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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Dec 21. 2019

우리는 서로의 불완전한 보호자

휴직일기(13) 나의 나약하고 강인한 할머니에 대하여



내가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는 할머니였다

지금보단 조금 더 오래 걸을 수 있고, 더 무거운 짐을 들을 순 있었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얼굴엔 주름이, 허리와 다리엔 통증이 있는 할머니일 뿐이었다



어릴 적에 할머니란 항상 뭔가를 가득 주려고 하는 존재였다

시장에 가면 어묵을 사다 주고, 제사를 지내면 전들을 잔뜩 싸주고, 밥을 먹을 땐 한 그릇 더 주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떠돌던 '할머니 집에 가면 애들이 포동포동 해진다'는 류의 공감글은 내게도 120% 해당되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가진 건 없지만 줄 수 있는 건 많은 신기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던 할머니는 내가 한 해씩 자라나는 만큼 한 해씩 약해져 갔다

여전히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장을 봐주고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었지만,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를 더 자주 하게 된 할머니에게 그 일들은 어느새 능력이 아닌 의지의 영역이 되어있었다

당신이 그 일을 해주지 않으면 우리 집이 바보 같게도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므로



마지막 학기 마지막 시험을 보던 날이었던가, 아빠가 지방에 있는 유명하다는 한의원에 날 데려간 적이 있다

땀이 이상하리만치 많고 기력이 허하다며 이번 기회에 용한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는 거였다

아빠의 차를 타고 편하게 달려갔던 첫 진료 이후에는 할머니가 내 보호자 명목으로 그 길을 함께했다

수원에서 대전으로 그리곤 다시 수원으로, 우린 돈을 아끼기 위해 입석표로 기차를 타고 식당칸에 앉아 그 길을 왕복했다

계단 오르내리기도 힘들어 우대권 쓸 수 있는 지하철 대신 울며 겨자먹기로 버스만을 타던 우리 할머니는 나를 위해선 등을 기대지도 못하는 기차에 기꺼이 올랐다

하루는 속이 좋지 않아 기차 안에서 오바이트를 한 적도 있었다

치료받아야 할 사람이 왜 할머니가 아니라 나인지, 동시에 왜 나보다 약한 할머니가 내 보호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간들이었다



취준생이라는 딱지를 떼고 직장인이 되었을 때 나도 이제 할머니의 보호자 노릇을 제대로 하자고 다짐했다

회사에 시간을 묶이는 대신 두둑한 월급을 받게 되었으니 이걸 통해서라도 할머니를 잘 챙겨야겠다고 말이다

흰머리를 가려주는 염색이 우리 동네에선 만오천원인데 1시간 거리 어디어디네서는 만원이라 273 버스를 꾸역꾸역 타는 우리 할머니가 그냥 집 앞 미용실에서 여유롭게 염색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내게도 먼 거리를 굳이 걸어가는 할머니에게 그건 택시 기본요금밖에 안 되는 거리니 내가 군것질 한 번 안 하면 되는 거란 걸 알려주겠다고,

할머니 밥을 먹고 자란 손녀가 이제는 그 밥값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고, 이렇게라도 할머니의 약하디 약해진 허리를 무릎을 지켜줄 수 있는 보호자가 됐다고 알려주려 했다



그러나 할머니 머릿속에서 용돈이란 건 자동으로 우리 가족을 얼마나 먹이고 입힐 수 있는지로 계산되었다

5천원이 생기면 내가 자주 먹던 죠리퐁 3봉지를 사다 두었고, 5만원이 생기면 파마 대신 갈비찜 재료를 샀다

10만원이 생기면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 대신 다른 자식들에게, 손주들에게 꼬깃꼬깃 쥐어주었다

할머니가 받게 된 것 중에 고스란히 할머니 것이 된 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없었다

취업 선물로 겨우 안겨준 조금 비싼 가방도 3년이 다 되도록 모셔두고만 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몇 달 전 독립을 하루 앞두었던 날, 여느 날처럼 할머니와 마주 앉아 점심을 먹었다

할머니는 엄마가 챙겨줬어야 되는 걸 못 받고 자란 것이 혼자 나가 살면 더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눈물을 훔쳤다

정작 나는 이제 할머니 혼자 심심해서 어떡하냐고, 가끔 순대라도 사다가 나눠먹을 사람이 없어져 어떡하냐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할머니보다 잘 먹고 잘 지낼 손녀 걱정만 잔뜩 하고 있었다



지금도 내가 본가에 들렀다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날마다 할머니 눈가엔 눈물이 맺힌다

꼬옥 안아주면 내 품에 쏙 들어올 만큼 작디작은 사람이면서, 그 덩치로 감당 못할 커다란 걱정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우리 할머니

어째서 그 마음 안엔 뿌듯함보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더 가득 찬 것인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는 내게 할머니였듯이 나는 할머니에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애기일 뿐이겠지



어쩔 수 없는 그 따뜻한 색안경을 알지만, 이젠 할머니가 알았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를 매일 말하면서도 기꺼이 내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것처럼

나도 이젠 엄마의 빈자리에 삐끗하면서도 꿋꿋하게 할머니의 나날들을 지켜줄 수 있을 만큼 자랐단 걸,

서로의 불완전한 보호자로서 서로를 온전하게 해주는 이 아름다운 시절까지 우리가 잘 살아냈단 걸 말이다



우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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