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저녁을 먹고, 좋아하는 토크 유튜버의 동영상을 틀어놓고 낄낄 웃으며 쌓여있던 빨래를 해치운 후, 방금 노트북을 켠 참입니다. 무언가 긴히 쓰고픈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반쯤 멍한 상태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이 느낌이 그리워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벌써 기분이 좋네요. 목적지 없이 산책을 나서는, 혹은 물고기를 잡고픈 욕심도 없으면서 굳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멍때리는 마음과 비슷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요즘 목적이 뚜렷한 글을 많이 쓰고 있거든요. 이런 날도 있어야죠.
최근에 회사에서 조직개편을 했는데요. 새 팀에서는 예전보다 유독 이름을 짓거나 문장을 쓸 일이 많습니다. 이쪽 용어로는 네이밍, 카피라이팅 뭐 그렇게 부르는 일들이에요. 말과 글을 요래조래 매만지는 것은 저의 적성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럭저럭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만, 때때로 제겐 그 일들이 어렵기도 열없기도 합니다. 내가 쓴 문장과 내가 고른 단어가 과연 이 회사에, 나에게 보탬이 될까? 그런 질문들을 잠깐잠깐 떠올리며 일을 합니다.
당신은요? 요즘은 일할 때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사실 저도 대부분은..
퇴근하고 나서는 회사가 아닌 저의 글을 씁니다. 사실 요즘은 새로운 글을 쓴다기보단지금까지 써 두었던 글들을 깎고 세공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처음 겪어보는 이 과정이 저는 무척 어렵고도 즐거워요. 쉼표 하나, 단어 하나에 매달리듯 골몰하는 감각이 좋습니다. 내가 쓴 글에 이만큼 진심을 다한 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거든요.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 소개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마 당신도 재미있어하실 거예요.
제가 사랑하는 이들의 근황도 말해볼까요. 남편과는 여전히 잘 지냅니다. 최근에 새로 머리를 했는데 라마 같고 잘 어울려요. 제 여동생이 크림색 푸들을 키우는데요, 이름이 곤약이에요. 작고 부드럽고 똘망똘망한 이 개조카를 저는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운동을 극혐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이 더위에 산책을 따라나서곤 한답니다. 본가에 계신 할머니에게는 몇 개월 전부터 '매일 전화하기 챌린지' 중인데, 어제는 일찍 잠든 바람에 깜빡하고 전화를 못 드렸지 뭡니까. 그랬더니 오늘 통화에 더더 반가워하셔서 괜히 맘이 찡했습니다. 시원한 집에 앉아 핸드폰 버튼 한번 누를 뿐인데 누군가에게 이토록 기쁨이 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머쓱할 만큼 간편한 효도인가요. 챌린지가 오랫동안 끝나지 않았으면, 통화기록 창에 할머니의 이름이 끝없이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극성 이모와 개조카
그것 외에는 뭐, 유난스러울 것 없는 일상입니다. 벼르던 제습기를 올해 처음 샀는데 매일 서너 통씩 물을 갈아치울 때마다 쾌감이 느껴진다거나, 상태가 안 좋았던 거실의 고무나무 화분이 다시 살아나 새순을 틔운 것이 너무 대견하다거나, 쌍둥이 아가를 출산한 에버랜드 판다 아이바오의 산후조리 과정을 매일 챙겨보며 눈물짓는다거나, 그 정도로 시시콜콜한 근황까지 듣고 싶으신 것은 아니겠지요(알아요, 이미 말해버린 거).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은 시시콜콜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근데 또 그것들을 잘 음미할수록 삶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어느새 밤이 깊었네요. 돌아가야지요. 산책이 끝나면 집으로, 낚시가 끝나면 육지로, 밤이 깊으면 침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