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져스의 글: 앓았던 마음을 떠나 보내며 쓰는 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앓았던 마음을 드디어 떠나보냈다.
서른 살에 찾아온 사랑은 몹시 당황스러운 존재였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 큰 설렘을 동반했고,
그랬기에 내 마음에서 완벽하게 떠나보내기란 지독하게 힘든 일이었다.
이런 날 지켜보던 한 친구가 물었다.
“아니 삼십대에 그런 게 가능해? 정말?”
나는 흐르는 눈물을 휴지로 찍어내며 말했다.
“응. 완전 가능해. 완전, 정말, 진짜.”
이 말을 뱉자마자 다시금 주르륵 눈물이 흐르는데… 맞은편 친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슬쩍 보니 그녀는 웃음을 참는 듯 보였고 결국 안되겠는지 빵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그런 그녀의 반응에 살짝 기분 상하려던 차… 나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눈물을 닦으며 친구가 말했다.
“아이고야. 네 모습 보니까 웃겨 죽겠다.”
남은 속상해 죽겠다는데 대체 뭐가 웃기다는 거야.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빼죽이며 거울 속 나를 들여다 보았다.
벌에 쏘인 듯 퉁퉁 부은 눈가…
급하게 먹다 입가에 밥풀떼기라도 붙인 듯 눈가 주변으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휴지들…
그런 내 모습에 나 역시도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사랑이니 연애니 결혼이니 다 필요없다며 한없이 세파에 찌들어있던 염세적인 현대인은 언제부터 비극의 여주인공이 되었던 걸까.
하지만 판타지는 전혀 없는 리얼리즘극의 주인공 답게 나는 예쁘게 우는 법도 몰랐다.
“진짜 웃기긴 하네. 꼴이 완전 그지 꼴이야.”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야. 근데, 이 나이에 이럴 수 있는 네가 부럽긴 하다.”
이별을 할 때면 언제나 생각나는 시가 있다.
바로 기형도의 빈집이다.
이 시의 맨 첫 문장은 누구나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나 역시 작가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이별의 경험이 결국 글쓰기로 향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여기에 나는 한가지 동사를 더 추가해보려고 한다.
바로 ‘달린다’이다.
올해 달리기를 내 일상으로 체화한 만큼 이 문장 만큼 또 나를 적확하게 설명해주는 건 없으리라.
“사랑을 잃고 나는 달리네.”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도 이별은 언제나 맞닥뜨리는 순간 내 모든 자신감과 오만을 무너뜨린다.
나는 이렇게나 마음이 큰데 나에게 마음 한 톨 없는 상대를 바라보기란 미치는 일이었다.
어떻게 마음이 일방통행이 될 수가 있을까. 우리가 나눴던 시간들과 추억들과 감정의 교류는 비단 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걸까.
이해되지 않는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볼 키를 쥐기 위해 수많은 책과 영상을 전전했지만 답은 없었다.
‘왜 사랑하지 않는건데?’를 물어볼 만큼 나는 아무렇지 않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래, 너가 그렇다면 그런거지.’로 결론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답답함. 의아함. 그리고 자책감.
바보. 넌 대체 무슨 이유로 그 사람이랑 너가 같은 온도일 거라고 생각한 거야? 나이 서른이 넘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도 모를 수가 있어?
그 답답한 마음을 나는 달리면서 풀었다.
달리면서 무엇을 얻었느냐고 물어보면, 사실 잘 모르겠다.
얻은 게 있다기 보다는 그 순간 만큼은 거절 받은 내 자신, 초라하고 비참한 내 자신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게 맞겠다.
당장 숨쉬면서 주어진 30분을, 주어진 5km의 트랙을, 주어진 미션을 감당하는 것만이 내 존재의 사명감, 이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이유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그 사람 이름 석자가 생각나고, 생각나는 동시에 눈물이 주르르르륵 흐르고, 내 마음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져 수치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래도 그 사람이 좋아서, 도저히 포기가 안될 것만 같아서, 부끄러움으로 얼룩진 달뜬 마음을 어떻게든 잠재우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울고,
그러다가 어찌저찌 새벽을 맞이해 겨우 잠에 들면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한 중에 그 사람 이름 석자를 불현듯 떠올리며 잠에서 깨어나 또 눈물만 좌르르르르 흘려 보내고.
그렇게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서 물만 간신히 먹고, 아침은 스킵이요 점심 저녁도 입맛이 없어서 대충 먹거나 먹지 않다보니 살은 점점 빠져가고 몸은 허약해져만 가고.
곁에 있는 사람들이 ‘너 왜이렇게 살이 빠졌어? 어디 아파? 안색이 안 좋아보여.’라고 할 정도에 이르르고 나서야, 그제서야 내 정신과 몸을 추스릴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실컷 울고 슬퍼했으니 이제는 제정신을 차릴 단계.
내가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다시금 런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내 삶 안에 녹여내는 것.
그래서 나는 뛰었다.
다시 뛰었다.
그래, 그럼 뛰면서 그 사람 생각이 아예 안났냐고? 단박에 다 해결됐냐고?
누군가 그렇게 물어본다면, 아니, 대답은 노우다.
단호한 거절이 남긴 집착과 미련으로 점철된 사랑은 꽤나 지독해
육체의 고통으로 힘든 와중에도 거친 호흡의 틈을 비집고 눈물 자국의 길을 남기곤 했으니까.
지우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눈물 길은 또다시 트이고 트여
하물며 이 짓을 얼마나 수없이 반복했는지 나중에는 울면서 뛰는 걸로 도가 트일 정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 전과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 점 한 가지는 바로 내가 웃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울면서 뛰는 내 모습이 웃겼다.
그렇게나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내 자신이 가여우면서도 기특했다.
기특한 나. 대견하다 나 참 증말.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두려웠으면서도 다가가고 표현한 내가 용기있다고 생각했다.
괜히 솔직했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는 친구란 허울뿐인 명분으로라도 매끈한 관계로 남을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어영부영하며 친구 아닌 친구로 남는 관계보다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관계가 나의 지론과 맞아떨어졌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헤어지고 난 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참 신기하다)
후회와 자책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울면서 뛰었다.
미련과 수치가 밀려올 때마다 나는 울면서 뛰었다.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울면서 뛰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어느새 32살이 되었고,
이제 사랑의 실연에서 벗어난지 만 1년이 가까운 시간에 이르렀고,
나는 그때보다 살을 6키로나 찌웠고,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응원과 지지를 통해 든든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사이 내게 호감을 표하는 여러 분들에게 관심어린 애정도 받았고,
그간 미뤘던 드럼도 배우고 있고, 교회도 다니고 있고, 아이패드 드로잉도 하고 있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이 글을 다 쓰고나면 나는 또 달릴 예정이다.
내 페이스는 이제 6분 초반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