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채의 독채펜션 사업
흑마늘 진액 사업
인천의 재개발투자
유튜브 채널 5개 (ㅋ..)
10년 지기 친구에게 억대의 돈 떼인 일
등등
실패감을 깊이 경험했던 적은 많다.
이번 편에서는 내 인생의 많은 실패의 경험 중 나를 가장 절망하게 만들었던 순간 중 하나를 써보겠다.
당시 집이 24층이었는데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잠시나마 느꼈었고 며칠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게 만들었던 이야기다.
사람이 언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가?
‘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질 때가 아닐까?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퇴직을 하게 되면 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사업체를 운영하던 사람이 사업이 망하면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연예인들도 한순간의 인기가 자신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들을 보면서 '자신의 전부가 될 수 없는 것들인데 왜 전부라고 생각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겪어보기 전까지는..
특히 ‘자긍심’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무너지는 순간, 사람이 크게 좌절하게 되는 것 같다.
지나서 보니 나의 자긍심은 ‘진정한 자긍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은 그 '자긍심'이 교만이라는 아주 쉽게 무너지는 모래 위에 위태롭게 서있었던 것이었다.
자긍심이 비참하게 무너지는 경험을 해야 튼튼한 토대 위에 진정한 자긍심을 하나씩 쌓을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오전 8:10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전날에 특징주 정리해 놓은 것들 다시 한번 체크한다.
오전 8:58 주식장 시작할 때 수급이 가장 활발하기 때문에 그날의 주도주를 찾는다.
오전 9:00 오늘 거래종목을 선정하고 트레이딩을 시작한다.
오전 10:00 트레이딩을 마치고 여유롭게 헬스를 하고 점심을 먹고 시장 흐름을 관찰한다.
대략 이런 루틴으로 데이트레이딩을 2년정도 했었다. 정말 적성에 맞았다. 아니, 누구나 만족할만한 루틴이자 직업이었다. 나는 자부심이 있었다.
'어..?'
여느때와 같은 하루였는데, 생각지 못한 손실이 발생했다. 원칙대로 손절을 짧게 했어야 하는데, 본전회복 심리 때문에 나도 모르게 더 길게 들고 있다가 손실이 더 커졌다.
'지금 손절하면 -500만원인데 한 달 동안 열심히 쌓아 올렸던 수익을 한순간에 날릴 순 없어.'
30초 봉으로 바라보던 주가가 갑자기 장대음봉으로 크게 하락했다.
'주가가 순식간에 빠진 거라 이 타이밍에 물 타면 기술적 반등을 노려서 나올 수 있겠지.'
보유현금 최대로 물을 탔다.
물타자마가 또다시 거래대금 터지면서 주가가 장대음봉으로 하락했다.
이때라도 멈추고 손절했어야 했다. 하지만 도박중독자의 뇌처럼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신용미수를 써서 물을 탔다.
또 장대음봉으로 하락했다.
'이제는 진짜 한 번은 반등이 나오겠지'
신용미수 최대로 매수했다. 기억이 가물하지만 빚으로 8억원 정도 매수했던 것이다.
또 장대음봉이 나왔다.
손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30분 만에 확정 손실금액은 1억 2,000만원..
당시 나는 투자자로서 굉장히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렇게 큰 손실이 나니, 나에게 데이트레이딩은 사실 실력도 없는 도박중독자의 '허영'과도 같게 느껴졌다.
그 자부심은 실체 없는 허영 속에서 의미 없이 초라하게 빛나는 자부심이었던 것이다.
'투자자'가 나의 직업이었는데, 한순간의 도박 같은 매매로 나의 직업이 사라졌다.
'몇 년 동안 내가 투자했던 시간들은 모두 헛된 시간이었나?'
여태 주식 트레이더라며 잘난 척하며 재수 없는 놈처럼 지내왔던 시간들이 정말 부끄러워졌다.
시간을 어제로 돌릴 수만 있다면, 아니 시간을 1시간 전으로만 돌릴 수 있다면.. 이상한 매매를 하지 않았을 텐데..
다른 사람의 2-3년치 연봉을 30분만에 날리다니.. 너무 허탈했다. 차라리 회사에 들어갔다면 또박 또박 월급이라도 받았을텐데.. 내 인생에서 투자를 했던 시간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나라는 사람도 존재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과호흡이 왔다. 패닉이 온 것이다. 그리고 24층 창문밖을 뛰어내려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계속 그런 느낌이 들어서 아내에게 전화해서 거친 숨만 쉬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라고 물어보는 아내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해서라기 보다는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식음을 전폐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뭐라도 먹어야지.”라며 그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아내가 없는 용돈을 모아 삼겹살을 사줬다.
아무 말 없이 담담하게 삼겹살을 쌈에 싸서 내 입에 넣어줬다.
지금 생각해도 별말 없이 위로해 준 아내에게 참 고맙다.
식음을 전폐했었기에 삼겹살이 참 맛있었다. 소주는 내 상황처럼 아주 썼다.
“원래 잘해왔었잖아. 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다시 하면 되지. 괜찮아.”
아내가 무심코 해준 말이 위로가 되었고 덕분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아내의 담백한 위로가 나를 살렸다.
다시 힘내서 내가 잘해왔던 '나의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투자로 먹고살려면 3번은 깡통을 차야 한다’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격언 같았다.
이후에도 2번 정도의 뼈아픈 손실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이 격언의 뜻이 무엇인지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투자'
이 단어가 내 인생에 아주 중요한 단어가 될지 20대 초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다.
읽은 재테크 책들에서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주식공부의 시작은 계좌 만들고 직접 투자하기'라고 해서 22살 초에 처음 투자를 시작했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13년의 시간이 흘러 현재, 34살의 나는 ‘투자’를 통해 현금의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놨다. 파이프라인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최소 직장인 초봉정도의 현금흐름이 나오고 그 이상의 현금흐름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공격적 or 방어적으로 시장상황에 따라 구성하기에 따라 다르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내 실력? 아니다.
'운'이다.
투자의 시작부터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첫 계좌 만들 당시 증권사 직원분께 주식 책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월가의 영웅, 현명한 투자자 같은 가치투자 책들을 추천해 주셔서 시작부터 가치투자 마인드를 갖게 된 것.
처음 투자하고나서부터 몇 년 동안은 큰 시장의 출렁임이 없어서 투자를 포기하지 않은 것.
더불어 가치투자는 시장에서 아주 잘 먹힌다고 착각한 것.(그래서 더 가치투자 쪽으로 더 공부하게 된 것)
많은 사람들이 한다는 이유만으로는 휩쓸리지 않는 청개구리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
등등
사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운'이다.
'운'은 내 것이 아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나'도 사실 내 것이 아니다. 온전히 '나'를 통제할 수가 있나?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서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