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카페에서 일부 회원들이 필수 예방접종을 거부하고 수두에 걸린 환아를 직접 건강한 아이들과 접촉시킨 사건이 있었죠.
일명 수두파티의 근거로 백신을 통한 면역 형성은 인공이라 해롭고 수두에 직접 접촉해야지만 자연 면역이 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논란이 격해지자 자신들에 대한 비난 뒤에는 양의사들과 제약회사의 음모가 숨어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요.
이번 주제는 예방접종과 백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초의 백신
수두와 비슷한 감염병이지만 더 심한 증상과 높은 사망률을 보였던 천연두 smallpox라는 병이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사람의 힘으로 박멸시킨 최초의 감염병이지요.
지금은 면역형성 덕분이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지만, 먼 옛날에도 천연두를 한번 앓고 지나가면 재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백신이 없던 중세에도 안아키와 비슷한 생각을 하던 사람들이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두법 variolation이라고 불리는 천연두 예방법이 중국, 중동 등 세계 각지에서 시도되었으니까요. 인두법은 천연두에 걸린 뒤 살아남은 사람의 수포 껍질을 건강한 사람의 피부에 비비는 방법이었습니다. 예방 효과가 일정치 않고, 환자의 천연두 바이러스가 직접 들어오기 때문에 사망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였지요.
18세기 영국에 에드워드 제너라는 시골 의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천연두와 비슷한 병이 젖소에게도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우두 cowpox라고 불렀는데, 우유를 짜는 사람이 우두를 앓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제너는 사람이 우두에 걸릴 경우에는 천연두보다 훨씬 가볍게 지나가며, 놀랍게도 천연두에도 걸리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1796년 제너는 지금 같으면 당장 체포돼야 마땅할 임상실험을 시도합니다. 8세 소년에게 우두의 수포를 접종하고, 6주 기다린 뒤 사람의 천연두 수포를 집어넣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지 확인해 본 것입니다. 다행히도 소년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고, 몇 차례의 추가 임상시험 후 우두 수포 용액을 정제하여 우두법을 개발합니다. 제너는 자신이 만든 우두법용 접종 용액을 백신 vaccine이라고 불렀는데, 백신은 라틴어로 vacca(암소)에서 기원한 용어입니다. 즉, 우리는 200년 전 제너가 만든 암소 용액의 이름을 고유 명사로써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두법과 우두법의 차이
앞서 환자의 수포를 주입한 예방법을 인두법이라고 하고, 우두에 걸린 소의 수포를 주입하는 방법을 우두법이라고 하였습니다. 현대 의학과 백신학에 따르면 인두법은 예방접종이 아니고, 우두법은 최초의 예방주사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예방접종은 '해가 되지 않는 물질을 사람에게 접종하여 심각한 질환을 예방하는'방법입니다. 인두법에 사용되는 천연두 환자의 수포는 당연히 천연두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10세기에 인두법을 시술하던 의사들도 충분히 아문 수포의 찌꺼기만 사용하는 등 안정성에 대한 노력을 하기도 했지만, 천연두 바이러스가 직접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우두를 일으키는 우두 바이러스는 천연두 바이러스와 같은 과에 속하지만 서로 다른 바이러스입니다. 때문에 소에게 감염을 일으키지만 사람에게는 크게 위험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물론 우두를 접종하여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의 산물이었습니다. 우두를 접종했을 때 사람 몸에 생성되는 우두 항체가 우연히 천연두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우두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죠.
루이 파스퇴르와 백신의 시대
19세기 말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는 백신학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우리에게는 발효의 아버지로 많이 알려진 그 파스퇴르 말입니다. 우유 브랜드로도 익숙한 파스퇴르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60도에서 미생물을 사멸시키는 가열살균법 pasterurization을 발견한 것입니다만, 현대 백신의 가장 중요한 원칙들도 발견하였습니다.
앞서 우두법을 통해 천연두를 예방한 제너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말씀드렸죠. 우두-천연두처럼 교차 면역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의 감염병은 병원균 자체를 백신으로 사용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딜레마가 안정성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광견병을 예방하겠다고 광견병에 걸린 개의 뇌신경을 채취하여 건강한 개에게 주입할 경우 운이 좋으면 면역이 생기지만, 운이 나쁘면 광견병에 걸려 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스퇴르는 건조법으로 광견병에 걸린 뇌신경을 조금씩 살균했습니다. 적당히 살균된 광견병 뇌수는 충분히 약해져서 광견병을 일으키지 않았고, 접종 이후 살아있는 광견병 바이러스를 주입했을 때에도 질병을 예방하는 면역 효과를 보였습니다. 현대 백신에서도 통용되는 약독화 attanuated백신의 첫 시제품이었던 것입니다.
