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인 아들은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작년에 약 반 년정도를 본인 방에서 자더니 어느 순간 안방에 똬리를 틀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아직 우리 부부와 같이 자니 킹 사이즈 침대를 두 개 붙여 안방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들은 그 침대 아래 매트리스를 깔고 바닥에 잔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고 물어봐도 딱히 이유가 없다. 그냥 동생도 엄마 아빠랑 같이 자니 본인도 엄마 아빠랑 같이 자고 싶다는 거다.
같이 자는 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아들은 굉장히 독립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편이라 일상의 모든 일을 알아서 챙긴다. 학교 공부, 운동, 학습지 숙제, 친구와의 관계 등 모든 것을 아들 스스로 한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과 인천 여기저기를 다니고, 친구가 이사 간 동네까지 찾아가 그 동네에서 새 친구를 사귀어 오기도 한다. 같이 축구시키는 학부모들한테도 "ㅇㅇ이는 참 당차고 야무져요"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마냥 오냐오냐, 싸고돌며 키우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의 방이 점점 창고화(?)가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몇 번은 치워줘 보기도 했다. 혼도 내고 애원을 해보기도 했지만 아들의 방 정리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 본인 학교 가고 운동 갈 때만 깨끗이 닦고 나가는 하숙생 같다고나 할까? 친정 엄마 표현을 빌리자면 허물만 벗고 자리를 뜨는 한 마리 뱀 같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침대에는 구단 유니폼과 운동복, 이번에 지급받은 동복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고, 책상에는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은 풋살화가 있다. 방에는 그날그날 골라서 신고가는 축구화와 풋살화들이 널브러져 있고 서랍장의 옷들은 어디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게 처박혀 있다.
생활하는 집 안에 신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수 백번을 말을 해도 적당히 능글맞게 웃으며 도망 다니다가 좋은 말 할 때 치우는 게 좋을 거라고 경고를 하면 주말까지 치우겠다고 또 미룬다. 쓰레기로 간주하고 몽땅 가져다 싹 버리겠다고 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아들 방에 있는 물건들은 사진에 찍힌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진다. 다른 엄마들은 이 꼴을 계속 보며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는 그냥 한 번 치워주는 게 속 편하다고 할지 모르겠다만, 내 생각은 다르다. 모든 일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 달라고 주장하면서 본인의 생활공간을 이렇게 방치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집안일을 돕는 것도 당연하지만 자신의 방과 소중한 운동 용품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도 본인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안 치워주기로 결정했다. 내 잔소리와 아들의 게으름 중 어느 쪽이 승리할지는 잘 모르겠다만, 일단 나는 끝까지 손대지 않기로 했다.
이번 주 화요일,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방 정리를 안 했을 시 경고 5번이 누적되면 안방에서 퇴출하기로 약속을 했다. 일요일, 그러니까 오늘까지 치우지 않으면 1회 경고다. 아들은 지금 친구들과 놀이랜드를 가기 위해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가기 전에 분명 잊고 있을 것 같아 한 번 더 방 치우라고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예상이 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칼 같이 지킬 것이라 믿어는 본다.
얼른 경고 5번 누적으로 본인 방에서 잠자길 소망한다. 밤 11시마다 자려고 누운 우리 부부와 동생에게 몸싸움을 걸어 잠자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 것이 싫다. 언뜻 보면 중학생처럼 보이는 이 다 큰 녀석이 어서 수면독립을 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