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보이스 교육자, 김은화.
인터뷰어 : 유스보이스 교육자, 김은화
인터뷰이 : 유스보이스 프로젝트 매니저, 윤성민.
유스보이스를 통해 미디어 교육자라는 정체성을 얻었다는 사람. 마음에 드는 공간만 보면 흥분되고, 꼭 가보고 싶은 사람. "우린 무시해도 좋으니, 자신의 성장에만 집중해라."는 말에 반했다는 사람. 교육자의 성장이 교육의 질을 향상하고, 질 좋은 교육 콘텐츠가 청소년에게 이어진다. 유스보이스에서 정체성을 얻었다는 은화님께, 유스보이스를 통해 깨달은 정체성이 청소년 교육과 은화님의 삶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들어본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유스보이스 미디어 교육자 김은화입니다. 2016년에 처음 유스보이스를 만나서 '공간공감'이라는 청소년 미디어 교육 프로젝트를 몇 년간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원주에서 그림책 예술강사, 영화예술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스보이스를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셨나요?
누가 가르쳐 준 건 아니고, 페이스북이 알려줬습니다. (웃음) 우연히 페이스북 검색을 하다가 교육자 모집 공고를 봤어요. 그전에도 유스보이스는 알고 있었는데, 활동하는 교육자분들을 보니 제가 할 수는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활동하는 분들이 너무 대단해서 그랬습니다. 힙해 보였고. 그런데 공고를 보고, '지원은 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도전은 할 수 있는 거니까.'라는 생각으로 한번 해보자 신청을 했고, 그 뒤 함께 하게 됐습니다.
신청 시점에서 유스보이스는 어떤 이미지였나요?
앞서 말한 대로 힙한 느낌이었어요. 나이로 지정하고 싶진 않지만, 젊은 교육자가 많았고. 미디어 전반 분야에 익숙한 분들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사진을 잘 찍거나, 영상을 만드는 기술적인 분야는 아니니까, 지원할 때 받아주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신청, 면접 과정에서 기억나는 게 있으세요?
면접이 너무 재밌었어요. 방탕 면담(방대욱+김탕 면담)을 잊을 수가 없어요. (웃음). 무릎이 닿을 정도의 작은 공간에서, 방탕 두 분이서 농담을 하시고, 간간히 뭐 하나씩 물어보고 "아, 맞아요. 그거 재밌어요." 하면서 자유롭게 대화하는 분위기였어요. 면접 같지 않고, 재밌는 얘기 듣다가 끝났어요. 너무 즐거웠고, 그전에 경험한 면접과는 달랐어요. 전에는 강사 한 명에 심사위원 여럿이 질문을 던지고, 벌벌 떨면서 답하는 위압감 있는 면접만 겪었는데, 유스보이스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까. 이런 점이 유스보이스가 가진 색이구나 싶었죠.
유스보이스 이전의 은화님은 어떤 색을 가지고 있었나요?
기존 강사 활동에서의 저는 일회용 배터리 같은 느낌이었어요. 언제든 대체될 수 있고, 저 아니어도 할 사람 많고, 언제든지 잘릴 수 있고,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너, 그만해.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고 했을 때, 아무 할 말 없이 나가야 하는 인력이었죠. 방전되면 교체되는 배터리처럼 언제든 내 자리가 채워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유스보이스는 그렇지 않고,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정말 바라는 게 없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보라고 하셔서 정말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어요.
이런 성장과 자유로움의 과정이 교육자에겐 어떤 힘을 주나요?
해방감? 해볼 수 있는 만큼 해보라는 말이 어찌 보면 막막할 수 있는데, 유스보이스에서는 '그래 그동안 억눌려 있던 걸 다 꺼내보자.'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안전했습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데, 그런 안정감 덕분에 제 자신의 교육과 커리큘럼을 실험해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조금만 실수해도 비난받는다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죠.
이렇게 내가 교육을 할 때 나의 성장에 포인트를 두고 할 때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할 때가 뭐가 다른 지 알 수 있었고, 성장을 담보로 하는 교육이 나에게 도움이 되고 교육에 참여하는 청소년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그 덕분에 교육자로서의 저의 정체성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교육자의 성장을 담보한 교육이 청소년을 만났을 때 어떻게 전달되는 걸까요?
유스보이스를 통해 미디어 교육을 할 때는 저역시도 저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었어요. 그래서 참여 청소년들에게 스스로의 성장에 맞춰서 시간을 보내라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었어요. 만약, 제가 그 과정 중에 있지 않거나, 성장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진심으로 말할 수 없었을 거예요. 가끔 학교에서 하는 말들이 공허하게 들릴 때가 있어요. 결국 대학입시로 회귀하는데, 진로 교육 중에 "너의 꿈을 찾아봐."라고 하는 게 참 공허해요. 저는 그게 진심으로 청소년 진로에 관심이 없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유스보이스 미디어 교육자 양성에 있으면서, 저 역시도 그 상황 가운데 있었으니까 "너한테 집중해봐. 지금 너한테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해봐."라고 말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진실되게 한 교육 프로젝트는 어떤 거였나요?