파스퇴르는 광견병 백신 이전에도 닭 콜레라, 탄저균과 같은 세균을 약독화 시켜 동물에게 성공적으로 접종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의사가 아닌 화학자였기 때문에, 본인이 만든 광견병 백신이 사람에게도 안전하게 효과를 보이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1885년 9살의 소년이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려 찾아왔을 때, 파스퇴르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광견병 백신을 접종한 것이 현대적 백신의 첫 번째 임상시험입니다. 광견병 백신을 맞은 소년은 빠른 면역 형성 덕분에 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파스퇴르는 세균의 약독화, 배양을 통한 세균 독성 변화 등 현대 백신학에 근간이 되는 생화학적 특성을 발견하였습니다. 하지만 파스퇴르가 백신 역사에 남긴 가장 중요한 족적은, 건강한 개체에게 주입하는 백신은 안전하게 변형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정립했다는 점입니다.
우두법처럼 운 좋게 발견된 안전한 예방접종을 제외하면, 파스퇴르 시대 이전 예방접종은 인두법과 같이 병원균이 묻어있는 물질을 직접 주입하는 것이었습니다. 파스퇴르는 자신의 살균법과 계대배양과 같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병원균을 안전한 백신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이후 개발된 수많은 현대 백신도 병원균을 약화 또는 변형하는 방법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파스퇴르의 방식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안전한 백신의 중요성
여기까지 잘 따라오셨다면, 안아키 회원들의 수두파티 계획이 얼마나 구시대적이고 위험한 것인지 알게 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18~19세기에 이미 환자의 병소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 안전한 백신이라는 개념이 세워졌다는 것도요.
사실 감염병 예방 백신을 하나 만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병원균의 특성과 면역 기전을 분석하여 면역을 유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안전한 물질을 만들어야 하며, 일부 사람만 접종하는 것으로는 감염 예방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가격도 저렴해야 하죠. 최근에는 유전자 분석과 단백질 재조합 등 신기술의 도입으로 더 안전한 백신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건강한 사람, 특히 소아에게 일괄적으로 접종해야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예방접종의 특성은 사회적 장벽이자 백신 거부 운동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사회적 쟁점이 되는 예방접종의 논란들을 설명해보겠습니다.
백신을 둘러싼 쟁점들
1) 나와 내 아이는 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왜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나?
예방접종 프로그램은 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들에서 감염병을 예방하는 대규모 보건 정책입니다.
병을 치료하는 치료제는 그 효과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발생하지도 않은 병을 미리 막고자 실시하는 예방법들은 오직 통계학적 방법으로만 평가가 가능하다는 태생적 단점이 있습니다. 백신을 다루는 의학자와 예방접종 프로그램을 만드는 감염학자라면 모를까, 나와 내 가족에게 생기지도 않은 감염병 때문에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은 일견 불합리해 보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백신의 효과를 알기 위해서는, 감염병이 발생하는 기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병을 일으키는 대다수의 세균/바이러스들은 1) 사람에게 감염된 뒤 2) 사람 안에서 증식하고 3) 충분히 세를 불린 뒤 질병을 발생시키며 4) 기침, 대변, 혈액, 수포 등을 통해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감염됩니다.
중요한 점은, 우리 몸에 단순히 균이 들어가기만 하면 질병이 되는 것이 아니라,충분히 세를 불려야만 질병으로 진행한다는 점입니다(물론 세균의 입장에서는 그저 증식하고자 하는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만 말이죠). 만약 세균이 들어간 사람이 이미 균에 면역이 있는 사람이라면 몸 안에서 세를 불리기도 전에 제거될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2)~3) 번 과정에서 막혀버렸으니 당연히 다음 사람으로 감염될 수 없겠지요.
나와 내 가족 주변에 백신을 통해 면역이 된 사람이 충분히 많으면, 균이 다음 감염자로 넘어갈 확률이 낮아집니다. 이를 예방접종에 의한 집단 면역 herd immunity이라고 합니다.
혹시 연세가 있는 학부모라면 홍역이 5~10년에 한 번씩 유행했다는 사실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홍역 바이러스는 환자의 기침을 타고 다른 사람에게 잘 옮겨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홍역은 집단 면역의 효과가 매우 극적인 감염병입니다. 지역 사회의 홍역 집단 면역이 조금만 취약해지면, 그 틈을 타고 수백~수천 명이 동시에 발병하는 홍역 유행이 발생하게 됩니다.
