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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an 01. 2020

꺼져라 2019년, 차라리 반가운 아홉수




내 마음을 말하고 싶은 만큼 털어놔도 좋을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나는 올 한 해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버거웠다고 말하면서 엉엉 울고 싶다



새로운 해가 밝아서 설레던 나이는 지난지 오래라 별 느낌 없을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한 해가 어서 가버리길, 가능하다면 내 기억 속에서 영영 잊혀져버리길 바란 것은 처음이다



돌아보면 힘든 기억만 앞다퉈 떠오르는 어린 시절도, 공부에 시달렸던 고등학생 시절에도,

내 인생이 실패한 것 같아 좌절뿐이었던 취준생 시절에도, 나는 적어도 성취감은 느끼며 살았다



하지만 올해의 나는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끌려다니고, 사용당하고, 소진되기만 했다

아직 배우기만 해도 부족할 이 시기에 나는 매순간 밑천을 드러내는 조마조마함을 안고 살아야 했다



이렇게 한 시기를 넘기면, 한 프로젝트를 끝내면, 한 해를 넘기고 더 많은 경험을 갖게 되면

나는 무엇을 더 할 수 있고, 무엇을 더 배울 수 있는지, 그로 인해서 얼마만큼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하루는 팀장님에게 물었다


"이 일을 잘하면 뭐가 돼요?"

"팀장이 돼."

"팀장 중에서 제일 잘 하면요?"

"OOO (업계에서 유명한 누군가)"



가볍게 던진 질문에 돌아온 가벼운 정답일 수도 있겠지만,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는 내 푸념에 팀장님은 항상 내가 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좋다고, 잘 발전시키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늘 동문서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일을 잘하든 못하든 보람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걸까



잘하니까, 더 잘할 수 있으니까라는 그 말이 내게 동기부여가 되고 뿌듯함이 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 말이 내 불안과 우울의 중심축 중 하나가 된 듯하다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내가 아주 천천히, 지속적으로 저 말에 갇히는 동안

내가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적도, 알려주려 한 사람도 없었다



2019년이 가서 좋다, 내가 원하는 대로 꺼져서 좋다

생각했던 대로 카운트다운 할 때 내가 요즘 생각했던 대로 쌍뻐큐도 날렸다

그렇게 2020년이 왔다



잘 살아야지, 잘 극복해봐야지, 잘 되겠지,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기대하는 대로 흘러가는 게 인생이었다면 지금 내가 키보드워리어처럼 이렇게 혼자 푸념만 하고 있진 않았을 테니까



그냥 새해에는 내 손으로 만든 뭔가를 남들에게 보여주며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재봉틀로 만든 요상한 파우치든, 뜨개질하다 망한 천 뭉텅이든, 지금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그 창작물이든,

올해처럼 가다가 힘 빠져서 제대로 끝맺음도 못하지 않고, 뭐라도 끝까지 해낼 수 있기를

끝내지 못해도 옆에서 부비적댈 수 있는 누군가 있으면 더 좋고



이게 뭔 글인지 모르겠다

그냥 2019년 너무 싫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2019년 속의 나쁜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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