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의 육아휴직기간 동안 내 삶에 연관된 다양한 것들을 생각해봤다. 나의 과거, 일, 현재, 미래, 취향, 취미, 정체성, 인간관계, 장점과 단점, 호르몬 주기, 감정 등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사뭇 진지한 태도로 하나하나씩 되짚어봤다.
그 중에서 이해는 되지만 완벽히 이해할 수도 없고 화도 나도 밉지만 안타깝고 그리운 것.
바로 엄마였다.
한 때 내 삶의 좌우명은 "엄마처럼 살지 말자"였다.
엄마가 나를 낳고 키운지 40년이 된 지금도 나는 엄마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의 삶이 행복하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
- 아빠의 폭력과 폭언, 무시를 견디는 엄마
- 주식투자에 빠진 아빠의 무리한 요구를 온 몸으로 받아내는 엄마
- 늘 뭔가가 억울하고 서러운 엄마
- 20년째, 1시간씩 전화로 매일 반복되는 아빠의 만행을 털어놓는 엄마
- 그러다 좀 잠잠해지고 살 만하면 안부전화 한 통 없는 엄마 (살만한 게 아니라 견디고 있었던 것이었다)
엄마의 얼굴에서 행복과 기쁨의 표정을 본 기억이 없다. 늘 어딘가 힘들어보이고 피곤해보이고 불편해보이는 엄마의 모습들이 가득하다.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에 없다.
엄마의 결혼생활이 불행해보여서였을까. 아빠랑 사는 게 늘 힘들고 괴롭고 그만 살고 싶다는 말만 들어서였을까. 나의 결혼생활도 막연히 엄마와 같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엄마는 불행한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해보이지 않았고 결혼은 장미빛이 아니라 잿빛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평생 죽을힘을 다해 자식을 키우고 써보지도 못하고 아빠가 날려버린 살림살이 주워 담아 어떻게든 아끼고 살아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따뜻하게 들어본 적이 없는 엄마.
차마 아내에게 하지 말아야 될 독한 말들을 쏟아내는 아빠. 손이 느리다, 답답하다, 게으르다, 몸이 약하다, 생활력이 없다는 비난을 들어도 심근경색과 당뇨병이 있는 아빠의 건강을 챙기고, 밥상을 준비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결혼이 깨질지도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항상 무언가를 준비를 했다. 해보고 싶은 것은 후회가 남지 않게 다 해보려고 노력했고 아이들 중심, 남편 위주로 사는 삶을 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였다.
그런데 살아보니 엄마와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엄마의 남편과 나의 남편도 다른 사람이었다. 엄마의 남편은 살림만 하는 아내를 한심하게 여길 때가 많았지만 내 남편은 가정과 아이들에게 충실한 지금의 내 모습을 고마워한다. 요리와 살림이 서투르고 다혈질인 내 성격을 맞추며 사는 게 힘들텐데도 별 말이 없다. 밖에 나가 일 한다고 아이들을 외롭게 하는 것보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보내는 나를 더 좋아한다. 맞벌이 할 때보다 지금 더 많이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내 눈치를 본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육아와 살림으로 지쳐있는 나의 모습을 인정한다는 뜻이겠지.
내가 엄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건 엄마의 타고난 기질과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엄마를 대하는 아빠의 태도 때문이라는 것을 나이 마흔에 깨닫는다. 아빠의 말대로 나 역시 엄마가 무능력하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다고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도 엄마를 무시하며 살았었다.
엄마가 죽을 힘을 다해 많은 것을 인내하며 오빠와 나를 키웠다는 것을 이젠 안다. 내가 남편이라는 타인과 10년을 살면서 두 아이를 키워보니 더 확실히 알겠다. 아빠를 여전히 사랑하고 이해하지만 이젠 엄마가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엄마 인생에서 커다랗게 자리했던 아빠의 자리에 이제 다른 것들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그게 별거라도 좋고 이혼이라도 상관없다.
자식을 위해 모질고 외로웠던 세월을 견뎌준 엄마 덕분이라는 생각에 또 한번 눈시울이 붉어진다.
엄마한테 전화나 한 통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