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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하는 게 뭘까?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by 김라마


코로나 때문에 가게를 폐업했다. 4개의 가게를 동업하며 함께 운영했던 친구도 번아웃이 와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다고 했다. 사실 친구가 번아웃이 오도록 4개의 가게를 아슬아슬하게 지탱했던 것이었다. (친구도 예전의 나와 같이 매일 술을 마셨다..)


때로는 그 속에서 나와서 봐야 객관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가게를 정리하고 나서 실패를 분석해 봤다. 문제는 시스템화였다. 시스템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코로나는 어쩔 수 없었지만, 시스템화의 실패 때문에 친구가 번아웃이 온 것이었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어차피 사업으로 지속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사실 시스템화를 위해 서울에서 손꼽는 외식경영 대학원에 입학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도 원하는 답을 찾진 못했다. 요식업은 결국 사람을 갈아 넣어야 하는 분야인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때 젊음의 열정을 갈아 넣었던, '낭만적'이었던 요식업을 깔끔히 포기했다.


그렇지만 다시 도전했다. 어디에?


숙박업에.





'무작정 시골집을 사서 리모델링했어요'


그 당시, 코로나로 인해 국내여행이 주목받으면서 특히 남해군이 매스컴에 많이 노출되고 관광객들도 늘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제주도의 경우는 숙소가 많았는데, 남해는 늘어나는 관광객에 비해 숙소가 부족했다. 특히, 가격대가 있는 독채스테이는 없다시피 했다.


펜션 공사사진


그래서 내가 잘 아는 남해(고향이 남해)에서 독채스테이를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 장사에서 직접 인테리어 했던 경험들이 있고, 숙박업과 비슷한 파티룸을 운영한 경험도 있었기에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숙박업을 하면 요식업에서 실패했던 ‘시스템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숙소를 잘 만들기만 해 놓으면 예약부터 응대까지 자동화가 가능했고 매뉴얼대로 청소와 세팅을 하면 되기 때문에 시스템화를 통한 사업 확장이 가능해 보였다. 이젠 장사에서 사업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시스템화를 위한 역할분담을 위해 친구 4명을 설득해 동업을 했다.(나:총괄 및 현장관리, 친구 1:인테리어 및 소품, 친구 2:회계, 친구 3:마케팅, 브랜딩)


그렇게 남해에서 2채의 독채스테이를 운영했다.


숙소2, 숙소1

10개월 정도는 스테이의 컨셉과 브랜딩을 잡아가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그리고 틈틈이 오래된 주택들을 찾았다. 각각 다른 마을에 한 채씩 오래된 주택 두 채를 매입했다. 하루 한 팀을 위한, 마당이 있는 별장처럼 만들기 위해 애썼다.


투숙객들의 청각(플레이리스트), 후각(향), 시각(인테리어 및 오브제), 촉각(침구류 및 식기류), 미각(웰컴티, 조식)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일관성 있지만 각각의 특징이 드러나도록 정교하게 계획했다.


숙소 1은 30만원 중반의 프리미엄 숙소, 숙소 2는 10만원 후반의 가성비 숙소로 포지셔닝을 했다. 숙소 1은 타일이나 벽지도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로 구했다. 하다못해 식기류도 도자기 장인의 제품으로 비치했다.


숙소 2는 가성비 숙소지만 아이덴티티가 분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남해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청년과 '작가의 집'이라는 컨셉으로 콜라보를 진행했다. 깔끔한 가성비 숙소에서 작가의 스토리와 사진이 덧입혀지니 새로운 아이덴티티가 생겨났다.


브랜딩과 마케팅을 숙소 공사할 때부터 시작했고, 매주 BM의 고민, 확장성, 시스템화에 대한 회의를 했다. 여러 플랫폼에 입점을 했고, 시스템화의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해에서 독채 스테이 2개를 운영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여름에 쉴 새 없이 자라는 잔디를 깎다 일사병 걸린 일, 지붕에 쥐가 들어와서 쥐 덫을 설치한 일, 장마철에 수천 마리의 날파리들이 알 수 없는 구멍으로 숙소에 들어와서 밤중에 출동한 일, 옆집 할아버지의 이유를 알 수 없는 텃세를 달래는(?) 일도 있었는 등 돌아보니 생각보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것들만 써도 책으로 쓸 수 있겠네.


고맙고 뿌듯한 일들도 많았다.

