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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Jun 14. 2019

당신과의 나흘

작고 확실한 사랑의 순간들



지난 일요일, 이 보던 티비에 베란다에 화분을 키우는 장면이 나왔다. 어릴 적 우리네 방학숙제가 다 그랬듯, 파란색 플라스틱 화분에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키워본  있다고 했다. 이름까지 붙여줘 가며 몇 달 동안 열심히 키웠다고. 그 첫 결실-고추- 먹던 순간을 당신은 무심히 회상했다. "그때 나 막 울고 그랬."


그 말을 듣 순간, 란색 화분 앞에서 금 딴 고추 하나를 들고 엉엉 우는 어린 날의 당신눈앞에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 애는 왜 울었을까? 아쉬움이었을까, 구처럼 소중히 대했던 (내가 맘대로 붙인 가명)의 일부를 먹는 데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몇개월간의 수고를 한 입 끝내야 하는 허무함이었을까. 본 적도 만난적도 없는  애가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워, 간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다 큰 어른인 내가 그때로 돌아가서 꼬옥 안아주고 싶 마음이었. 당신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지난 월요일은 당신이 미용실에 다녀온 날이었다. 쭈뼛쭈뼛 겸연쩍게 나타난 당신의 모습이 마치 만화 <아따맘마> 속 동동이와 똑같나는 데구르르 구르며 한참을 웃었다. 몇년 전에 마지막으로 받았던 파마(왠지 '펌'이라고 부르면 안될 것 같다)가 지나치게 잘 나왔다는 당신은, 심지어 이발을 하고 또 해도 불거리는 머리가 한없이 새로 자라나는 바람에 고생했다고 했다(무슨 잭과 콩나무도 아니고). 파마는 이번에도 잘 된것 같았고, 당신은 어색한듯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여러 번 거울을 들여다봤, 나는 그런 당신의 표정을 즐거이 들여다봤다. 구불구불 폭신폭신한 당신의 머리칼을 만지면 낯설고도 기분좋은 감촉이 나서, 나는 자주 그것들을 쓰다듬으며 잠에 들었다.



아따맘마 동동이(혹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는 당신의 모습)



화요일 당신이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을 가진 날이었다. 나와 약속했으니 술은 조금만 먹으려고 노력했다며, 당신은 취기와 졸음이 섞인 눈을 꿈벅이면서 내가 학원 수업서 돌아올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에 나란히 손을 잡고 누워, 나는 당신이 두런두런 늘어놓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루동안 있었던 일, 술자리에서 느낀 것들, 곧 예정되어 있는 우리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당신의 입에서 흘러나와 느릿느릿 밤의 시간을 떠다녔다. "내 사랑." 마지막 말을 잠꼬대처럼 뱉은 후 당신은 깊은 잠에 빠졌고, 나는 그 순간에 열린 문 사이로 불어오던 초여름밤의 서늘함과 잡힌 손의 따뜻함을 래도록 간직하려고 애를 썼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화분 앞에서 울 있던 꼬마를 안아주는 것 말고도

할 일이 있다.

긴 연애는 필연적으로 권태를 수반하리라 믿던,

결혼생활은 리와 의무가 잠식할 거라 막연히 믿던 

설렘이 사랑의 전부인 줄 알고 있던

어린 나를 만나서, 일러줘야지.


너는 께 잠드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삐죽 날 만큼 좋아하는 사람과 지내게 될 것이라고. 그 사람의 눈꼽 작고 소소한 모습들이 너를 행복하게 할 거라고. 그가 유난히 사랑스러운 사람인 건지, 그에게서 사랑할 만한 구석을 끊임없이 쏙쏙 잘 찾아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사람과 함께 맞는 다섯 번째 여름까지도 의 삶에는 작고 확실한 사랑의 순간들이 득할 거라고. 시간이 더 르더라도 그 마음은 똑같거나 도리어 깊어질 테니, 미리 결혼을 냉소하거나 변심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결혼에 대한 세상 어른들의 위악섞인 푸념에 미리 겁먹지 말라고.



누구도 먼저 말 꺼내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나갔지만

지난 수요일 우리 결혼한지 600일 되던 날.

육백 번의 낮과 밤을 함께 겪는 동안

우리의 집에는 셀 수 없는 행복들이

볕 좋은 오후 창가의 먼지처럼 반이며 폴폴 날리었고,

어떤 것은 차곡차곡 내려앉아 쌓였다.

그것들을 지나치거나 하찮게 생각하지 않고

소중히 여길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비할 수 없이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당신의 사랑스러움을 알아 수 있는

맑은 눈을 가진 아내가 될 수 있기를.

 :)



D+602, 2019.6.14. 5:0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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