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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Apr 07. 2021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한홍 목사님/ 시 57:1-11

하나님의 기름 부음,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을  다윗은 골리앗도 두려워 않는 용사였다. 그러나 오랜 광야생활에 지치고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향한 책임감에  골몰해 있었을  그는, 블레셋 땅으로 망명하는  실수를 범했다. 천하의 다윗이 국경지역의 성읍들을 약탈했고 소문이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주님의 임재가 없는 사람의 삶이 그런  같다. 다윗이 지쳐서 그렇게   아니라 지쳐서 하나님을 놓은 것이 문제였다. 모든 삶의 문제, 직면하게 되는 모든 한계, 실망감, 좌절감 삶의 어두운 부분들 모두 하나님이 아닌 나만 있어서 그런 것이다.


이 관점의 변화를, 중요한 원리를 깨닫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이제부터 한홍 목사님 설교 타이핑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다윗의 기적 같은 패자부활전을 살펴보았습니다. 기나긴 10년 광야 생활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기나긴 광야생활은 끝이 납니다. 얼마 안 있으면 블레셋과 이스라엘은 큰 전쟁을 하게 되는데 사울 왕은 그 전쟁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다윗이 왕으로 세워지는, 인생의 후반전이 열리는 것입니다. 다윗의 인생 전반전과 후반전을 이어 가기 전에 오늘은 다윗의 영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시편 57편을 살펴보며 하프타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1. 광야의 축복

오늘 다루게 될 시편 57편은 수많은 다윗의 찬송 시 중에서도 가장 많은 복음 성가와 찬송가가 만들어졌던 놀라운 시입니다. 남자분들은 군대 2-3년 다녀오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는데 인생의 20대에 10년을 광야에서 도망자로 살아야 했던 다윗은 참 서럽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광야는 알고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준비하고 들어가게 되는 곳이 아닙니다. 그냥 갑자기 떠밀리듯이 들어가게 되는 곳입니다.


병원신세 평생 한 번도 안 지고 살던 분이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받은 종합검진에서 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습니다. 인생이 갑자기 광야로 떠밀려 들어간 거죠. 어려서부터 부모 속 한번 안 썩히고 잘 자란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갑자기 반항하기 시작하고 이상한 친구들과 함께 집을 가출해 버립니다. 평온하던 가정이 갑자기 광야로 떠밀린 거죠. 은혜롭게 잘 부흥하던 교회가 어느 날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지더니 성도들의 얼굴이 변하고 분열이 생기고 목회자와 갈등이 생기면서 큰 시험에 듭니다. 교회가 갑자기 광야로 떠밀리는 경우입니다. 내 잘못 때문에 광야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윗처럼 엉겁결에, 현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광야로 떠밀려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생에 이렇게 광야가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반응하는  같습니다. 멍하게 가만히 앉아있다가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남을 탓하거나, 자포자기해서 한숨을 - 쉬거나, 잠못이루지 못하고 원수를 향해 이를 갈기도 합니다. 상황을  나빠지진 않을까 해서 두려움에 떠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한걸음만 뒤로 물러서서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광야에 두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만 살아 역사하신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광야로 들어갈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살아 역사하십니다.


좋은 환경 가운데 있으면 신앙생활 잘할  같고 감사와 기쁨이 넘칠  같은데 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오래전에 작곡가 주영훈 씨가 필리핀의 가난한 지역으로 단기선교를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이  한국 자원봉사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 가족도 있었는데 단기선교를 하는 내내 찢어지게 가난한 필리핀 가족들은 한국 사람들이 왔다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반면  재벌 가족의 얼굴에서는 미소를 찾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가족들끼리 말도  할뿐더러 얼굴에 '나는 불행합니다'라고 쓰여있는  같았다고 했습니다. 주영훈 씨는 그때 가진  많다고 행복하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이렇게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데도 우리는 불평불만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런데 뭐가  없어지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같습니다. 병에 걸리거나 사업이 흔들리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햇빛이 찬란한 봄날을 좋아하지만, 햇빛만 계속 있으면  땅이 사막이 된다고 하는 것처럼 때로는 비가 내려야  땅이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도 성공만 계속하면  인생은 아주 박토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불행의 밤도 주시고, 배신의 밤도 주시고 좌절과 실패의 눈물의 광야도 허락하십니다.  시간을 통과하며 우리 영혼의 독기를 빼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우리 영혼의 세탁소와도 같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광야를 통과하며 영혼의 독기가 빠지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생고생시키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광야를 통과시키실 때는 반드시 우리의 영혼에서 불순물을  내시는 중인 것입니다.