숙소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말하지 않아도 알아봐 주는 손님들이 참 고마웠고 뿌듯했다. 유튜브에서 인터뷰하기도 했고 남해군 공모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촬영제의도 참 많이 들어왔는데, 특히 당시 꽤 유명한 드라마에 주연으로 나왔던 여배우가 방송에서 우리 숙소에 와서 닭볶음탕 끓여 먹는 장면을 촬영했었는데, 마치 성공한 것처럼 뿌듯했다.(내 새끼가 TV에 나온 느낌이랄까ㅎㅎ)


그런데 4명이서 동업을 하다 보니 또 다른 문제점들이 생겼다.


시스템화는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더 이상의 성장은 없었다. 시스템화 달성한 후, 추가적인 사업확장이나 매출극대화를 고민하고 실행해야 하는데 그대로 정체되었다.

왜냐하면 4명의 동업자 모두, 각자의 일들이 바빠 우리의 사업에 더 이상의 노력을 쏟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먼 곳에서 회사를 다니는 친구, 출산을 앞두고 있었던 친구도 있었다. 당시 나도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한창 매진할 때였고 아들이 태어나기도 했다.




때깔로무역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은 남해의 '때깔로무역', '하버스퀘어', '농촌의 클래식'이라는 곳을 꼭 찾아보길 바란다. (특히 장사나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곳들을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여기보다 잘할 자신 있으면 시작하면 된다.)

아무튼 이곳의 사장님들은 하버스퀘어를 직접 건축하시고 '때깔로무역', '농촌의 클래식'이라는 가게까지 운영하신다. 정말이지 기똥차게 운영하신다. 전문성, 감각, 성실성 어느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으시다.


'아, 사업은 저런 사람이 하는 거구나!'


우리는 4명이서 펜션 2개를 운영하는 것도 쩔쩔매고 있었는데 이분들은 일당백이었다. 심지어 일을 즐기시는 것 같았다.


그때 장사와 사업의 본질에 대해서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장사나 사업을 할 땐, 온전히 자신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스템화와 자동화에 집중한 나머지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성장하지 않으면 뒤쳐진다.


그걸 깨닫고 나니, 우리의 상황이 잘 보였다. 지금은 자동화가 잘되어 사업이 잘 되는 것 같지만 서서히 침몰하는 배였던 것이다. 그래서 손해 보더라도 펜션들을 최대한 빨리 정리했다. 그리고 '때깔로무역'을 보고 나서 사업을 포기해야겠다는 확신과 편안함이 생겼다. (그 사장님들이 혹시라도 보시면 놀라시겠지만, 놀랍게도 사실이다.)

이 분들보다 어떤 영역에서도 뛰어날 자신이 없었다. 전문성, 감각, 성실성 모두.




소유냐 존재냐


이번의 실패원인은 조금 더 근본적이었다. 결론부터 쓰자면 장사와 사업을 하기 위한 나의 역량과 자질의 부족이었다.


사업을 하는 것에 있어서 아이디어와 시스템화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디어와 시스템화는 기본이고,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고 시스템화를 이루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할 수 있는 끈기와 성실성,


즉,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목표한 바를 이뤄내는 기업가 정신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나는 기업가 정신이 충분히 장착되어 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난 워라밸도 중요했고, 어려움이 있으면 포기를 하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구체적으로 돌아보니, 나는 사업과 장사를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0대 때의 그 열정적인 패기가 사라졌던 것이다.


또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며 깨끗하게 사업과 장사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후련했다.


이때부터 삶의 방향성이 '일단 성공하고 보자'에서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전환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20대 초에 감동받으며 읽었던 에리히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 나오는 소유지향적 삶에서 존재론적 삶으로의 전환이 10년이 지나 30대 초에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잘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뭘까?'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상투적인 질문들이 내 가슴을, 내 양심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


장사를 했던 모든 경험들은 이 질문들을 '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브런치에서 내가 즐겨 읽는 글의 작가님께서 사업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적어달라고 요청하셨다.

사실 다른 곳에 꽤 자세히 적긴 했는데, 적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재미가 없고 무엇보다 글에 개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브런치에서는 사업이야기는 간략하게 적고 다른 이야기를 많이 적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글을 참 맛있게 쓰시는(?) 작가님께서 요청을 하셔서 나만의 언어로 최대한 글의 오리지널리티를 담을 수 있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편에는 사업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적어봤는데 마음에 들어 하실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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