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키드 Apr 09. 2024

세 번째 휴직원을 작성했습니다

‘너무 좋다’싶은 순간들을 만들어가보려해요

은영님에게.


 지독한 번아웃을 맞이한 제게 필요한 건 '비움'이 아니라 '채움'이란 걸 은영님의 편지를 읽으며 깨닫게 되었어요. 어쩐지 쉬어야겠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안 할수록 더 기분이 착 가라앉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 제가 챙겨야 할 건 채움의 시간이었네요! 근데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을 하다 보니 막상 별로 떠오르는 게 없는 거 있죠? 언제 또 이렇게 까먹게 된 걸까... 속상한 마음이 들지만 다시 하나씩 차차 찾아가 볼까 해요.


 지난주 금요일 회사에 휴직원을 제출했어요. 첫째 출산, 둘째 출산에 이어 세 번째로 쓴 휴직원인데 이번에는 작성하는데 왠지 조금 떨렸어요. 앞에 두 번은 아이를 출산해야 했기에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면 이번 휴직은 온전한 선택이어서였을까요...?

첫째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휴직을 해야 하나 진작에 고민을 많이 하긴 했었어요. 결국엔 그냥 어떻게든 일을 하면서 아이의 새로운 초등학교 생활도 잘 서포트해 보기로 결정했었지만요. 그런데 여러모로 힘에 부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자기를 챙겨주지 않아도 되니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일하라는 아이의 편지를 받으면서 다시 선택하기로 마음먹었어요.


Photo by Fran Soza on Unsplash


 돌이켜보니 그동안 저는 휴직을 선택하기가 꽤나 두려웠어요. 지금의 저는 마치 달리는 기차에 타고 있는 것만 같았거든요. 비틀거리고 중심 잡기는 어려워도 어쨌든 기차 안에는 타고 있으니까 어찌어찌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뛰어내린다고 생각하니 나중에 다시 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뛰어내리는 건 어떻게든 할 수 있겠는데 쌩쌩 달리는 열차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후 난 못 타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좋은 싫든 익숙해진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고 보니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렇지만 결국 잠시 일을 쉬어가기로 결정했고,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것이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할 테니 이제부터는 그것만 생각하려고요.


 당분간은 스스로에게 "뭘 하면 재밌을까?"라는 질문만 던지려 해요. 주말에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편이 요즘 자기가 하고 있는 취미들이 너무 재밌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너무 좋고 너무 재밌는 게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야!"라고 말해주고 보니, '내게는 그런 게 뭘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내게도 너무 좋은 것들을 많이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한 가지 확실하게 떠오른 건 아이들과의 찐한 대화예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마주 보며 '귀엽다, 사랑한다' 말해주는 그 시간이 정말 너무 좋아요. 세상에 이렇게나 벅차오르도록 사랑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이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물론 때로는 화도 나고 속이 터질 때도 있긴 합니다...)

휴직하는 동안에는 아이들과의 진한 시간 그리고 또 나를 채워줄 재미를 찾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려 해요.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네요!


장난감도 야무지게 챙겨서 간 주말의 피크닉


 지난 주말에는 아이들과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벚꽃 구경을 하고 왔어요. 따뜻한 햇빛을 쬐며 눈 내리듯 흩날리는 벚꽃을 보고 있으니 너무 좋더라고요. 너무 좋다는 그 느낌이 또 한 번 너-무 좋았답니다. 추운 걸 싫어하는 저에게 약간 덥다 싶을 정도로 따뜻했던 날씨는 마음도 포근하게 만들어줬어요.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시간도 너무 좋아요. 시간이 벌써 자정이 넘었고, 아침에 일어나 출근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고요하게 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좋아요. 편지를 쓰다 보니 왠지 나를 채우는 것들이 무엇인지 꽤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기네요? 언젠가 긴 목록을 자랑하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때는 우리 서로의 리스트를 공유하며 만나서 재미있는 것들을 함께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은영님도 너-무 좋은 순간을 자주 만나는 한 주 보내길 바랄게요.



- 24년 4월 10일 화요일 밤


월요일에 적어둔 여섯번째 편지를 전해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움과 채움의 균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