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마음을 여는 열쇠

에필로그

by 김현정

요즘은 그야말로 최첨단의 시대다. AI를 이용하면 뭐든 쉽게 해낼 수 있다. 복잡한 계산도 순식간에 해내고, 원하는 그림도 뚝딱 완성해내고, 번역도, 글쓰기도 순식간에 해낸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언어를 공부해야 할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설령 세상의 모든 번역가가 사라질 만큼 번역기의 성능이 좋아져도 우리는 언어를 배워야 한다. 기술은 인간의 언어생활을 돕는 도구일 뿐, 기술이 소통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뛰어난 기술은 인간의 언어 능력을 대체하기보다 오히려 보완한다. 짧고 단순한 외국어 문장을 단시간에 대량 번역해야 할 때, 번역기는 업무 시간을 줄여주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또 듀오링고(Duolingo) 같은 언어 학습 앱을 이용하면 언어 공부의 부담도 줄어든다. 매일 가볍게 걷기만 해도 1년쯤 지나면 다리 근육이 제법 탄탄해지듯, 하루 5분씩 앱을 이용해 언어 공부를 하면 자신도 모르는 새 언어 근육이 단련된다.


때로는 완벽과 거리가 먼 어설픈 외국어가 오히려 진심을 전하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자동차를 타고 홋카이도의 시골길을 달리던 중,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울고 싶었던 적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한적한 도로. 가게 하나만 보이면 달려들 각오를 하고 애타게 주변을 살폈다. 시골길에 있는 작은 가게에 손님용 화장실이 있기나 할지 걱정이 됐지만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편이 작은 가게 앞에 엉거주춤 차를 세우자마자 쏜살같이 뛰어내려 거칠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짜증 난 표정의 점원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스미마셍케도. 토이레와 도코데스까?(죄송하지만, 화장실이 어딘가요?)” 서툴기 짝이 없는 발음이었다.


내가 말없이 손짓만 했어도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화장실로 안내해줬을지도 모른다. 영어로 물어봤더라도 눈치껏 내 사정을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더듬더듬 일본어를 내뱉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성가시고 황당한 듯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반갑고 따뜻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한껏 상냥해진 얼굴로 점원은 직원용 화장실의 문을 열어 주었다. 내 발음은 어색했고 표현도 엉성했지만 어떻게든 일본어로 말해보려던 나의 노력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스무 살 때 떠난 배낭여행에서도 프랑스어 인사말이 현지인의 마음을 여는 열쇠 노릇을 했다. 한 달짜리 배낭여행이 거의 끝날 무렵, 쉴새 없이 이어진 빠듯한 일정에 나는 지쳐 있었다. 한 달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수만 보를 걸었으니 몸이 피곤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도 지쳐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도장 깨기라도 하듯 여행 책자에 나와 있는 관광지를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증거 사진을 남기는 여행 방식에 신물이 난 참이었다. 에펠탑에서부터 퐁피두 센터,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궁까지 다 보고 나니 이제 ‘프랑스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 말고 ‘진짜 프랑스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무 기차에나 올라타 마음에 드는 역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을 달리던 기차가 한적한 시골 역에 멈춰 섰다. 무더운 여름 햇살이 쏟아지는 시골 역은 조용했다. 내리는 사람도 드물었고, 승강장도 한산했다. 조용한 동네를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낮은 담장 너머로 푸른 잎사귀들이 햇볕을 받아 반짝였다. 동네 곳곳에 서 있는 키 큰 나무에는 목련을 닮은 탐스러운 꽃송이가 수북하게 매달려 있었다. 관광객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인적 뜸한 골목길 한쪽에 크림색으로 벽이 칠해진 학교 건물이 서 있었다.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한가롭게 뛰어놀고 있었다. 운동장에 들어선 나를 발견한 아이들은 호기심과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봉주르~.” 프랑스어로 인사를 건네자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고등학교 제2외국어 시간에 배웠던 불어 문장들을 생각나는 대로 읊었다. 어설픈 불어를 내뱉을 때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내 입에서 흘러나간 프랑스어 인사말은 그들을 환대하는 언어였고, 나를 배려해 0.5배속쯤 될 법한 속도로 또박또박, 느릿느릿 내뱉는 아이들의 프랑스어는 나를 위한 환대였다.


번역기를 이용할 수도 있고, 대신 말해줄 사람과 함께 가는 것도 좋다. 효율성만 따진다면, 내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이미 잘하는 사람들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한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려면 그저 수박 겉핥듯 어설프게 배우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어설퍼도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고 싶다. 그 말 속에 담긴 문화와 의미를 직접 느껴보고 싶어서다.


이런 마음으로 가장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 언어가 라틴어다. 아직 그다지 진지하게 라틴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지는 못하다. 듀오링고로 하루에 몇 분씩 띄엄띄엄 공부하는 데 불과하지만 그래도 라틴어를 가만히 듣다 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속도는 더디지만 직접 하나하나 공부를 하다 보니 ‘자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dórmĭo, 그리고 같은 뜻의 프랑스어 단어 ‘dormir’가 어딘가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이라는 뜻의 라틴어 단어 ‘ăqua’가 다양한 형태로 파생돼 세계의 다양한 언어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직접 확인하고는 전율을 느꼈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라틴어로 쓴 대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직접 원문으로 읽게 될지도 모른다. <신곡>에서 단테가 베르길리우스가 이끄는 대로 사후세계를 헤쳐 나갔듯 나 역시도 그의 글을 읽으며 인생의 빛을 찾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낯선 단어와 문장을 외우는 일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언어 속에 담긴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겠다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보겠다는 열망이다. 기술이 우리의 언어를 대신 옮겨줄 수는 있어도, 마음을 대신 열어 주지는 못한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유창한 문장이 아니라, 말하려는 마음과 들으려는 태도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애써야 한다. 언어는 세상의 문을 여는 열쇠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마음을 여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끝으로 <번역가의 슬기로운 언어 생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왜 쓰는지 늘 궁금했었는데, 긴 연재를 끝낼 때가 되니 그 마음이 절로 이해가 됩니다. 좋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늘 애는 쓰지만 쓰고 나면 특별한 것 없는 이야기 같아 민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읽고 "좋아요"를 눌러 주시는 분들, 댓글 남겨 주시는 분들, 흔적은 남기지 않지만 읽어 주시는 분들. 모든 분들께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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