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로니 Jun 13. 2016

과소비 인간의 회의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옷, 박스채 방치 중인 한정판 게임 피규어, 몇 번 신지 않은 신발들, 먼지만 쌓여가는 베이스, 스르륵 넘겨보기만 한 책, 조립하다만 레고. 과소비 인간의 이사 준비는 괴롭다. 소비의 책임을 질량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아마 최근 일주일의 무게가 가장 무거웠을 것이다. 


언제 간 쓰일 거라며 모아둔 종류별 전선 뭉치들은 꿈틀거리는 운동이라도 하는지 스파게티처럼 멋대로 꼬여있고, 아무렇게나 쌓아둔 종이봉투와 비닐봉지는 그동안의 소비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자성의 생각 끝에 과소비의 산물을 정리하기 위한 규칙을 세웠다.


일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은 앞으로도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동정심 갖지말기.

팔기 힘든 옷과 물건들은 과감히 버리기.

새제품 또는 팔 수 있는 것들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기. 

쇼파, 침대, 책장은 세켠샵에 무료수거 요청하기. 

추억할 만한 엽서, 티켓, 영수증 등은 사진으로 남기기.


이렇게 정한 정리 규칙을 상기하며 옷을 정리했다. 옷의 3분의 2는 버렸다. 처음에는 수거 업체를 이용할까 했는데 거대한 옷더미가 정리하는 내내 신경 쓰여 쓰레기장 급행열차로 직행했다. 책장, 소파, 침대는 저렴하게 팔거나 무료 수거 업체를 이용했고, 수년간 함께한 베이스들은 회사 중고장터에 올렸다. 


사고, 버리고, 사고, 버리고를 반복하는 나에게 자본주의 사회는 감사장을 수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소비의 쳇바퀴를 잠시나마 멈추게 해주는 이사에게는 경고장을 보낼 것이고, 앞으로는 경고장을 받는 삶을 살아야지 싶다. 결론은 이사는 언제나 스트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