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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키드 Feb 26. 2024

사람들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아요

실은 이미 해본 적 있는 일이었더라고요.

은영님에게.


한 주 잘 보냈나요? 저는 무척이나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어요. 은영님의 편지가 온 걸 지난 일요일 밤에 알고는 있었지만, 바쁜 와중에 후루룩 읽어버리고 싶진 않더라고요. 고이 아껴뒀다가 수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차분한 마음으로 읽었어요. 그런데 은영님의 편지에도 좋아하기 때문에 미루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역시 우리는 통하는 게 많은가 봐요~


‘과정이 즐거운 일’을 하고 있다는 은영님의 편지를 읽고 저의 일도 돌아보게 되었어요.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덕분에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답니다. 특히 이번 주에는 넘치는 일 때문에 퇴근도 늦고, 외근도 다니느라 체력적으로 지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움직이는 이유는 뭘까를 생각해 보는 한 주였어요.


요즘의 저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 조직이 나아가려는 방향에 도움을 주는 리서치 업무를 주로 하고 있어요. 조직에서 관심 있는 제품의 사용자들을 만나서 어떻게 쓰는지를 관찰하고, 묻고 그걸 통해서 알게 된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식이예요. 이 업무를 하게 된 지 3년 차라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지만, 그래도 처음 맡았을 때보다는 제법 익숙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실은 제가 휴직 때 운영했던 소모임과 크게 결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서 신기하고 재밌기도 해요.


저는 스무 살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이 무척 컸어요. 은영님은 어릴 때부터 미술을 잘하고 좋아했다고 말했지만 저에게는 그런 게 없었거든요. 중고등학교 때 학업을 핑계로 억눌렀던 사춘기 고민이 뒤늦게 대학에 와서야 빵 터지고 말았어요. 한창 심할 때는 '나는 누구일까, 왜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고민이 쉽사리 정리는 안되고 어찌어찌 살아가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었죠.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니 그 고민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겠더라고요. '엄마'로만 살지 않고 나의 일을 하려면 생계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생계 때문이라 해도 정말 아무 일이나 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고, 전업으로 아이를 양육하지 않고 어린이집과 같은 기관에 보내더라도 스스로 죄책감 덜 가질 수 있게, 내가 선택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그래서 둘째를 임신했을 당시에(벌써 4년 전이네요?!) 자기 탐구를 정말 미친 듯이 했어요. 각종 심리검사, 적성검사도 받아보고 자기 탐구를 할 수 있는 오프라인 클래스도 수강하고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보고요. 그렇게 2년 정도 고군분투하다 보니 그제야 좀 알겠더라고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러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지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근데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게다가 다들 스스로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거 있죠? 제가 또 한참 헤매어봐서 그 느낌 아니까!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제 눈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각자 되게 뾰족하게 느껴지거든요. 이런 일들을 계기로 '창고살롱'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당신의 해시태그'라는 소모임을 만들게 되었어요.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사람들마다 가진 고유한 해시태그를 뽑아보는 모임이에요. 사람들은 대부분 나도 모르게 이미 나답게 살고 있더라고요. 가장 가까운 나만 잘 모를 뿐. 그런 면들을 제가 관찰하고 들으며 각 개인의 고유한 패턴을 해시태그로 뽑아보는 시간을 가졌었답니다.


이 소모임을 하면서 엔도르핀이 솟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어요.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회사에서 지금 하는 일이 그 소모임과 너무 비슷한 거 있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고, 유사한 이야기들을 분류해서 패턴을 찾아내고, 보고서에 스토리로 풀어내는 과정이 너무 유사한 거예요. 어쩐지 처음 해보는 업무인데 낯설지 않게 느껴졌던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진로 때문에 헤매다 사이드 프로젝트 삼아 해 본 일이 업무에 또 이렇게 쓰이다니. 참 신기할 따름이에요. 어쩌면 저도 이미 나도 모르게 나다운 삶을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회사 일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에서 종종 맥이 빠지곤 해요. 특히나 자율성이 낮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면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그냥 소진만 되고 끝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저도 과정이 꽤나 중요한 사람인가 봅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이 진심으로 열심히 임하실 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는 인터뷰이를 만났을 때 정신이 번쩍 들면서 저도 덩달아 활기가 차오르는 걸 느껴요.


매일 아침 회사 갈 생각을 하면 너무 행복한 정도는 아니지만, 저런 순간들이 있어서 이 일을 좋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이렇게 말하면 착취당할까 봐 함부로 내뱉을 수 없지만, 저는 지금의 제 일을 꽤나 좋아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는 이 일을요. 내일도 하루 종일 외부에 나가서 회사 밖 사람들을 만날 예정이에요. 내가 모르는 세상의 얘기를 듣는 건 참 재미있는 일 같아요.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전 이만 줄일게요. 또 소식 나누어요!



- 24년 2월 25일 일요일 밤


오늘도 손 편지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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