신 8: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여러분이 광야를 지나고 있다면 이 말씀을 꼭 붙드셔야 됩니다.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입니다' 광야의 목적과 영적인 의미를 깨닫는다면 그 시간은 더 이상 광야가 아닙니다. 다윗이 인생의 그 힘든 시간 속에서 지은 시편 57편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목적과 이 시간의 의미를 깨달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신앙고백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2. 광야 생활을 더 힘들게 하는 사람들

다윗을 정말 힘들게 했던 요소들은 굶주림도 추위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을 힘들게 했던 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나 이리떼 같은 사람들이 다윗을 힘들게 했었는지요.


시 57: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특히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칼 같은 말들이 다윗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터무니없는 말로 다윗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육체가 힘든 게 아니라 정신적인 인격 살인을 당한 것입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국민 영웅이 된 탓인지 다윗을 시기하고 음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사울과 다윗 사이가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악성 루머를 퍼뜨려서 다윗을 힘들게 했습니다. 본문에서 창과 화살과 같다는 비유가 나옵니다. 창은 멀리서 은밀하게 던지는 무기이고 칼은 상대적으로 앞에서 공격하는 무기입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다윗의 바로 앞에서, 때로는 다윗이 볼 수 없는 먼 곳에서 온갖 악하고 거짓된 말로 다윗을 공격했습니다. 그중에는 다윗이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시 57: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중에 빠졌도다 (셀라)


원수들이 다윗을 잡으려고 곳곳에 덫을 놓았는데 다윗이 견디다 못해 ' 영혼이 억울하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심정을 성경에서 대변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하지도 않은 , 말도  되는 비방과 공격을 해올  정말 억울합니다. 그러나 사순절 고난주간을 앞두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만큼 억울한 사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래도 1%라도 우리 잘못이 있을 텐데,  1% 잘못도 없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던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얼마나 억울했을지,  십자가 안으로 깊이 묵상하며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다윗의 옆에는 지독하게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옆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빨리 제거해주길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쉽게 그런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인격 속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모난 부분들이 남아있는데 그 부분들을 다듬는 도구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간혹 다루시기 원하는 부분과 반대되는 사람들을 옆에 붙이시기도 합니다. 사나운 성격을 다루시기 위해 온유한 사람을 붙이시기도 하고, 소망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나를 낙담케 하는 자들을 옆에 붙이시기도 합니다. 내게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옆에 두시 기도 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공사가 끝나시기 전에 중단에 버리면 길가에 이도 저도 아니게 그냥 버려진 흉한 집처럼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이 과정이 잘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사울이란 병적인 권력자의 횡포를 10년간 받게 하셨습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다윗 안에 있는 제2의 사울을 죽이실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권이 바뀌어도 문패만 바뀔 뿐이지 권력 잡은 사람들 하는 행동이 다 똑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되었을 때 사울 같은 왕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 가운데 다윗왕 안에 있는 사울을 죽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고통스럽지만 여러분 안에 있는 어떤 암적인 존재를 하나님께서 죽이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과정으로 인해서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고 우리가 정금같이 나올 것을 기대해 보면 좋겠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어떤 마음을 살 것인지를 선택합니다.


