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F1 더 무비]의 마지막에 주인공인 브래드피트가 하는 말이다.
그렇다. 이 사람은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이다.
참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나도 돈이 제일이었던 삶을 살다가 다른 가치들도 중요한 삶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아마 이 영화를 10년 전에 봤으면 다르게 느꼈을 것이다.
옛사람들이 '신을 위해서' 행했던 것을 요즘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행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결핍'에서 비롯된 내 열등감은 우월감을 통해 일시적으로 해소되곤 했다.
그래서 나의 처지를 타인과 비교해서 누가 더 나은지 판단하는 것이 본능 같은 습관이 돼버렸다.
난 사람을 등급으로 줄 세우고 평가하는 일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러웠다. 물론 나도 그런 식으로 평가받았겠지만.
사람의 급이 부, 명예, 능력, 인성 등 다양한 항목에서 매겨진다.
그걸 알고 나서부터는 되도록이면 모든 면에서 언제나 최고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열등감이 곧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돈'에 집착하게 되었다. 돈 관련 책만 300권 이상 읽은 것 같다.
돈이면 웬만해서는 언제나 최고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 위에 있을 수 있다. '결핍'을 보상받고 열등감 없이 살 수 있다. 항상 우월감 속에 살 수 있다.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그게 아직도 전부일 수 있다. 나도 그랬던 것처럼.
역설적이게도 우월감 속에 있다면 결코 온전해질 수도 없고, 행복해질 수도 없다. 우월감이라는 것 자체가 시선이 외부에 있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
열등감과 우월감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나의 존재를 돈이나 외부의 것이 좌지우지할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나 나약하다.)
에리히 프롬의 책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지향적 삶]과 [존재론적 삶]이 나온다.
소유지향적 삶은 바로 무언가를 소유해야만,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이다.
나는 철저히 소유지향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존재론적으로 살아보고 싶다.
존재론적 삶이란 무언가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온전한 삶이다.
비교도 평가도 없다. 있는 그대로 온전할 뿐이다.
이와 비슷한 개념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라는 것으로 소개된다.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나만의 독창적인 무언가'
그것은 비교도 평가도 없다. 그냥 나만 가지고 있는 나만의 색이다. 삶을 그렇게 살고 싶다. 나만의 색으로.
여태까지 나는 나만의 색으로 살아왔나? 모르겠다.
현재가 중요하다.
'나는 과연 지금 누구의 인생도 아닌 바로 '나의 인생'을 내 생명력을 다해 살고 있나?'
숲에 가보면 똑같은 나무는 하나도 없다. 나무조차 같은 나무가 없는데, 사람은 같은 사람이, 같은 인생이 있을 리가 없다.
‘사람이 새롭지 않은데, 어떻게 새 옷이 어울리겠는가? 사람을 꾸며주는 옷을 성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은 입은 사람의 진지한 눈빛과 그 사람의 성실한 삶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글을 읽었을 때 마음이 찔렸다.
한 때 패션 산업이 조장하는 유행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개량한복만 입고 다닐 때가 있었다. 우월감이 열등감을 내포하고 있듯이, 남시선에 아랑곳 않고 개량한복을 입고 다녔던 것도 사실은 '특별한 나'를 좀 봐줘.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소유지향적 삶에서 만족할 만한 정점을 찍고 싶었다. 즉,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었다. 큰 부를 쌓고 싶었다. 그런 뒤에 존재론적 삶을 추구해도 늦지 않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다 누구를 위한 돈인가? 내가 실제로 필요한 것 이상의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돈이지 않나?
만약 소유지향적 삶의 끝을 찍어서 큰 부를 얻었다면, 지금처럼 존재론적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삶은 살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남과 내 처지를 비교하며, 구역질 나는 우월감으로 자위하며 얼마나 재수 없고,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돈이 좋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래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또한 나는 이제 정말 '나의 삶'을 살기를 최선을 다해 간절히 열망한다. 내가 '나의 삶'을 살고 있는지는 나만 알 수 있다. 내 삶이기에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죽기 전에 내 삶을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삶. 그런 삶.
열등과 우월에 대한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고 글을 썼지만, 이 또한 내 지적허영을 기반으로 한 우월감을 싸지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날 힘들게 한다. 항상 이상을 추구하지만 현실과의 괴리,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멍에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