보러 자주 갔지만, 여기에 풋살장이 있는 줄은 몰랐다. 역사 한쪽에 마련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8개의 구장이 자리한 숨겨진 야외 공간이 드러났다. 그제야 용산역, 아이파크몰 내부를 짧은 반바지를 입고, 운동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슬리퍼를 찍찍 끌며 다니는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풋살 하러 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풋살화의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직사각형 모양의 인조잔디 구장 안으로 들어가 풋살공을 터치하는 게 참 낯설었다. 또래 남자애들은 초, 중, 고등학교 쉬는 시간마다 땀 뻘뻘 흘리면서 했던 흔한 운동을 왜 나는 서른 살이 넘은 지금에서야 하는 것일까.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나 발야구. 체육 시간 때 남녀의 운동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왜?라고 딱히 의문을 품지도 않았고 그냥 순순히 따랐다. 땀 흘리면 큰일 나는 것인 마냥 그 나이 때 여자들은 몸을 사렸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매점을 가거나 자리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수다 떨기 바빴다. 행여 거칠게 플레이하는 남자 애들이 찬 공에 맞을까 봐 운동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누구도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운동장은 금녀의 구역처럼 느껴졌다. 대학교에 들어가니 축구, 야구 운동 동아리가 있었지만 이때도 역시나 선수 회원은 남자들만 모집했고, 여자들의 자리는 매니저로서만 존재했다.


축구를 할 기회는 없었지만 만약 내가 축구를 하게 된다면 꽤나 잘할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자신감이 있었다. 학창시절 체육 시간에 운동할 때 피부보다는 발야구를 더 잘하는 편이었는데, 첫 타자로 나서서 공을 찰 때 항상 뻥하고 멀리 잘 뻗어갔기 때문이다. 그때의 짜릿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건 착각일 수도 있지만 남들보다는 예민한(?) 발 감각을 가진 것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문을 밀 때 손 대신 발을 이용해서 문을 민다든지, 양말을 빨래통에 넣을 때나 쓰레기를 주울 때 발가락을 한 껏 오므려 집게처럼 쓰는 등 발을 항상 잘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둥근 공은 그냥 차면 앞으로 잘 나가는 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앞으로 패스를 하고 싶었는데 공은 왜 엉뚱한 방향으로 떼굴떼굴 굴러가는 것 인가. 골대 앞에서 호기롭게 슈팅을 하려고 달려왔는데 헛발질을 하질 않나. 공은 분명 가만히 있었는데 그걸 못 차다니 너무 창피했다.


기본 훈련을 마치고 미니게임을 하는데 뜨거운 8월의 여름 햇살 아래, 얼굴을 한껏 벌게지고 심장도 터질 것 같았다. 눈앞에 공이 있는데도 몸이 무거운 나머지 타이밍을 놓쳐서 상대 팀에게 빼앗기고, 공이 내 발에 걸리면 뻥뻥 걷어차기에 급급했다. 그래도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슈팅을 꽤 여러 번 때렸고, 놀랍게도 이날 3골을 넣었다.


2시간의 훈련과 게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흥분감이 쉽게 가라 앉지 않았다. 풋살 진짜 너무 재밌는 거 아닌가!


솔직히 풋살화를 살 때만 해도 ‘한 번만 신고 당근에 팔아야 하나’ 걱정했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은 기우였고, 오히려 한 켤레 더 사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할 처지다.


이때만 해도 몰랐다. 풋살이 내 삶에 비집고 들어와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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