다윗의 선택 1) 하나님께로 피하기


첫째 그는 하나님께 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시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주님께로 도망가야 합니다. 다른 데로 피하면 큰일 납니다. 중년의 남성이 힘들다고 아내 아닌 다른 자에게 피하면 큰일 나는 것이고, 청소년들이 힘들다고  아닌 다른 곳으로 피하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속이 권태롭다고  밖으로 탈출하는 순간부터 고통스러워집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어도, 하나님께로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래서 세상으로 피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께로 피했던 자였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재앙은 반드시 지나가는데, 중요한 것은  시가 동안 멍하니 앉아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마지못해 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이 영국에다가 공중에서 폭탄을  쏟아부을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낮이고 밤이고 지하 방공호로 도피했어야 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그들이 공포에 질려있을  어떤 할아버지가 동화이야기를 재미있게 시작하아이들은 폭탄 때문에 두려웠다가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두려움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고난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의 예배 안으로 들어갈 , 기도 안으로 들어갈 , 말씀 안으로 들어갈  우리는 비로소 고난의 환경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할  있기 때문에  시절을 이길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배를 타협할  없는 이유입니다.


2) 기도하며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기

시편 57: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여기서 '부르짖음', 절박하게 울부짖는 것을 말합니다.  힘으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하는 기도는 간절해집니다. 다윗은 소년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눈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압니다. 기도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자기 손을 떠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문제가  손을 떠나야 그때부터 우리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있습니다.  에서 하나님 손으로 갑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으로 갑니다.  극심하고 혼란스럽던 현실이 내가 해석하려고  때는 이해할  없었는데 기도하기 시작하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의미 없는 현실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믿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해가  되는 상황에 있을수록 하나님의  그림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해석하는  아니라 그냥 붙잡는 것입니다. 지금은 안갯속을 지나고 있는  같지만 하나님께서 지금도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기도했으면 하나님을 기대하면 됩니다. 우리는 부분을   있을 뿐이지만 하나님은 전체를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생각에는 정말 원망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나중에 보면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축복으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은퇴하셨지만, 유명한 대학교의 교수님이셨던  장로님의 간증이 생각납니다. 이분이 오래전에 미국 유학 당시, 원래 원했던 전공분야는 경제학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제학 공부를 하며 박사학위 시험을 쳤는데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타격이 너무 컸던 것이 재수할 기회도 없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분이 너무 눈물이 나더라고 고백했습니다. 아내는 봉제공장에 다니면서 아이들 둘을 건사하고 거기다 자기 학비까지 보태주고 있는데 이제 어쩌나 싶었답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가족이 모두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며 교포교회의 성가대로 섬기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절망 속으로 자기를  모시나 원망스러웠답니다. 대책이  서는데 돌아갈 수도 없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붙잡고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환경을 넘어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고 그다음  학교에 갔는데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를 딱하게 여긴 미국 교수님이 새로운 제안을  것입니다. 경제학 박사는 워낙 포화상태고 인기가 많으니 경제학 박사학위는 내려놓는 대신 학교에 처음 생기는 분야가 있는데 사람들에게 생소해서 지원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분야는 국제 마케팅이었습니다. 대신 이미 수료한 석사를 다시 시작하여  분야를 위해 , 박사를 묶어서 진행할  있다면 장로님을 추천해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장 결정을 해야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초이스가 없었던 장로님은 결정하기가 너무너무 쉬웠다고 말했습니다.  자리에서 바로 수락하여 계획보다 1,2 늦게 한국에 들어온 장로님은    하나님의 기가 막힌 인도하심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마침   타이밍에 가고 싶었던 서울 모교에 자리가 하나 났는데  자리가 바로 2  미국에 새로 생긴 국제 마케팅 자리였던 것입니다. 한국에는 당시 장로님을 제외한  누구도 전공을  사람이 없어서 경쟁자 없이 손쉽게 모교의 대학에서 교수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이분 말씀이 처음 경제학 박사에서 떨어졌을 때는 인생이 끝나는  같아서 죽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전혀 다른 분야를 전공할  있는 기회를 주셨고  학위를 수료하느라고 한국에 1,2 늦게 들어온 것이 기가 막힌 하나님의 셋업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가 원하던 경제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계획대로 한국에 들어왔다면 이미 포화상태였던 상황인지라 직장을 쉽게 얻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상황이 브레이크가 걸린  같아 보인다면 바로 지금이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타이밍입니다. 훗날, 하나님은 결코 실수가 없으셨다는 것을 알게  것입니다.