2000~2001년 수만명의 소아가 감염되고 7명이 사망한 홍역 유행 기사를 기억하신다면, 그 이후로는 홍역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떠올려 보십시오. 2001년 홍역 유행이 발생한 뒤 국가에서는 홍역 예방주사 일제 접종을 실시했고, 지역 사회의 부모님들도 100%의 가까운 접종률로 화답하였습니다. 집단 면역이 상승한 것입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질병관리본부의 접종률 관리 시스템과 높아진 홍역 예방접종에 대한 관심 덕분에, 몇몇 산발적 발병을 제외한 큰 홍역 유행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관심과 예방접종 관리 시스템이 견인한 집단 면역의 좋은 예시입니다.
2) 아무리 안전한 백신이라도 세균의 일부 또는 인공물질이 들어있는 엄연한 약품인데, 100%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가?
맞는 말입니다. 약독화 백신을 만들 때 들어가는 전처리 살균 물질, 그리고 면역 능력을 항진시키기 위해 넣는 각종 물질들은 드물지만 알레르기 반응이나 부작용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거의 없지만, 약독화 시켰던 균이 다시 살아나면서 예방하고자 했던 감염병을 오히려 만들 가능성도 100%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파스퇴르 이후 백신학도 눈부신 발전을 했습니다. 우선 현대의 많은 백신은 균을 직접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연구를 통해 세균/바이러스에서 독성을 갖는 부분들이 규명된 뒤, 최신 백신들은 유전자 일부나 단백질 재조합을 통해 실제 균과는 완전히 다른 물질로 면역을 이끌어 낼 수 있을만큼 발전했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균을 약독화시켜 백신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철저한 정부 규제와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한 뒤 출시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각종 안정제와 항진제로 사용되는 첨가물질도 안정성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가끔 포름알데히드, 알루미늄, 소독제와 같은 물질이 들어있다는 글로 위험성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백신 제조 과정에서 극소량으로 감소시켜 몸에 해롭지 않은 수준으로 낮춘 뒤 시판됩니다.
본인의 체질에 따라 발생하는 백신 알레르기는 아직 100% 해결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알레르기가 가장 적다고 알려진 첨가물로 변경하여 사용하는 등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옛날 독감 백신에는 계란의 단백질을 바이러스 배지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계란 알레르기를 일으켰습니다. 지금은 계란을 사용하지 않는 다소 고가의 독감 백신이 있으며, 접종하는 의료진이 미리 계란 알레르기 여부를 확인하여 처방하기도 합니다.
3) 그래서 백신은 정말로 나와 내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건가?
앞서 집단 면역에 의한 효과를 말씀드렸습니다. 백신에 의한 집단 면역이 충분히 높아 균의 전파를 막을 정도가 되면, 감염병은 극적으로 감소합니다. 아래 그래프는 홍역, 백일해, 디프테리아 감염병이 백신 이전과 이후로 얼마나 감소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정도라면 예방접종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 센서스 자료, 청년의사지 발췌
하지만 집단 면역이나 공공의 건강과 같은 거창한 이유를 제외하고도 예방접종은 개인적으로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백신을 맞음으로써 집단 면역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자궁경부암, 대상포진이나 노인 폐렴과 같이 개인 질병으로 생각되던 질환도 백신을 통해 예방이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황열 백신처럼 여행 전 접종하는 풍토병 백신도 공공의 이익보다는 여행자 본인의 보호를 위해 시행하는 예방 접종의 한 예입니다.
덧붙여 최근의 예방접종은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맞춤으로 시행하기도 합니다. 특수한 환경인 군대에서 한타바이러스, 뇌수막구균, 콜레라 백신을 접종하는 경우나, 65세 이상의 고령에서 폐렴구균 백신을 권장하는 것, 30세 이전 젊은 사람들에게 A형 간염 백신이 도움이 된다는 것들은 모두 감염 위험이 개인마다 다름에 착안한 선택적 예방접종의 좋은 예입니다.
(개인적인 추천 백신으로는 자궁경부암 백신과 나이에 맞는 대상포진, 폐렴구균 백신이 있으며, 여기에 매년 독감 예방 주사를 맞는 것도 추천할 만한 성인 예방접종이라 생각합니다.)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감염병 목록
현대 의학에서는 백신으로 전 세계 14개의 감염병을 줄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1) 천연두와, 2) 소아마비, 3) 파상풍, 4) 홍역, 5) 볼거리, 6) 디프테리아, 7) 백일해, 8) 헤모필루스, 9) 장티푸스, 10) 풍진, 11) 광견병, 12) 로타바이러스 장염, 13) 황열, 14) B형 간염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덧붙여 개개인에게 질병 예방 효과가 있는 백신으로는 1) 자궁경부암 백신, 2) 독감 백신, 3) 폐렴구균 백신, 4) 대상포진 백신, 5) A형 간염 백신 등이 있습니다. 본인의 건강을 위해 고려해 봄직한 백신들입니다.
