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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의 맥주집 사장

실패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by 김라마

오후 네시반, 가게 오픈할 시간이다. 씻지 않고 모자만 쓰고 나가도 늦다.


"따르릉"


단골손님들에게 계속 전화가 온다.

그냥 멀뚱멀뚱 몇 시간째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새벽이 돼서야 겨우 가게로 출근한다.


직원들이 마감한 것들을 대충 확인한다. 그리고 주변가게 사장님들과 술을 마신다.

낮 12시가 되어야 끝나는 음주.

일주일에도 수차례 필름이 끊기는 폭음.


'나는 무엇을 그토록 잊고 싶어서 술을 마시고 있나?'


나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파티룸과 맥주집 창업


길거리 장사를 하다 보니, 또 다른 장사를 하고 싶어졌다.

하나를 성공시키니, 다른 것들도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생겼다.


“도심 속의 펜션은 왜 없지?”


라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파티룸을 구상하고 만들었다.

그래서 원룸을 임대해서 직접 공사를 해서, 거의 서울 최초의 시간제 파티룸을 운영했다.

예약플랫폼에서 1위를 할 만큼 예약이 많았다. 그래서 투자금을 3개월 만에 회수했다.


그때 나는 장사, 사업을 해야 할 운명이라고 느꼈다.


파티룸 입구에 잔디 매트를 깔고 있는 모습(2014년)


더 도전해보고 싶었다.

책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이야기처럼,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학교 주변에 신생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맥주집을 차렸다.

맥줏집 사장이 된 그때, 아직도 23살이었다.


KakaoTalk_20250410_151536246.jpg 첫 가게 맥주집(2014년)


첫 실패


어린 나이에 부모님 돈까지 빌려서 차리게 된 맥주집이라,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하루에 15시간씩 일했고 자면서도 가게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번아웃이 왔다.


“성공을 위해선 지금은 조금 고생해도 돼! “


번아웃이 왔음에도 무시하고 계속 일했다.

점점 상태가 나빠져서 우울감과 대인기피가 심해서 가게 출근하지 않고 불 꺼진 방안에 눈만 뜨고 하루를 보낸 적도 있었다.


첫 가게이기도 하고 프랜차이즈라 멋모르고 무리하게 돈을 투자해서 차리게 된 것이 발단이었던 것 같다. 당시 순이익으로 계산해 보니 투자금 회수의 기간이 꽤 길었다. 그런데 나는 번아웃이 심하게 와서 열심히 가게를 운영할 힘이 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막막했다.


투자금 회수의 긴 시간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그 긴 시간을 투자금 회수에 내 인생을 쓰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론 쉽게 포기한 ‘부모님 돈을 허투루 쓴 불효자’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실패했다는 현실’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다.

술 마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술만 마시고 있다간 나 자신이 완전히 망가질 것만 같았다.

‘살기 위해’ 권리금 일부를 포기하고서라도 가게를 빨리 정리했다. 내가 하는 건 뭐든 잘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장사에서의 첫 좌절이었다. 실패를 인정하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호기롭게 가게를 시작해서 주변 상인들에게 칭찬과 격려도 많이 받았는데, 중간에 포기하게 돼서 실패감이 컸다. 푹 쉬면서 여행을 다니며 몸과 마음을 추스른 뒤,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리고 다시 또 ‘호기롭게’ 도전하게 된다.




현실도피를 위해 술을 마셨다.
현실은 바뀌지 않는데 스스로만 망가지는 일이었다.
손해를 보더라도 가게를 빨리 정리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번아웃이 오면서 우울감과 대인기피가 온 이유는 삶의 균형을 맞추지 못했던 것 같다. 가게를 운영한다는 것이 어린 나이의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어서 마음에 부담이 컸던 것 같다.
경험도 없었고 준비도 부족했다. 장사 한 두 개 운이 좋아 잘 된 풋내기가 세상 무서운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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