3) 악인들의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라

성경에서 하나님은 악인들이 자기가 판 웅덩이에 자기가 빠져 죽게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 6절 후반부에서도 다윗은 그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 악인이 악인을 심판하게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일, 남을 해하는 거짓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지금 그냥 넘어갔다고 하나님이 잊으신 것도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광야 시절을 사울에게 보복하겠다고 이를 갈면서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 화가 나게 하고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향한 끓어오르는 복수심으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됩니다. 그 심판 자체를 하나님께 맡길 때 우리는 자유할 수 있습니다.


잠 20:22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악을 갚겠다고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고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원수보다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원수가 까마귀라면 여러분은 독수리입니다.  번씩 얘기했듯이, 다윗을 핍박하는 사울의 힘이 태산처럼 커 보였을지라도 훗날 사울의 집이 망하고 이스라엘 왕조는 다윗의 자손들로 풀려나갑니다. 사울의 이름은 사라집니다. 지금 우리를 핍박하는 악의 세력이 왕성해 보인다고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다윗 되게 하는 엑스트라에 불과했습니다. 어쩌면 사울도 그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다윗을 핍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부러워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사울처럼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울을 넘어서는 위대한 왕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4) 마음을 확정하라

시편 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 하리이다


마치 흔들리는 배가 닻을 내리고  고정되듯이 마음을 하나님께  붙이고 흔들리지 아야 합니다. 농구 선수들도 공을 가지고 상대편 플레이어를 피해 나아갈   고정되고 흔들리지 않는 축이 하나 있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완전한 슛을 성공시킬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광야처럼 힘든 시기에 있을 때는 악한 세력이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불어넣기 마련인데 다윗은 작정하고 그런 유혹들을 일체 끊어버립니다. 이런 영성은 평소에 다윗이 하나님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지켜온 오랜 시간들이 쌓여서 가능했던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어두운 광야를 지나면서도 아주 의연하고 당당할  있었습니다. 현실은 도망자였지만 그는 왕의 마음과 위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공평하게 나누었고 자신을 밀고했던 사람들에게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기의 백성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리에 올랐을  잘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장교 시절에 어떤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면  사람이 장군이 되었을  어떠할지가  보이듯이 말입니다. 광야에 있는 지금부터 우리는 왕이 되었을 때를 상상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축복의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사람들을 너그럽게 품어주고 밝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기도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신세 한탄하며 허송세월 하면 절대  됩니다. 잘될 수도 있겠지가 아니라 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미래를 믿으셔야 합니다. 믿고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의심할 시간이 있으면 축복의 미래를 감당할  있는 그릇으로 자기를 준비하는데 써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여기에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아직 결론이 남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축복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에 우리는 챔피언입니다. 한번 다운되었다고 계속 그 링 위에 누워있으란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실 때 어깨를 쭉 펴고 일어날 수 있길 바랍니다. 광야의 시간은 언젠가 끝나고 다시 새로운 역사의 무대에 설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서 실력을 준비하고 마음을 넓혀두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서 탁월하게 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진정성을 가지고 잘 지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성큼성큼 인도하고 계심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약속의 땅이 옵니다. 반드시 올 것을 믿고 준비해야 합니다.


