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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피아노 Sep 15. 2023

내 연주는 몇 점짜리인가요

피아니스트의 점수

내게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던 그는 다른 이의 연주 실력에 대한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의 기준은 몹시도 까다로워 그의 인정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았기에 그가 잘한다고 평가한 이는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 나는 그가 혹시 다른 이에게 내 연주 실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지,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면서도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중학교 1학년 첫 실기 시험 성적 받는 날. 나보다 먼저 성적표를 받은 앞번호 아이들이 자신의 등수가 적힌 엄지손가락만 한 종이를 보고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둘 울음을 터트렸다. 뒷 번호라 아직 내 등수를 몰랐던 나는 이 생경한 광경에 몹시 당혹스러웠다. 과연 나는 내 성적표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내 얼굴을 드러내며, 평소에는 짓지 않을 표정을 지으며, 말로 하기 부끄러운 감정을 손끝으로 표현 한 그 순간에 매겨진 점수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점수가 마치 우리의 존재에 매겨지는 점수로 쉬이 여겨버렸다. 타인이 나를 그렇게 평가한다고 믿으니 나도 타인을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고 등급 매기는 일은 당시로서는 결코 못난 마음이 아니었다. 그렇게 서로 상처 입히고 상처받았다.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나도 모든 이의 등급을 매겼고 그 안에서 나는 어디쯤일까 생각하며 위축되기도, 오만하기도 했다. 누가 나를 평가한다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으면서 아무도 몰래 나도 그러고 있었다.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은 왜 나의 존재 가치를 이토록 자주 건드리는가. 화창한 날 산들바람을 맞을 때는, 좋아하는 이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예고 없이 슬픈 일이 찾아올 때는, 내 연주에 매겨진 점수 따위는 하나도 중요한 일이 아닌 데 말이다. 


오늘의 연주는 그저 내가 가진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일 뿐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좋아할 수도, 또 싫어할 수도 있지만 그건 그저 이야기이므로 그가 나를 좋아하냐 싫어하냐 와는 무관하다. 이 사실을 몰라 그럴 필요 없었는데 슬펐던 날들이 많았다. 피아노는 여전히 내가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이지만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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