이 중에서 단순히 발병을 줄이는 것이 아닌 박멸 수준으로 감소시킨 감염병은 천연두가 유일합니다.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 바이러스도 지구상에서 거의 근절되었지만, 몇몇 아프리카 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으로 예방접종이 지연되면서 완전 승리를 목전에 두고 대치중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안타깝게도 나이지리아에서 '소아마비 백신이 아이들의 건강을 해친다'는 소문이 돌면서 접종을 거부하는 사태도 발생한 바 있습니다.
맺음말 - 백신 거부 운동으로 나타나는 사회의 간극
예방접종은 깨끗한 식수와 함께 전염병 예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현대의학의 산물입니다. 가장 최신의 항생제와 값비싼 의학기기도 백신에 비하면 효과가 미미하다 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예방접종 프로그램은 개개인이 그 효과를 피부로 느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먹는 약도 아닌 주사를 맞는 것은 나와 내 가족인데, 그 효과를 직접 볼 수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중 일부는 예방주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외로 예방접종 거부운동은 역사가 깊고 전 세계에서 현재 진행형인 현상입니다. 지금은 모두 근거 없음이 밝혀졌지만, "홍역 백신이 자폐증과 관련 있다", "백일해 백신은 뇌손상을 일으킨다", "소아마비 백신은 사실 산아제한을 위한 불임약이다"와 같은 루머들이 사람들을 현혹시켜 예방접종을 가로막은 역사들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백신 거부 운동은 선진국과 개발국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 보건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최소 10~20% 이상의 부모는 영아 필수 예방접종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1974년 일본에서는 한 백신에 의한 부작용 발생 사건이 뉴스로 나온 뒤, 예방접종률이 절반 넘게 줄어든 적도 있었습니다.
가끔 의사들과 감염학자들은 갸우뚱하기도 합니다. 금방 사실이 아님이 증명될 수 있는 루머와 아주 드문 경우만을 뉴스로 내는 미디어 때문에 예방접종률이 출렁인다는 사실이 놀랍고, 현대 과학의 집대성인 백신에 대한 불신이 평소에도 팽배하다는 조사 결과는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소위 중산층이나 지식층에 해당하는 가정에서도 자신과 자녀들의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백신 거부자의 상식을 의심하기 전에 생각해봄직한 부분이 있습니다.
2004년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한 소아마비 백신 거부 운동은 단순히 상식의 부재로 인한 잘못된 신념의 발현이 아니었습니다. 2003년 당시에는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여 무슬림들의 서양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시점이었습니다. 1996년에는 대형 제약회사인 화이자 Pfizer가 비윤리적인 임상시험을 나이지리아에서 실시하여 비난받은 역사도 있었고요. 당시 백신 거부 운동에는, 서양에 대한 적개심을 극대화시킬 기회로 생각한 정치인과 군부도 가담하였습니다. 당시 사회상을 무시한 채 단순히 나이지리아인 부모의 무지를 꾸짖는다면, 논의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다시피 예방접종과 같은 대규모 보건 정책은 사회-문화-정치적 상황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백신 거부를 부르짖는 운동가들은 현대 의학의 폐해와 의료진/제약회사의 탐욕, 정책을 만드는 정치가의 부도덕을 거부의 이유와 결부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7년 안아키 회원들과 운영자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밖으로는 천연 면역이니 인공 면역이니 하는 생소한 이론을 내세웠지만, 그 본질은 예방접종 프로그램을 강제하는 현대 의학에 대한 불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해결책은 결국 신뢰입니다. 의료진과 전문가는 눈높이를 맞추고, 예방접종을 받는 아이들과 부모를 한 명씩 설득한다는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드문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정치가와 정부는 적극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활용하여 피해를 막는 신뢰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의료진, 정부, 지역 사회가 감염병 감소라는 목표를 가진 한 팀이라는 자세로 임한다면 작금의 불신을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2017년 중앙일보에 난 안아키 운영자의 인터뷰를 읽을거리로 추천드립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1609395 기사 안에는 질병관리본부의 반박도 같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저는 처음 읽어 볼 땐 한숨을 쉬었다가, 이 글을 다 쓸 즈음에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서로 다른 눈으로 안아키의 주장을 바라보시겠죠. 제 글이 조금이나마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