 마음이 확정되었고 확정되었다,   반복한 의미는 이렇게   있습니다. 자식이 잘못해서 부모가 회초리를 들었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부모님의 마음을 되려 이해한 자녀가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다시  해나  거고 이러 잘못은 다시 반복하지 않을 거예요.' 하고 말하는 것과 습니. '하늘 아버지, 지금  잠깐 고난의 시간에 있어서 힘들까  걱정하고 계시죠? 걱정하지 마세요!  마음이 확정되었어요. 주님을 절대로 놓지 않을 거예요!' 하는 것과 같은 입니. 다윗은 이러니까 하나님이 예뻐하셨던 입니.


5) 어두운 광야에서 부르는 찬양

시편 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 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 하리이다


우리가 기쁠 때는 찬송하기 쉽습니다. 광야에서 흥이 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광야에서 비파와 수금을 동원해서 찬양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어로 풀이하면 드럼과 일렉트릭 기타를 이용해서  밴드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으로   있습니다. 이건 축제의 찬양인 것입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은 이미 사람의 힘으로 올려드리는 찬양이 아닌 것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하는 찬양입니다. 찬양다는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야다'라고 나오는데,  뜻은 손을 들고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광야는 하나님 앞에서 망가진 상태에서 완전하고 온전하게 항복해버린 사람, 자기의 자아가  깨진 사람이 백기를   성령이 부어주는 찬양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유럽에 30년간 지속된 끔찍한 전쟁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피폐해지고 사랑이 메말랐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기간 동안 무려 오만 오천 곡의 찬양이 나온 것입니다. 그때까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찬양  대다수가  30 전쟁 기간 중에 나온 것입니다. 아마 악한 세력은 전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었을 것이라 예상했겠지만 하나님이 전혀 계시지 않을  같은 절망 속에서도 일하고 계셨습니다. 역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광야를 지나는 사람은 결코 자기 힘으로 노래 못합니다. 어렸을  시골에 가면   있었던  중에 하나가 펌프입니다. 땅에는 물이 있고 펌프가 말라 버렸을  우리는 마중물을 펌프에 넣어줍니다. 우리 영혼의 마중물은 성령의 생명수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길어 올리는 찬양은 파워가 있습니다.


유명한 찬양 작곡가 겸 성악가인 송정미 씨가 찬양을 작곡했을 때도 그런 때였다고 합니다. 연대 성악과에서 성대 결절로 노래를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 기가 차고 낙담도 되었지만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송을 작곡하면서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자기 힘으로 찬양할 수 없는 서럽고 힘든 광야를 지나고 있다면, 당장 내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잠이 오지 않는다면 복잡한 생각을 다 내려놓고 성령의 힘에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근심을 중단하고 하나님을 노래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회의해봤자 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모든 일이 잘 풀려서 나오는 콧노래가 아닙니다. 절망 속에서 성령의 힘으로 끌어내는 내 영혼의 춤입니다. 내 영혼의 고백인 것입니다. 찬양할 때 힘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서 찬양의 영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역사를 꿈꾸기 시작합니다.


