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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아무
Dec 11. 2019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누굴까 항상 궁금했었다
휴직일기(2) 그리고 그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취준생 시절, 늘 궁금했다
내가 스터디를 하러 갈 때, 알바를 끝내고 돌아올 때, 가끔 산책을 할 때 마주치던 사람들에 대해서
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기에 대낮에 사무실에 있지 않고 거리에 있는 것일까
직장인이라면 사무실에 앉아있을 터인데, 그렇지 않은 저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와 연령대가 비슷해보이는 사람일 경우에는 특히나 궁금했다
한창 사람들이 떠들어대던 수저론의 꼭대기에 있다는 그사세의 아이들인 것일까 괜시리 시기를 해보기도 했다
회사에 들어가보니 의문의 사람들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었다
일단, 그들 중 일부는 내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던, 회사원이었다
회사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우리 회사만 해도 책상에 스스로 갇힌 채로 미친듯이 아이디어만 생각할 때도 있는 반면에
일이 없을 때는 이태원이나 여의도 등지에 가서 소위 땡땡이를 치며 놀기도 했으니까
또 뭐, 말하자면 길지만 당연하니까 생략하고 넘어가자면
그들 중 또다른 일부는 나와 같은 취준생이었고, 일찍 엄마가 된 사람들이었고, 또 몰랐던 무엇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알게 된 바로는 그들 중 일부는 아픈 사람이기도 했다
나처럼 회사 일에 지쳤거나 아니면 또다른 무언가에 시달려 힘을 잃은 사람들
잠시 쉬어갈 수밖에 없어서, 대낮에 사무실에 있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아픈 사람이라고 하면 뭐..
공원 한 구석에서 사연 있는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기만 할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오늘 낮은 꽤나 생산적이고도 희망적으로 흘러갔다
느지막히 일어나 과일을 먹었고, 재봉틀 수업을 듣기 위해 근처 마트의 문화센터에 갔다
꼭 배워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지만 재봉틀 수업은 낮에만 해서 그림의 떡인 채로 살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낮에 회사를 갈 수 없게 된 덕분에 재봉틀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젊은 아가씨가 왜 이걸 듣느냐는 질문에 수줍게 웃기만 하고 나는 그냥 수강생1 모드로 수업을 들었다
1cm 간격으로 천천히 패달을 밟으라고 해서, 1cm 간격으로 천천히 패달을 밟았다
A부터 J까지 다양한 모드로 천에 실을 놓아보라고 해서, A부터 J까지 다양한 모드로 천에 실을 놓아보았다
그리고 선생님이 하는 대로 똑같이 따라해서 파우치를 만들었다
내 인생 최초의 재봉틀 작품, 하얀색 파우치!
보통은 삐뚤삐둘하게 만드는데 가지런히 잘 박았다고 칭찬도 받았다, 선생님 피셜 '천재'라고 했다
원래의 나 같았으면 칭찬 받았다는 사실에 꽂혔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냥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게 좋다
아파서 얻게 된 대낮의 시간에 시체처럼 누워있지 않고 무언가를 하러 갔다는 게 그저 다행스럽다
오늘부터 나는 낮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취준생 시절 궁금했던 낮사람의 정체를,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알게 되었지만, 뭐 나쁘지 않다
날 힘들게 하던 불안에서 멀찍이 떨어지게 되었고, 오늘 하루도 무난하게 잘 보냈으니까!
나중에 낮에 다시 사무실에 앉아 있게 되는 날이 오면 이 시간이 그리워지겠지
그리고 가끔 이태원으로, 여의도로 황금 같은 땡땡이를 치러 가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하겠지
만약 아픈 마음으로 이 낮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아주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오늘 재봉틀 패달 몇 번 밟고 기분이 좋아진 오늘의 나처럼 자신의 하루를 괜찮았다 생각했음 좋겠다고
+) 집에 돌아와서는 새마음 새뜻으로 휴직기간을 보내기 위해 집 구조를 바꾸고 대청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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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나는 세상에 항복합니다
05
우리는 서로의 불완전한 보호자
06
이제야 겨우 3년차가 됐는데, 휴직을 하고 말았다
07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누굴까 항상 궁금했었다
08
드디어 첫 상담치료를 받았다
09
나는 어쩌다 불안장애까지 얻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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