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보이스 미디어 교육 참여자, 이예림
인터뷰어 : 유스보이스 미디어 교육 '잊혀진 소리를 찾아라' 참여자, 이예림
인터뷰이 : 유스보이스 프로젝트 매니저, 윤성민.
고등학생 시절 남들 눈에 반듯하고, 유망한 길을 걸어야 한다고 스스로 규정했다. 힙합을 좋아했지만, 사람들은 유별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유스보이스를 만났다. ‘잊혀진 소리를 찾아서’ 교육을 들으며, 음악을 만들었다. 현직 음악인과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힙합은 유별난 것이 아니었고, 대학에 가지 않는 것 또한 그랬다. 동등한 음악인으로 인정받았고, 나도 창작자가 될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 그 뒤 거침없이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청소년 시기, 학교 밖에서 경험한 미디어 교육은 이예림에게 어떤 영향과 변화를 만들었을까.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예림입니다. 유스보이스에서 '잊혀진 소리를 찾아서' 교육을 들었고, 현재는 소리를 통한 동물 행동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향후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데 소리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유스보이스를 처음 만났나요
처음 유스보이스 교육을 들었던 때가 2015년이었어요. 당시 저는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고, 특히 힙합에 애정이 남다른 청소년이었어요. 대학을 준비하다가 문득 회의감이 왔던 시기였는데, 제가 보고 있던 힙합 커뮤니티에 유스보이스 공고가 올라왔었어요. 프로듀싱을 배울 수 있다는 내용이었고, 학교 밖에서 음악을 배울 수 있다는 것에 끌려서 처음으로 유스보이스를 접했습니다.
대학에 회의를 느낀 이유는요?
저는 고1 때까지 정말 모범적인 학생이었어요. 꿈과 직업도 명확했고, 어른들이 추구하는 학생의 상과 닮았었어요. 기자를 꿈꿨는데, 실제 기자를 만나고 일하시는 걸 보면서 '아, 꼭 기자가 아니어도 되겠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다른 직업을 통해서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 관심 분야에 다양한 활동을 했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행사를 기획하고, 영상을 찍고. 그러면서 저한테 맞는 매체와 일을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다 보니, 꼭 대학에 가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세상에 중요한 일을 조명하고 알리는 일인데, 꼭 대학을 가야지만 이걸 할 수 있는 건가?
그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걸 더 고민하고 싶어서, 그해 입시를 안 하게 됐죠. 그 시기에 딱 유스보이스 교육이 시작된 거예요. 샤이닝 스톤 선생님이 제가 원하는 삶의 롤모델 같은 분이었는데, 그 삶을 직접 볼 수 있었어요.
대학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에서, 대학에 안 가도 괜찮겠다는 다짐을 지키는 힘은 무엇이었나요?
우선 친구들 사이에서는 제 선택이 괜찮은 선택이었어요. 주변에 다양한 걸 원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저마다의 관심사에 맞는 활동도 했었거든요. 남들보다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강했고,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다만, 부모님은 절 설득하려고 하셨어요. 고3 때 학교 기숙사에 있었는데, 직접 찾아와서 설득하려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제가 한 선택을 바꿀 마음이 없었고, 제 삶의 중요한 선택은 오로지 제가 선택해서 만들어 가고 싶었어요. 이 생각이 강해서, 제 결정을 잘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잊혀진 소리를 찾아라 교육은 어땠나요?