6) 새벽을 깨운다는 것

본문 8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보통 새벽이 우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데 다윗은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오는 역사를 그냥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내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역사의 주체가 되겠다는 믿음의 선포인 것입니다. 역사의 피해자도 수동적인 자세도 아닌 능동적인 역사의 주관자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광야에 있다고 해서 머리  풀어헤치고 '아이고  팔자야' 하면서  들이켜고 무기력하게  놓고 신세타령하며 앉아있지 않았습니다. 광야를 지날수록 샤워 깨끗하게 하고 반듯하게  입고 머리 단정하게 다듬고  일어나서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것이다 고백했습니다. 미래의 주인공이 되게 하실 것이다 믿었습니다. 지금은 어려울 지라도  인생은  챕터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평범한 도망자가   있는 고백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성령 체험한 하나님의 자녀 많이   있는 진정한 승리의 선포입니다. 해바라기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루 종일 해의 위치를 따라 이동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렇습니다. 영혼의 초점이 자기가 아닌, 자기 문제가 아닌 하나님께로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주바라기입니다.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께 드린 시선을 놓치지 않고 계속 가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만 바라보며 광야를 지나고 있는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새벽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한 세력이 건드릴 수없는, 빼앗을  없는 기쁨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새벽을 깨우겠다는 다윗의 고백 속에는 이제 힘든 광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떠오르기 직전, 새벽 여명이 떠오르기 직전이 가장 캄캄합니다. 그래서 가장 절망스럽습니다. 그것만 보고 있으면  암흑이 계속될  같은 두려움이 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명의 눈동자가 뜨기 직전에 많이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을 잡고 견디면 그는 찬란한 새벽을 보게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미국 콜로라도주의 산에 등산을 갔던 일화입니다. 한참을 등반했는데도 끝이 없었다고 합니다. 운동을 꾸준히 해온 목사님인데도 너무 지쳐서 등반 중간에 정말 많이 지쳤다고 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내려가려고 하는데 마침 정상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내려오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할아버지도 반바지 차림으로 등반에 성공하는 산이네' 하며 속으로 자존심이  상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너무 힘들어서 고민이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It's closer than you think' '정상은 당신 생각보다 가깝다 포기하지 마라. 조금만  가면 된다'라고 말해주었답니다. 그래서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한걸음 한걸음 올라갔다고 합니다. 조금 더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가다 보니 정상에 도착했고,  정상에서  콜로라도 산맥의 대장관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올라올 때의 땀과 고통이  잊히고 좋은 기억만 남았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정상에 가까이 갔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알게 되면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할 순간들 것입니다. 5분만  갔으면 다윗이 되는 건데, 5분만  갔으면 요셉이, 모세가 되는 건데  5 전에 주저앉아서 놓치고 말았다고 말입니다.  마지막 5분이 크리티컬 포인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인 것입니다.  고개를 넘어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심의 물음표는 내려놓고 지금 한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랬습니다.


다윗은 시글락 성에서 약탈당했을 때가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있고 얼마 후 다윗은 고통의 광야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만약 약탈당했을 때 다윗이 포기했더라면 그는 영광의 제국을 건설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눈물을 머금고 씨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수확할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정상이 생각보다 가깝습니다. 지금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7) 하나님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다윗은 자신의 힘든 시간을 넘어  세계 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주제가 바뀌는듯한 고백이 시편 57편에   나오는데 그중 5절이 대표적입니다.


시편 57: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사실   구절들을 보면, 자신을 향한 창과 화살 때문에 죽겠다고 하던 다윗이 갑자기 하나님의 영광이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기에 조금 문맥이  는다는 생각이  수도 있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그런 것입니다. 고통스럽기에 원망의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다윗의 마음 초점은 하나님께로 맞춰져 있으니까 그는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영광은 하나님이 챙겨주셨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의 필요에만 함몰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자기 신세만 보고 있으면 슬퍼지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 마음이 기뻐지고 기도가 커집니다.


시편 57: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이게 어디 유대 광야에서 쫓겨 다니는 정치범의 고백이라고   있겠습니까. 자기 코가 석자고 당장 내일 먹을 간식도 없고 당장 내일 사울의 손에 잡혀 죽을 수도 있으면서 다윗의 마음은 언젠가는 구름같이 많은 열방이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구심점에 자기가 서있는 것을 꿈꾼 것입니다. 글로벌 비전, 실제로  꿈은 7년이 되지 않아 현실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통일한 다윗 왕궁으로 열방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면서 다윗은 성전을 지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처럼 절망스러운 순간에도 주의 영광이 찬란한 미래를   있습니다. 지금 몸은 유대 광야였지만 믿음의 눈으로 온세계를 보았던 다윗, 하나님께서  믿음대로 다윗의 미래를 축복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것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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