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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Jun 22. 2020

노쇼시위에 폭망한 트럼프 유세

젊은 SNS 사용자들의 21세기형 저항 운동 

반전 기회였던 장외 유세


엄청난 인파로 행사장이 가득 찰 것이라고 했다. 미처 입장하지 못할 청중들을 위해 야외무대도 준비했다. 아직  Stay at home 명령이 내려진 주에선 10명 이상 모일 수 없다. 경제 활동이 시작된 주에선 급격한 확진자 증가 소식이 들려오는 중이었다. 코로나 감염 시 주최 측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명이 필요할 정도로 인산인해가 염려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폭망. 2만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스타디움의 공식 입장객은 6,200명. 관객이 없어 야외무대는 철거했다. 입장객이 저조하자 티켓이 없는 이들도 입장시켰다. 그래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날 때까지 경기장의 1/3은 텅 빈 상태. 지난 주말 오클라호마 툴사에서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본격적인 선거 유세 현장이다. 


"무려 백만 명이 오클라호마 툴사에서 열리는 토요일 밤 선거 유세 티켓을 신청했다." 


지난주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만만했다. 현장 연설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고 오클라호마 주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곳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입장권 신청자가 예상치의 10배였다. 대중 집회를 금지하는 팬더믹 상황 속에 지지율 반등에 이만한 전시효과는 없어 보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그 기대는 이어졌다. 그러나 오클라호마 툴사 다운타운에 위치한 BOK 스타디움의 입장이 시작되면서 그 예측은 수정되어야 했다.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고 쓰인 지지자들의 빨간색 모자와 대비돼 경기장의 진한 파랑의 썰렁함은 더욱 돋보였다. 팬더믹 이후 다시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유세엔 전 미국인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야심만만하게 추진한 행사는 4년 전 눈 속에 치른 그의 취임식보다 더 썰렁한 모습이었다. 


"Z 세대는 막을 수 없다"  '노쇼 프로테스트 '


트럼프 선거 캠프의 대변인은 이번 저조한 흥행의 원인을 과격한 흑인 인권 시위대 때문이라고 했다. 오클라호마 툴사의 시위대들이 트럼프 지지자들의 행사장 진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나 CNN 등이 분석한 원인은 달랐다. 


유세 다음날인 21일 일요일, 미국의 언론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두 단어를 쏟아 냈다. 

"틱톡 10대들 TikTok Teens" 그리고 "케이팝 덕후 K-pop Stans"


<틱톡 이용자들, 툴사의 대통령 유세 현장을 누비다> CNN

<케이팝 팬들과 틱톡 10대들이 랠리 예상 입장객을 부풀렸을 수> USA Toady

<틱톡 10대와 케이팝 덕후들이 유세를 침몰시켰다고> The New York Times

<툴사 유세에서 케이팝 팬들에게 혼줄이?> Financial Times

<케이팝 열성팬들의 성공적인 경선 사보타주> Vulture


언론은 이번 툴사 유세가 실패한 이유를 SNS에 능숙한 'Z 세대'의 조직적인 방해 시위 때문이라고 했다. Z세대란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출생한 이들로 어릴 때부터 인터넷과 SNS에 익숙한 세대를 지칭한다. 선거권은 없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나름의 판단력과 스마트폰을 비롯한 기기에 대한 익숙함, 거기에 추진력을 가진 세대다. 그들이 지난 몇 주간 틱톡과 트위터, 인스타그램에서 벌인 일들이 심상치 않다. 


그중 하나가 트럼프 캠프에서 유세 신청을 받기 시작한 지난날에 올라온 틱톡이다. 아이오와에 사는 메리 조 로프라는 여성은 지난 11일 자신의 틱톡에 영상 하나를 올린다. '틱톡 할머니'란 별명을 갖게 된 그녀는 흑인 노예 해방 기념일에 흑인 학살의 역사가 있는 툴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를 하는 것에 분노하며 캠페인 사이트로 몰려가 등록하는 시위를 벌이자고 제안한다. 그녀의 영상은 하룻밤 사이 25만 회가 넘게 클릭됐고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도 옮겨져 큰 호응을 불러 모은다. 