굉장히 재밌었어요. 가장 큰 인상은 교육 분위기가 캐주얼하고, 사람 간의 교류가 많았다는 점이에요. 그동안 제가 인식한 교육은 각 잡힌 교육이었어요. 교과서에 따라 수업을 듣고, 문제 푸는 방식을 가르치고. 하지만, '잊혀진 소리를 찾아라'는 그렇지 않았어요. 자유롭고, 진행방식도 샤이닝 스톤 선생님이 본인의 방식을 잘 보여주셨어요. 지인들을 초대하고, 창작하고, 노는 방식이었는데 그 방식이 신선하고 제일 좋았어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단연 동묘시장에 가서 LP를 수집하던 거요. (웃음) 거기로 항상 CD랑 LP를 구하려 다녔어요. LP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이었고, 보통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먼저 들어보고 CD나 앨범을 사는 것에 익숙했는데, 동묘에 가니 땅에 늘어져 있더라고요. (웃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표지가 예쁜 걸로 사."였어요. 표지가 예쁘면 음악도 좋다는 게 그분 철학이었거든요. 제가 "아, 저 아티스트도 모르고, 장르도 모르는데요?"라고 해도 예쁜 거 고르면 좋은 음악이래요. (웃음). 듣고 살 수 없냐고 하니까, 동묘에선 그럴 수 없다고. 그래서 예뻐 보이는 걸 샀죠.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었어요.
거기서 산 게 '애니그마'라는 LP였는데, 여기에 수록된 곡을 하나 알아서 샀거든요. 선생님한테 자랑스럽게 샀다고 얘기하니까, 원가 3천 원이라고. 팔면 300원도 안된다고. (웃음). 그랬던 기억이 있네요. 되게 재밌었어요, 그런 순간순간들이.
이후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나요.
'잊혀진 소리를 찾아라'라는 제목답게, 그동안 잊고 있거나 몰랐던 사운드를 샘플링 기업을 활용해 새롭게 재구성하는 교육이었어요. 그때는 장비가 없어서 1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 작업실에서 진행했습니다.
LP를 보면 진짜 오래된 것들이 많잖아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나온 음악도 있고, 그걸 듣는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어요. 또 그걸 재료로 새로운 곡을 만드는 것도 창의적이었고. 미술로 치면 모자이크 기법이 있잖아요? 종이를 찢어서 붙이고, 나뭇잎을 붙이는 것처럼, 음악계의 콜라주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평범한 악기 연주나 노래를 부르는 것과 다른 방식인 게 특히 재밌었어요.
매주 곡을 만들면서 하루는 드럼 루프를 짜 보고, 다음에는 멜로디를 넣어보고. 매주 과제를 내주시고, 수행하면서 진행이 됐어요.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베이스가 괜찮았다, 이 부분은 이렇게 표현해서 좋았다든지 디테일한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게 진심으로 느껴져서 좋았죠.
10대 시절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어른과 또래를 만난 건데, 그런 만남이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아까 힙합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당시에는 힙합이 지금처럼 힙하지 않았어요. 마이너 했고, 이미지도 가난했어요. 컵라면 먹으면서 음악 한다는 이미지였어요. 또 음악은 듣지만 힙합을 듣는 친구는 많이 없어서, 같이 음악 얘기할 친구가 주변에 없었어요.
그런데, 유스보이스 교육을 통해서 현재 그 분야를 삶으로 하고 있는 분을 만난 거예요. 매주 만날 때마다 서로가 추천하는 곡을 들려줬었어요. 뮤비도 같이 보고. 90년대에 나온 음악과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만든 음악을 듣고. 똑같은 분야를 좋아하지만, 내가 모르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들을 수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힙합 분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야가 넓어졌어요.
또, 제가 대학에 안 간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 샤이닝 스톤 선생님은 개의치 않아하셨어요. 대학에 안 가는 게 특이해 보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을 말씀해주시면서 저의 선택을 지지해주셨어요. 그때 그런 지지를 받아서, 자칫 흔들릴 수 있는 제 선택을 잘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0대 시절에 나의 곡을 만들고 들려주는 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어요. 정해진 공부를 하고, 학교에서 지내고, 현장에서 부딪히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에 의문이 드는 것 같아요.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감독이 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저도 음악을 좋아하지만 제가 음악을 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하지만, 잊혀진 소리를 찾아서 교육을 듣는 동안 내가 직접 곡을 만들고, 그 곡으로서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소개받았을 때, 되게 뿌듯했어요.
