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가 인생의 첫 시험을 봤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중간고사였다.
내 생각에는 그 동안 초등학교에서도 단원평가 같은 것도 봤고, 학원에서 쪽지시험도 매일 봤으며, 첫 시험이기에 아무 생각이 없을 줄 알았다. 적어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별 생각없이 기본 실력으로 봐야 진짜 실력 같기도 하고... 사실 이건 다 변명이고, 워낙 내가 바쁘기도 하고, 내가 나대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더욱더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
학원 성실하게 다니고, 학교 숙제도 성실하게 하는 아이기에 알아서 일단 해보고, 시험을 못 보면 그때 아이와 이야기를 해봐야지 하는 정도의 얄팍한 기대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스스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마도 학교에서 그리고 학원에서 매일 시험이 중요하다. 첫 시험이기에 매우매우 중요하다. 는 이야기를 들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나 싶다. 때로 자기는 멍청하다며 신세한탄을 하기도 했고, 울기도 했고, 시험을 못 보면 혼낼꺼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못본다고 혼내지 않을 것이며, 열심히 안해도 그다지 혼내지는 않을 것이다. 중학교때 뭔 생각이 있겠니, 단지 네 생각에 너무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면 좋겠고, 그노무 인터넷 유튜브 블로그만 안하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었다. 별로 신경쓰지 않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에 딸아이는 안심하면서도 서운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시험 1주일을 앞두고는 공부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집에 와서 밥먹는 시간이 아깝다며 편의점에서 대충 밥을 떼우고 스터디카페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기도 했고, 집에서도 책을 앞에두고 괴로워하기도 했다. 엄마한테 출력을 해달라고 하거나, 무슨 사이트게 가입해달라고도 하는 등 뭔가 하는 것 같았다.
나도 아이가 시험을 잘 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초등때는 나름 공부한다는 이미지였는데, 중학교가서는 공부 못하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이 안타까웠고, 바보가 아닌데, 스스로를 바보로 비하하며 자괴감에 빠지는 모습을 보는게 힘들었다.
시험을 어느정도 잘 봐서 자신감이 붙었으면, 그 자신감으로 공부를 안하더라도 무엇이든 자신있게 도전하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더욱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시험 날짜도 모르는 척 했었다.
대망의 시험 날,
보통 나는 애들이 학교에 가건 말건 잠을 자는 편인데,
큰애가 꼭 밥을 먹고 가고 싶다고 말해서 새벽 6시에 일어나 햇반에 김치찌개를 끓여주었다.
아이는 햇반 하나를 다 먹고는, 시험을 망쳐도 안 혼낼거지? 라는 다짐을 받고 등교를 했다.
그리고 아이는 2일간 진행된, 5과목의 시험에서 올 A 를 받았다.
특히 가장 자신없다고 하던 수학에서 100점을 맞았다.
( 수우미양가 가 아니라 ABC 로 시험점수를 메기는 것을 올해 처음 알았다! )
아이는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친구들 앞에서 티를 안내고, 생각보다 못 본 친구들을 위로하느라 바빴다.
나와 남편은 매우 기뻐서 소리를 질렀고, 안아주었고, 이번주는 인터넷도 무제한, 마음껏 놀라고 허락해줬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에게 용돈도 받고, 아이는 신나서 놀고 있다.
자식자랑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라고 하는데.
매일 새벽에나 들어가는 엄마이기에, 하루에 몇십분 겨우 보고 사는 엄미이기에
다른 엄마들처럼 학원하나 알아보지 못하고, 공부하란 말 하나도 못하고, 그저 잘한다 잘한다 안해도 된다. 미안하단 말만 하는 엄마인데.
알아서 첫 시험을 목표한 만큼 잘 봤으니 기특하고 대견해서 어딘가에 자랑하고 싶다.
고작 중1, 내신에도 안 들어가는 시험일 뿐 인것을 잘 알지만
자식 바보이기에 무조건 신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아이에게 기쁨의 포옹을 하고, 볼에 뽀보를 해주고, 자려고 누웠는데 참 많이 후회했다.
이런 아이에게 윽박지르고, 발로차고, 쌍욕을 하며 때렸으니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었나.
틈날때마다 사과하고, 지금은 안 그러고 있고, 정신과약도 잘 먹고 있으나
그걸로 사과가 되는 것은 아닐텐데......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말인가......
미안하고 고맙다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