다른 이용자처럼 Kpop 팬들도 움직였다. 이들은 지금 미국의 역사를 바꾸고 있는 흑인 인권 운동에 눈에 띄는 활약을 하는 중이었다. 인권 운동의 반대편이랄 수 있는 백인 우월주의 사이트에 연결되는 해쉬태그 #WhiteLivesMatter를 선점했고 지역 경찰국의 목격자 앱을 폐쇄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움직임을 언론들이 계속 주목해 보도해 줄 정도. 백인 우월주의 사이트 등은 팬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올린 Kpop 가수들의 '짤'과 노래와 포토샵으로 도배가 된다. 이 귀엽고 코믹하고 멋진 영상으로 인해 사이트 본래의 목적이 훼손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 주로 10대-20대 초로 추정되는 Kpop 팬들의 SNS 활용 능력과 전투력은 지금 미국 인권 운동에 유쾌하고 든든한 응원군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노쇼 프로테스트"라고 명명되기도 한 이번 시위는 일사불란했다. 툴사 입장권을 예매한 이들은 공화당 캠프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인증 후 바로 지우는 용의주도함도 보여줬다. 미성년자인 자신의 전화번호 대신 캠페인 본부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부모의 번호를 입력하기도 했다고. 토요일 밤에 뉴스를 보며 낄낄대는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 비로소 이번 노쑈 사태의 '범인'을 알게 된 부모들의 인증도 SNS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시위에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행사 직전까지 상황 인식을 못한 책임을 면하기 위해 경기장 밖의 과격한 시위대 탓을 한 캠페인 책임자에게 민주당의 떠오르는 샛별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이 따끔한 트윗을 날렸다.  


"무슨 소리. 넌 지금 틱톡 쓰는 10대들에게 당한 거잖아." 그리고 그녀는 추가로 포스팅했다. 

"케이팝 연합군들, 우린 정의를 위한 너희들의 싸움도 감사히 생각해." 

 

"100만 없는 100만. Mega less mega" 친 트럼프 성향의 신문인 드러지 리포트조차 조롱한 '노쇼 프로테스트'에 대해 언론의 한마디는 의미심장하다. "Z세대는 막을 수 없다."라고. 언론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중계방송 중이다. 


스타들의 생각이 궁금한 팬들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의 불씨를 지피더니

폭력적 위협까지 가하면서 당신이 감히 도덕적으로 우월한 척을 해?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고???'

우리는 11월에 너를 투표로 쫓아낼 거야"


860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지난달 말에 올린 트윗이다. 60년대 흑인 운동을 탄압할 당시 경찰청장의 멘트를 대통령이 인용하자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미국에서 몹시 낯설었던 것 중 하나가 유명인들의 거칠 것 없는 정치적 의사 표현. 연예인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으레 여론의 융단폭격 속에 사죄와 함께 조용히 꼬리를 내리던 우리 현실과는 너무나 달라서였다. 


지금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유명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들은 거의 빠짐없이 팬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Black lives matter에 공감하느냐고 같은. 

BTS나 블랙핑크나 갓세븐의 팬들이 자신들의 스타에게 지금 미국 사회를 뒤흔드는 흑인 인권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곤란하게 하기 위해서나 골탕을 먹이자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순수한 사랑과 파워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스타들이 앞장서 주기 바라는 신뢰와 연대감의 표시다. 

 

그래서 6월 8일 CNN 보도가 더 의미 있다. BTS와 팬클럽 아미가 도합 200만 불을 흑인 인권 단체에 기부했다는 보도다. 방탄소년단의 100만 불 기부 소식에 팬클럽 아미가 순식같이 같은 금액을 매칭해 기부한 것. 더불어 방탄 공식 트윗 계정에 올라온 입장문도 CNN은 보도한다.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합니다. 

나, 당신, 우리 모두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BlackLivesMatter"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도 BTS 팬을 비롯한 K-pop팬들이 흑인 인권 운동의 '예상치 못한' 지원군이 됐다는 보도를 한다. 모금뿐 아니라 넷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캠페인 등에 팬들이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이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의사 표시는 세계인의 정서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우리 K 팝의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변화다 싶다. 


의도를 했건 안 했건, 지금 우리 케이팝 가수들은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BLM 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계 무대에 나선다는 것은 단순히 그곳에서 돈만을 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보여주고 있다. 자신은 물론이고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팬과 또 그 팬들이 속해있는 사회에 재능을 나누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그 역할을 훌륭히 잘 해내고 있는 우리 케이팝의 주인공들이 그래서 더 고맙고 자랑스럽다. 지금 그들을 사랑하는 미국 팬들의 많은 수가 올 11월엔 투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권자로서, 멋진 나라를 만드는데 한 표를 던지는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지금 그들은 케이팝 팬이라는 이름으로 주권자의 연습을 신나고 멋지게 즐겁게 하고 있는 중이니까. Z세대와 케이팝 세대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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