'공간공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건 제 짧은 서사와 연관이 있어요. 육아를 하면서 제 인생이 180도 달라졌는데, 2~3년 동안 밖에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어요. 항상 아이를 신경 써야 했고, 가까운 데 나가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고. 그게 답답했는데, 그 당시에 광화문 거리를 미친 듯이 쏘다니고 싶은 게 제 소원이었어요. 그 이후 조금 여유가 생겨서 서울과 원주를 오갔는데, 그때 여러 공간을 다니면서 '나는 왜 이 공간에 오고 싶었을까? 이 공간이 매력적인 이유는 뭘까? 이 공간이 결국 나를 말해주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공간공감'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세 파트로 나눠서 활동을 했어요. 자기의 과거에 있는 공간을 찾아가보기, 현재 내가 즐길 수 있는 공간 찾아가보기, 미래를 생각했을 때 앞으로 내가 가보고 싶은 공간 가보기.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눠서 인생의 흐름처럼 그 공간을 직접 가보고, 다녀온 후 이야기 나누는 걸로 진행했습니다.
평소에 너는 무슨 책 좋아해? 무슨 영화 좋아해? 는 물어보지만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요. 이 물음 자체가 아이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하고,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그걸 보며 공간에 대해 묻는 것도 유의미하고, '공간도 중요한 미디어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교육을 진행하며 겪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공간공감'에 참여한 친구들이 후기를 그림과 사진으로 남겨주기도 했는데, 그걸 엽서로 만들었어요. 친구들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는 작품들입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민주라는 친구의 '간현 버스 정류장' 그림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제가 2016년에도 하고 2017년에도 '공간공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2017년에 일면식도 없는 친구가 페이스북에서 보고 자기 친구까지 불러서 함께 해줬어요. 은애라는 친군데, 이 프로그램을 만들어줘서 고맙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말해준 게 기억 남아요. 또 아무래도 '공간공감' 프로젝트가 학교 끝나고 진행되는 거라, 집의 반대로 못 오게 되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부모님께 긴 편지를 작성해 설득해서 당일날 깜짝 등장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참여를 해줘서인지, 한 명 한 명이 정말 소중했어요.
청소년 시절에 나다움을 생각하고, 미디어로 표현하는 경험이 왜 필요할까요?
그전에는 그런 질문을 안 하잖아요. 진로 교육에서 물어볼 수는 있죠. 하지만 거기서 묻는 것과 유스보이스가 묻는 나다움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진로교육에서 묻는 게 활동지에 적기 위함이라면, 유스보이스의 물음은 평생 안고 풀어보라는 의미에서 던지는 거잖아요. 이런 물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주는 거고. 나다움이 뭔지에 대한 물음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4차 산업혁명이라면서 많은 어른들이 불안해 해요. AI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한다, 이러면서. 저는 어른도 불안하지만, 청소년도 불안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불안감 가운데 내가 나로 유일해져야지 하면서 살아가는 힘이 나다움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나다움이 앞으로 살아갈 불안한 시대에, 불안하지 않도록 하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물음을 청소년 시기에 느끼는 게, 불안한 세상에서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가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유스보이스 이전과 이후, 은화님께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교육자로서 더 이상 일회용 배터리가 아니야.'라는 생각을 해요. 유스보이스 이전에는 다음에 기회가 올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어요. 유스보이스 이후에는 저를 배터리로 대하면, 배터리 정도의 역할만 하는 것 같아요. 배터리를 원하십니까? 이러면서. 혼자서라도 대응하는 마음가짐이 생겼고, 불만이 많아졌어요. 왜 교육자를 이렇게 대하는지에 대해 의문도 갖고. 예전에는 잘못된 게 잘못된 거다라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제는 잘못된 것에 대해서 따지고 싶고.
물론 저도 아직 불안해요. 처음부터 유스보이스를 통해 교육자가 됐다면, 더 단단한 정체성을 가졌겠지만, 다른 곳에서 정체성을 키우다가 이제야 저를 조금 바꾸고 있는 과정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그전에는 내게 주어지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없으면 뭐 만들어서 하지 뭐.'라는 식으로 바뀌었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을 하고 있어요. 내가 있는 지역에서 김은화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된다는 숙제가 생겼고, 실제로 숙제를 해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하고 계신가요?
그림책 예술 교육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든 진짜 예술 교육 같은 걸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감사하게도 김은화라는 사람을 보고 들어온 의뢰가 있어요. 그런 일들에서는 제 색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그림책을 매개로 성인 장애인 분들께 교육을 진행하는 건데, 처음엔 엄청 큰 도전이었어요. 그전에 장애인 분들을 대상으로 해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는 부분이 많지만, 2년째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2017년에 원주에서 그림책 스터디 모임도 만들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스터디 모임이 없더라고요. 어디 가서 공부하지 이러다가, '뭘 어디가. 내가 직접 만들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2명이서 시작한 모임이 현재는 5명이 돼서 몇 년째 진행하고 있어요. 이런 부분에서 유스보이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 직접 해볼 수 있게 했고, 내 색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유스보이스에게 바라는 점이나 지켜줬으면 하는 가치가 있을까요?
지금도 충분히 잘 가고 계신 것 같아요. 지금 하는 방향대로 가면 될 것 같아요. 30주년, 40주년, 50주년...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유스보이스를 모르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잖아요. 한국에 사는 청소년들이면 누구나 유스보이스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자신의 삶 속에서 유스보이스와의 경험을 자유롭게 선택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경험도 가능하구나, 이런 청소년기를 보내도 되는구나 알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사심을 털어놓자면 아이가 몇 년 후부터 청소년기에 접어드니 아이에게도 유스보이스를 자신 있게 소개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