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성공이다.

락앤롤(Rock and Roll)을 마스터한 날

나의 이름은 은율, 최은율. 나이는 열세 살.

생일은 지나지 않아서 만 열한 살이라는데 그런 건 모르겠고, 난 그냥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우리 학교 최고 학년이다. 엄마는 어른들이 나에게 나이를 물어봐서 내가 열세 살이라고 답을 하면 꼭 옆에서 “아직 생일이 안 지나서 열한 살이에요.”라고 거든다.


이제 키는 153cm. 한음초등학교 6학년 4반 친구들 중에서 중간 정도. 나보다 한참 작은 친구도 있고 아예 어른들처럼 커 버린 친구들 사이 중간에 내가 있다. 엄마는 생각나면 한 번씩 “엄마랑 키 재보자.” 하면서 나랑 둘이 등을 맞대고 서서 아빠에게 사진을 찍으라 한다. 올초만 해도 엄마 어깨에 내 머리가 닿을까 말까 했는데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보니 엄마 눈이 내 눈보다 그리 높지가 않았다. 그 사이에 내가 더 컸나 보다. 이제 곧 엄마에게 어깨동무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엄마는 키가 159.7cm라고 한다. 남들에게는 160cm이라고 한다. 반올림해서. 그래서 늘 “우리 딸은 165cm, 우리 아들은 175cm가 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한다. 이런 사소한 기도까지 들어주시려면 하나님은 참 바쁘시겠다. 기도보다는 애초에 좀 큰 키를 가진 남편을 선택하지. 우리 아빠를 선택하고 왜 우리 보고 많이 크라고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가? 엄마는 늘 내 먹는 것에 과민반응을 보인다. 라면도 먹지 말라, 단 것도 과자도 조금만 먹으라. “성장기 어린이는 탄수화물을 먹어야 한다. 아침을 먹어야 공부를 잘한다.” 아우, 잔소리.


사실 나한테는 엄마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 나는 이제 인덕션을 혼자서 켜고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있고, 스팸이나 베이컨 정도는 구워 먹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급식 메뉴가 영 내 취향이 아닌 날에는 집으로 오자마자 가방을 현관 앞에 던지고 라면을 끓여 꼬르륵거리는 배를 채우곤 한다. 엄마가 알게 되면 혼날까 봐 무섭기는 하지만 그래도 라면은 정말 포기할 수가 없다.


엄마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 현관에 던져 놓은 가방을 그냥 두었다가는 퇴근한 엄마에게 한 소리를 들을 거다. 엄마는 항상 “학교 다녀오면 가방을 잘 걸어놓고 물병을 꺼내서 싱크대에 두라.”라고 하는데 나는 맨날 잊어버린다. 오늘도 혼나지 않으려면 라면을 먹고 나서 가방을 책상 의자에 걸어두고 물병도 꺼내 놓아야겠다. 이뿐이 아니다. 홈런볼이나 바나나맛 우유는 꼭 네 개 묶음을 사 두면서 나에게 매일 한 개씩만 먹고 스스로 절제하라고 한다. 어린이에게 이런 요구가 얼마나 힘들다는 걸 엄마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엄마의 바람과 달리 아침에 밥을 안 먹어도, 라면과 홈런볼과 바나나맛 우유를 먹으며 잘 크고 있다. 사실 엄마가 일찍 출근하면서 차려놓은 밥을 한 숟가락 김에 싸서 먹고 말 때는 조금 미안하긴 하다.


“띠띠띠띠 띠 띠디딩.”

“찰칵.”

“우리 딸, 엄마 왔다!”


‘헉, 엄마가 퇴근했네.’


엄마가 퇴근하기 전에 영어 문법 두 장, 6-2 수학 두 장, 영어 단어 10개 암기를 해 놓아야 하는데 다 못 했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갔지? 오늘은 5교시 수업만 있는 날이라 1시 반에 와서 라면 먹고 두 시간만 유튜브 쇼츠 보다가 공부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에라 모르겠다. 너무 어려워서 다 못 했다고 하면 엄마는 믿어주고 도와주시니까, 이따가 같이 해야지.’


오늘은 엄마랑 일주일에 한 번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가는 날이다. 3학년 2학기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가고 있는데 중간에 변덕이 나서 내가 피아노를 배운다고 쉬었던 5학년 1학기를 제외하면 내 평생 가장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있는 운동이다. 그리고 현재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스케이트보드장은 집에서 엄마 차를 타고 20분이면 가는 거리에 있다. 실내 스케이트보드장이라서 눈이 와도 비가 와도 갈 수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이다. 엄마가 야근하는 날, 엄마가 출장 갈 때, 엄마가 몸이 안 좋을 때는 갈 수 없어 속상할 때도 있지만 참고 기다리면 주말에 보강수업에서 다시 탈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다른 아이들을 보았는데 나도 배워보고 싶어서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엄마는 이것저것 배워보라고 피아노도 권하고, 바이올린도 권했지만 모두 시작하고 한두 달이 못 되어 포기하곤 했다. 엄마는 처음에는 “처음엔 다 재미도 없고 힘드니까 인내심을 가져야지.” 하셨지만 너무 재미가 없고 손가락이나 목(바이올린을 목에 끼고 하니까)이 너무 아파서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축구교실과 태권도는 몇 년 다녔다. 나는 음악보다는 체육이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엄마에게 한 달만 같이 배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엄마가 그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엄마가 흔쾌히 “그래? 엄마도 한 번 해볼까?” 하면서 같이 시작해 주었다. 처음에는 우리 동네에서 스케이트보드 선생님을 찾기가 어려웠다. 엄마가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지금의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어른이라서도 그렇고, 원래 운동을 못해서도 그렇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속도가 느리다. 반면 나는 왜 그런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선생님이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시면 가만히 잘 보았다가 따라 하면 쉽게 기술에 성공했다. 그래도 엄마에 대한 의리도 지키고, 엄마가 실망하지 않도록 엄마의 속도를 기다려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삼 년을 배우고도 거북이처럼 천천히 기술을 익혀왔다. 그런데 얼마 전에 엄마가 당분간 쉰다고 해서 나 혼자 매주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서 신나게 타고 있다. 선생님이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은율이는 감각이 있어요. 균형이 좋아요.” 그런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스케이트보드를 즐겁게 잘 탄다.


그런데 이제 점점 난이도가 높은 기술을 배우게 되면서 수백 번씩 반복해야 겨우 마스터할 수 있는 동작들에 도전하게 되었다. 오늘은 락앤롤을 익혔다. 락앤롤(Rock and Roll)은 스케이트보드로 파이프를 타고 올라가 가장자리에 보드를 걸친 뒤 몸을 돌려 내려오는 기술이다. 보드의 끝이 파이프에 걸친 아주 짧은 사이에 몸을 돌려 나와야 해서 감각이 좋은 나도 여러 번 실패를 했다. 그렇지만 백 번쯤 연습했을까? 야호, 오늘도 성공이다. 그날 배운 기술은 그날 꼭 성공하고 싶다. 나도 끈기가 있다는 걸 엄마가 알았으면 좋겠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그만둔 것은 내가 끈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지루함을 견딜 만큼 재미있지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


*파이프(pipe): 스케이트보드에서 파이프란 실제 파이프(관)가 아니라 반달모양의 구조물이다. 스케이트보드를 밀어 올라가 타고 오르내리며 다양한 기술을 연습할 수 있는 것인데, 나무로 되어 있고 모서리는 쇠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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