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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Dec 10. 2019

이제야 겨우 3년차가 됐는데, 휴직을 하고 말았다

휴직일기(1) 나는 건강한 사회인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건강한 사회인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무섭도록 지겹게 끝나지 않던 취준생 시절

잠도 오지 않는 불안한 밤마다 나는 저렇게 저렇게 말하며 울곤 했다

친구들 다 하는 취업을 나만 못하는 이유는 분명 나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무너진 것 같았던 내 하늘에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는지 한 회사와 연이 닿았다

이전까지 봤던 모든 면접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수월하게 면접을 통과하고, 즐겁게 인턴을 하고, 좀 건방진 생각이긴 하지만 당연하게 합격도 했다

그렇게 나는 사회인이 되었고, 불안과 함께 되뇌었던 저 혼잣말도 잊혔다



선배들의 생각을 보면서 감탄도 하고

이상한 생각을 해내서 부끄럽지만 왠지 뿌듯한 요상한 쾌감도 느껴보고

선배에게 도움이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무엇보다, 다른 건 좀 힘들고 짜증나 생각하는 것 자체는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직장생활이라는 것에 적응을 해갔고 사회인이 되어갔다



"나는 건강한 사회인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사회인이라는 이름으로 산 지 2년이 꽉 차갈 무렵부터 저 말은 다시 내 일상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진 팀 이동과 함께

내 좁은 속으로는 품을 수 없던 타인들의 선택과 함께

내 능력으로 쳐낼 수 없는 일들과 함께



점점 내 마음이 내 맘대로 되지 않자 나는 정신과를 전전하다 한 병원에 정착해 치료를 시작했다

조금씩 호전되는 것 같더니 조금 소강상태를 보이던 업무를 다시 본격적으로 하려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머리는 돌아가지 않고, 아무 계획도 세워지지 않고, 일이 그냥 무섭고 도망치고 싶었다

재밌다고 생각했던 '생각하는 일'이 더 이상 재밌지 않고 두렵게만 느껴졌다



문제를 나 혼자 풀어갈 자신이 없어 좋아하는 선배에게 연락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속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선배와 이야기하면서 실감하게 됐다

나 많이 아프구나

나 지금 지쳤구나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구나



선배 덕분에 생각이 정리되자 내 상태를 알릴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팀장님에게, 팀 선배에게, 팀 동기에게, 본부장님에게 힘들다고, 자신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남은 연차를 소진해 조금 쉬었고, 그동안 큰 병원을 돌아다녀 다시 진단을 받았다


불안장애와 기분저하장애


나는 건강한 사회인이 아니란다

이제 막 직장 3년차가 된 내게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그러나 차근차근 작성된 성적표의 한 문장이 저거란다

그래서 병가를 냈다, 도망치기로 했다




자취방에서 홀로 쭈그려 울던 한 취준생은

이제 자취방에 홀로 쭈그려 우는 직장인이 되었다

이름만 달라진 채, 똑같은 걱정을 하면서


나는 건강한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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