청소년 시기에 미디어로 나의 생각과 이야기를 표현하는 경험이 왜 필요할까요?
표현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은 이야기는 잊어버리기 쉬워요. 막연히 가졌던 꿈, 누군가 비웃고 바보 같다고 볼 목표들은 조그만 벽에 부딪혀도 지키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걸 명확히 말하고 표현하면, 결국에는 자신을 이끄는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이 많은 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비판을 받으면 어쩌지 같은 거요. 하지만, 나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내 모습을 표현하는 힘이 길러진다고 생각해요.
미디어컨퍼런스에서 강연도 하셨어요. 강연 중 "충분히 투자할 의향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개척자가 될 수 있다."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였나요.
쑥스럽네요,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게. (웃음). 아마 당시에 도전은 용기와 시간, 노력을 요하기에 이 모든 걸 바칠 각오가 있다면 꿈에 다가갈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 같아요. 어쩌면 그때의 저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수도 있어요. 스무 살을 앞두던 시기의 나는 도전을 선택했다고. 평소에 해볼 수 없었던 경험을 유스보이스를 통해서 했고, 같이 공유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게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실제 예림님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도 도움이 됐나요?
그때 만났던 분들을 통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또 창작이라고 해서 어느 하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아트워크를 병행한다던지, 영상을 함께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저 역시도 꾸준히 여러 가지를 병행한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또 유스보이스에서의 경험이 샤이닝 스톤 선생님 같은 프리랜서 프로듀서의 길을 선택하도록 도와주었어요. 비록 아마추어였지만, 그때 배운 프로듀싱을 이용하고 있고, 힙합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기록으로 남기는 포토그래퍼로도 활동했어요. 2~30대 청년 예술가들의 커뮤니티에서 다른 분야 예술가와 교류하기도 했고. 유스보이스 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창작을 하셨나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창작자들과 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가 100일 100 작업 프로젝트였어요. 100일 동안 하루에 한 작품씩 제작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작가는 글, 화가는 그림, 음악가는 곡을 썼어요. 며칠이 되었던 1일 1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매일 곡 작업을 했고, 'Koi Magenta'라는 곡을 만들었어요. 유스보이스 교육에서 배웠던 샘플링 기법을 활용해서, 소리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하루는 그냥 뭐든 써보자는 생각으로 비트를 찍었는데, 8마디를 찍고 나니 꽤 마음에 들었어요. 이 노래를 어릴 적에 키우다 실수로 죽은 붉은 금붕어에게 헌정하기로 해서 'Koi Magenta'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가사를 붙여 첫 EP 수록곡으로 하려고 해요. 발매 시기는 아직 미정입니다.
이외에도 대학에 들어와서 글도 꾸준히 쓰고 있고, 문학동아리와 창작집단에 가입해, 에세이, 시, 소설 작업을 했어요. 10년 안에 제 관점을 담은 책을 내는 게 꿈입니다.
앞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셨다고 하셨지만, 현재는 소리를 통한 동물 행동에 대해 공부하고 계세요. 어떻게 이 분야를 공부하게 되셨나요?
저는 세상을 이루는 다양한 자극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에 관심이 많아요. 예술 감상, 타인과의 교류. 모두 똑같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소리를 통해 감정과 소통을 주고받는 만큼, 동물들도 다양한 행동을 합니다. 천적과 먹잇감의 정보를 얻기도 하고, 동료들과 협업하기도 해요. 물리적으론 단순한 진동에 불과한 소리가 인간과 동물의 청각 체계를 거쳐 세상에 관한 의미 있는 정보로 변화하는 게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공부하게 됐어요.
여기서 배우는 지식은 비단 동물 학자뿐만 아니라, 의학이나 음악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큰 전략이 될 수 있어요. 여기서 배운 지식들이 훗날 제 음악 활동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 때문에 현재 이분야의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유스보이스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활동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유스보이스의 역할은 그런 교육을 제공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유스보이스가 청소년과 청소년, 청소년과 사회, 청소년과 어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