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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an 03. 2020

나도 어릴 때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고 싶었는데

휴직일기(19) 깨지 못한, 그러나 깨고 싶은 흑역사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다

그때는 누구나 살면서 이사를 여러 번 다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집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 속 첫 집은 성남에 있는 단칸방이었다

방 하나에 신발을 벗고 나가야 하는 부엌이 전부였던 집, 화장실은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1층에 우리집 같은 단칸방 다섯 집, 2층은 그 집들을 다 합친 만큼 큰 집 하나, 그리고 지하엔 어두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던 또 다른 집들

그 집에서 인상적인 기억은 딱히 없지만 2층에 살던 집에 나와 동갑인 친구가 살아서 그 집에 몇 번 놀러갔던 건 기억난다

반대로 그 집에 사는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던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곳에서 여섯 살까지 살다가 아빠 직장 때문이었나, 수원으로 이사를 했다

첫 번째 탈출이었다



수원에서의 첫 집은 이전 집보다는 좋아져서 방도 2개고 화장실도 안에 있는 집이었다

골목에 또래 친구들도 여럿 있어서 그 애들과 매일 놀러다녔다

한 친구네 집에 가서 다같이 비디오를 보고, 다른 친구네 가서 둘러앉아 짱구를 보고, 또다른 친구네서 수행평가 때 출 춤을 연습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친해지고 그들의 집에 드나드는 동안 우리집에 친구들이 놀러온 적은 손에 꼽는다

맞벌이 하는 부모님이 늦게 오셔서 빈 집이 우리집밖에 없을 때, 그때서야 우리집에 친구를 데려오곤 했다

낡은 장판도, 뭔가에 갉아먹힌 낡은 나무 문지방, 살림할 여력이 없는 엄마가 챙기지 못한 구더기 낀 음식쓰레기봉투

친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의 집과는 다른 우리집을 보면서-

그 집에서 6년을 살다 두 번째 탈출을 하게 되었다



살던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집이었다

그 집은 이상하리만치 컸다, 거실, 방2개, 부엌이 있는 집

내 꿈이었던 '나만의 방'은 여전히 가질 수 없는 집이었지만 처음으로 거실이라는 게 생겨 기뻤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그 집은 댓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는 집이었다

골목 깊숙한 곳에 있어 드나들기 무서웠고, 창문이 많아 겨울엔 냉골이었다

무엇보다 작고 붉은 개미들과 억지로 공생해야 하는 집이었다

음식을 실수로 꺼내두면 개미가 바글바글 들끓었던 그 집에서의 유일한 위로는 '개미가 사는 집엔 바퀴벌레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단점은 보이지 않았던 탓에 용기가 나서였을까

내가 먼저 친구를 우리집으로 데려온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데려오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게임기도, 재밌는 비디오도, 컴퓨터를 보며 나란히 앉을 여유분의 의자도 없었기에 막막했다

내가 줄 과자나 음료수도 없었다

참으로 창피하게도 나는 내가 데려온 친구를 챙기는 방법을 몰랐다

나 혼자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켜서, 열심히 했다

친구는 말 그대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자 친구는 굳은 얼굴로 집에 가겠다고 했다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내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날이었다



그 뒤로, 아주 오랫동안 친구를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

다행히도 놀러갈 수 있는 더 좋고 쾌적한 친구의 집이 있었고, 어린 시절에는 밖에서 수다만 떨어도 즐거웠다

이 고마운 사실들은 우리집의 누추함과 나의 미숙함을 들키지 않는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동시에,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여전히 우리집에 친구를 데려오는 것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신도시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엄마가 돌아가신 뒤 도망치듯 개미가 있는 집을 떠나 이사하는 동안,

수원에서 서울로, 서울의 동네동네마다 어렵게 집을 구해 이사를 다니는 동안

친구들의 집은 당연하게도 아파트였다

우리집은 주소는 OO동 XXX-XX로 짧게 끝나는데, 친구들의 집은 항상 OO아파트 XXX동 XXX호로 우리집 것보다 한참 길었다

우리집만 아파트가 아닌 게 점점 당연해질수록 나는 주눅들었다

우리 엄마도, 아빠도 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항상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할까 속이 상하기도 했다



나도 집에 친구를 데려오고 싶었는데,

엄마가 깎아주는 과일이든 선반 위에서 몰래 꺼내 끓여먹는 라면이든 대접해주고 싶었는데,

편하게 널부러져 수다도 떨어보고 싶었는데,

우리집에 누군가를 초대해 제대로 대접해본 적이 없어서 그 일은 부담이자 두려움이기도 하다

친구가 잠시 급한 볼 일을 위해 집에 들를 때조차도..

탁 트인 거실과 깔끔한 도배, 하얗고 바람 새지 않는 샤시, 깔끔한 화장실이 없는 우리집이 참 그렇다



집에 누군가 오게 되는 날엔 괜히 한번 더 청소를 하고, 줄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밀린 살림도 서둘러 해치운다

이제는 구체적인 내용이야 어찌됐든 가난이라는 것에 시달렸던 기억을 공유할 줄도 알고, 말 안해도 느껴지는 무엇들이 있어 조금은 편안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나의 집에 친구를 데려오는 것은 마치 내 일기장이 읽히는 것을 두고 볼 수밖에 없는 민망함과 불편함을 동반한다



그때, 맨 처음 친구를 데려왔던 그 날 바보처럼 게임만 하지 않고 뭐라도 함께 했더라면 좀 달라졌을까

냉장고에 있는 뭐라도 꺼내서 볶음밥을 해먹든, TV를 보며 볼 게 없다고 투덜거리든 했다면

그리고 친구가 집 갈 시간이 됐다며 빠이빠이 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돌아갔다면 좀 달랐을까



이젠 나름 구색을 갖춘 자취방을 갖게 되었는데

내 생각은 여전히 한 때 살았던 어떤 방에 갇혀있는 것 같다



일상의 자연스러움이 가끔은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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