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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Jun 11. 2024

I promise to love you-트레이시 에민

나를 사랑하지 않을 방법

I promise to love you (2010년, Neon, 국제갤러리),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1963~ )

I promise to love you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를 떠올리게 한다. ‘I love you’, 즉 ‘나로부터 너에게로 뻗어나가는 사랑’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고, 영화가 됐다. 사랑은 인간이 느끼는 숱한 감정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시큰둥하게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인간에게 끝없이 부풀어 오르는 비눗방울 같은 설렘, 뜨거운 갈망, 절망적인 질투, 날카롭게 이글거리는 분노, 끝없는 기다림, 가슴 벅찬 충만함, 거칠게 치밀어오르는 정념,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상실감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은 아예 존재하지조차 않았을 수도 있다. 에드바르 뭉크는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질투>에 담아냈고, 베르나르 뷔페는 사랑하는 아내였던 아나벨을 평생의 뮤즈로 삼았다. 두 예술가의 위대하고 절절한 사랑이 없었다면 대규모 전시관 두 곳을 가득 메운 그들의 아름다운 작품이 절반쯤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어디 그뿐일까. 사람들을 열광케 하는 최신 드라마 목록이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는 히트곡은 대개 절절한 사랑의 감정이나 사랑 앞에서 설레는 마음을 노래한 곡들이다. 사랑이 다른 감정들과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평범한 감정에 불과하다면 시공을 넘나들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드라마 주인공이 온·오프 세상에서 나이와 국적을 불문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을 리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야기하는 사랑이 무엇을 위한 사랑인지, 어떤 형태의 사랑인지 고민도 없이 그저 ‘사랑해’를 외친다. 하지만, ‘I love you’의 형태로 존재하는 사랑이 성립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건 바로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대가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건 그렇지 않건 실재하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건, 사랑할 대상이 없으면 ‘I love you’가 완성될 수 없다. 사랑을 고백하고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하려면 약속의 의미로 새끼손가락을 내걸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if you promise to love me

하지만 이런 식의 사랑에는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다는 사실 외에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특정한 대상을 향해 사랑을 품고 사랑의 마음을 고백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외면한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랑이 조건부라는 점이다. 너도나도 원하는 대상을 얻기 위해 변함이 없고, 끝도 없고, 조건도 없는 환상에 가까운 사랑을 약속한다. 순간의 행복을 위해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내걸며 사람들이 내뱉는 ‘I promise to love you’ 뒤에는 감춰진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바로 ‘너의 사랑’이다. 사람들의 입 밖으로 흩어져 나오는 사랑의 말을 제대로, 정확하게 해석한다면 “널 사랑해. 네가 날 언제까지나 사랑한다면.” “널 사랑해, 너의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면.” “널 사랑해. 네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어디 세상에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만 있는 줄 아냐고, 그것보다 숭고한 사랑도 있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하지만, 거룩하기로 치자면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신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도 ‘너를 향한 조건부 사랑’임에는 틀림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믿는 여러 종교는 박애를 이야기하지만 대개 해당 종교를 믿고 교리를 따라야 유토피아에 갈 수 있다고 설파한다. 부모의 사랑도 다르지 않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야 대부분의 부모가 그저 무사히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이 세상의 모든 신께 감사 기도를 올리고 싶은 환희에 사로잡힐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어떤 조건도 없이 무한한 사랑을 줄 것 같았던 부모도 슬슬 효도, 좋은 성적,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품행 같은 사랑의 조건을 내건다.      


나를 사랑해

조건이 붙는 명제가 완벽해지려면 그 조건이 충족돼야만 한다. ‘네가 언제까지나 날 사랑해야 한다’라는 조건이 성립하지 않으면 ‘너를 향한 나의 사랑’도 완벽해질 수가 없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언제든 부는 바람을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언제까지나 나를 사랑해야 한다’라며 네게 내건 조건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켜질 확률은 0%에 가깝고 0%에 가까운 조건에 따라 나의 사랑이 완성될 확률은 더더욱 낮다.      


이토록 복잡한 사랑의 역학이 무색하게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나를 향해 무한한 사랑을 보내는 존재가 있다. 그건 바로 내 자신이다.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을 갈구하고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낯선 사람들이 한두 번의 클릭으로나마 ‘나’라는 존재를 향해 인정의 메시지를 보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몰랐다. 밖을 살피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내면의 자아가 오랫동안 나를 향해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오고 있었음을.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내게서 출발해 타인을 향했던 길고 긴 사랑의 여정이 마침내 내게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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