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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진 시간

by 생강 Mar 20. 2025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느낌의 진화>에 의하면 양쪽 대뇌 반구의 해마를 모두 잃어버리면 장기 기억을 형성할 수도 없고 떠올리기도 어려워진다고 한다. 기억을 회상할 수도 없다고. 즉, 해마가 손상된 환자는 ‘집’을 ‘집’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그가 과거에 살았던 특정한 집을 알아보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 결과 공간과 시간을 파악하는 능력을 점차로 상실하고 특정한 사람, 사건, 대상을 상기하거나 인식할 수 없고, 새로운 것을 학습할 수도 없다고 한다.      


해마의 세포 손상을 의미하는 알츠하이머의 세계로 넘어간 삼촌은 최근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맥락을 파악하는 인지기능은 떨어지지만, 싫고 좋은 감정은 살아있다. 내가 있는 장소가 병원인지, 집인지 모르지만, 택시 타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정도는 안다. 자신의 집을 몰라보지만, 사회적으로 구성된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있다. 조카들 얼굴과 이름도 기억한다. 그런데 20년도 더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으며 불안감을 내비친다. 우리 집에 잘 계신다고 안심시켜 드리면 정말 표정이 밝아지면서 할머니를 돌봐줘서 고맙다고 하는데 어머니를 직접 만나겠다는 얘기는 안 한다. 처음엔 만나겠다고 할까 봐 겁이 났는데 이제는 그 연결이 끊어진 걸 기억하며 능청스레 거짓말한다. 이 말은 거짓말일까? 삼촌이 믿고 있는 세계에 기꺼이 동참하는 거로 생각한다. 내 지금의 세계 또한 나 혼자 단독으로 겪는 시공간 아닌가? 


거짓말하는 게 불편한 동생은 삼촌과 영상 통화하면서 인사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못한다. 할 말도 물어볼 말도 없다고. 삼촌이 자꾸 집에 가야 하니 내일 데리러 오라고 해서 마침내 내일 아침 9시에 가겠다고 약속한다. 다음 날 아침 9시 되기 전에 진짜 가야 하는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혹시 기억할까 봐. 아침 9시에는 전화라도 걸어 잘 계시는지 확인해야 하나 고민한다. 그리고 그건 내가 만든 거짓의 세계였다고, 삼촌은 이제 잊었을 거로 생각한다. 삼촌은 벌써 다른 세상으로 옮겨갔는데 나는 아직 이 세상에서 질척거린다. 겹겹이 쌓인 퇴적의 시간을 헤맨다.      


삼촌은 어떤 날은 찾아오지 않는다고 역정을 내다가 어떤 날은 신세 져서 고맙다고 얘기한다. 반면에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은 인지기능은 가지고 있지만, 감정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느낌과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 인지기능과 감정만 따로 가져서는 느낌과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     


10여 년 전 EBS의 다큐멘터리에서 본 인간의 몸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영상은 아직도 기억난다. 인간은 산소, 탄소, 수소, 질소, 인 등 13개의 원소와 뼈, 근육, 지방, 피, 혈관, 장기 등등으로 이루어진 구성물이지만 이들 하나하나를 다 모아놓는다고 다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해체하고 분해할 수 있는데 다시 모여 인간의 몸은 될 수 없는 구성물의 잔해들. 총체적으로 모든 조직을 조율하는 놀라운 신경계와 위업을 달성하는 뇌가 있다 해도 인간은 동시에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모른다. 손톱 밑에 살이 조금만 뜯겨도 그렇게 아플 수가 없다. 이렇게 취약하고 서로 의존해야만 하는 존재에게 돌봄은 필수적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느낌 없이 생존 없듯 돌봄 없이 생존 없다.     


삼촌의 늙어감을 겪으며 자연스레 나와 내가 돌보는 사람이 운이 좋거나/나쁘면 20-30년 후에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아이들이 겪을 미래를 상상한다. 삼촌이 남긴 물건들을 보면서 내 물건들이 나 죽은 후, 내가 인지기능을 잃은 후 어떻게 처리될까, 그들에게 불필요한 걱정거리를 안겨주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자연스레 한다. 내 생전 잘 정리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필요한 걸 주고 싶은 사람에게 잘 주고, 잘 버리는 걸 인지기능을 잃기 전에, 근육이 남아있을 때 할 수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런 걸 바라다가 그만한 욕심도 없다는 생각도 동시에 떠오른다. 


수십억 년 전의 지각과 반응 기능도 지금 내 몸속에 남아있고, 오래된 내부세계와 근골격계 같은 덜 오래된 세계가 공명한다. 2020년대를 살아가며 글쓰기와 자잘한 걱정에 여념 없는 나도 있고, 현재의 내 몸은 내게 올 내 몸의 미래를 상상하며 근심한다. 항상성이라는 특질로 뭉쳐진 몸이라는 세계에 아로새겨진 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있는 중첩의 시간을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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