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베팅에 나타나는 '요기 베라 편향(Yogi Berra B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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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정책연구실 이영임 박사의 세 번째 글로서,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가 말했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이 어떻게 스포츠경제학 분야에서 입증될 수 있는가를 쉽게(!) 설명한 것입니다.
[참고논문] Page, L. (2012). ‘It ain’t over till it's over.’Yogi Berra bias on prediction markets. Applied Economics, 44(1), 81-92.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보셨을 만한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쉽게 포기하지 마라, 끝까지 최선을 다해라, 승리의 여신이 막판에 너에게 미소 지을 수도 있다, 등의 메시지를 담는 메시지죠. 미국프로야구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 팀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Yogi Berra)가 남긴 명언입니다.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 섣불리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 말은 야구나 다른 스포츠 경기, 선거나 시험 등에서도 자주 인용되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끝까지 해봐야겠다는 희망을 줍니다. 비슷하게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단념하면 그때는 끝이야’(슬램덩크 안 감독이 정대만에게 날린 대사) 등이 있습니다. 부모나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항상 이와 같은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요청하곤 하죠. 하지만, 이 말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대가 거래되는 예측시장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예측시장이란 미래에 발생 가능한 사건에 따라 손익이 결정되는 계약을 거래하는 시장을 의미합니다(Wolfers and Zitzewitz, 2004). 예를 들어 “영화 「극한직업」의 누적 관객 수가 천만 명을 돌파한다면 천 원을 지급한다”는 계약이 있고 그 계약의 가격이 현재 오백 원이라면, 그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 확신하는 사람은 계약을 사려고 할 것입니다. 반대로 천만 관객을 돌파할 확률이 절반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계약을 팔려할 것입니다. 그리고 관객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천만 돌파를 확신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위 계약의 가격은 점점 높아지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계약의 가격이 변하는 추이를 살펴보면 영화 흥행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어떻게 형성되어 변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죠.
‘미래에 발생 가능한 사건’이란 무궁무진합니다. 주식 가격, 영화 흥행, 선거 결과, 심지어 내일 날씨까지도 모두 계약의 형태로 거래될 수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빈번하면서도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아무래도 스포츠 경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2019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두산이 될 것이다”라든지, “3월 11일 열리는 아스널과 맨유의 경기에서 맨유가 2점 이상의 차이로 이길 것이다”등등 수많은 계약이 존재할 수 있고, 또 거래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거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몇 군데 존재하는데, ‘트레이드스포츠(tradesports.com)’라는 사이트에는 과거에 스포츠 경기와 관련한 수많은 계약이 거래되는 예측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Lionel Page는 이 예측시장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가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가설을 테스트하기로 합니다.
예측시장과 스포츠 경기
Lionel Page의 테스트를 소개하기 전에, 트레이드스포츠의 운영 방식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죠. 예를 들어 2019년 KBO 리그 우승팀에 대한 매매가 이루어진다고 가정해 봅시다. 트레이드스포츠에서는 위와 같은 계약을 0~100포인트(10포인트=1달러) 사이에서 거래하게 되고, 각 계약의 초기 가격은 10개 팀의 전력 등을 바탕으로 설정이 됩니다.
가령, 전년도 우승팀인 SK의 우승 확률이 40%라면 SK가 우승한다는 계약의 가격은 40포인트가 되고, 전년도 10위 팀인 NC의 우승 확률이 3%라면 NC가 우승한다는 계약의 가격은 3포인트가 됩니다. 이렇게 우승 확률이 높은 팀일수록 높은 초기 가격이 형성되고, 10개 팀의 가격을 모두 합하면 전체 우승의 가치인 100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자, 이제 매매거래가 시작됩니다. 만약 어떤 팀의 신예 선수가 예상치 못한 큰 활약을 해준다면 그 팀의 우승 확률은 높아지고, 그 계약의 가격은 동시에 상승하게 되겠죠. 반대로 우승 확률이 높았던 팀의 에이스 선수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다면 그 팀의 우승 확률은 낮아지게 되고, 그 계약의 가격은 하락합니다. 이렇게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결정되는 마지막 경기의 마지막 이닝까지 거래는 계속되고, 모든 정보가 반영되는 계약의 가격은 각 팀의 우승 확률, 즉 각 계약의 성공 확률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동합니다.
위의 그림은 실제로 트레이드스포츠 사이트에서 거래된 계약의 가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줍니다. ‘NBA 피닉스 vs. 포틀랜드의 경기에서 피닉스가 승리한다’는 계약의 가격은 60포인트 언저리에서 초기 가격이 형성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전적 등을 고려할 때 계약 성공(즉, 피닉스의 우승) 확률이 60% 정도 되었던 모양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경기가 진행됨에 따라 계약의 가격은 100포인트가 되었다가, 포틀랜드의 역습에 50포인트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경기가 막판에 다다를수록 계약 성공(피닉스의 우승)은 거의 확실시되며 가격은 100포인트로 수렴됩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계약의 가격은 계약 성공 확률의 추정치라는 사실입니다.
예측시장에서의 요기 베라 편향(Yogi Berra Bias)
다시 이 연구의 가설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Lionel Page는 스포츠 경기에 대한 계약이 거래되는 예측시장에서 ‘롱샷 편향(longshot bias)’이 발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롱샷 편향이란 경마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우승 확률이 거의 없는 말인 롱샷에 돈을 거는 행동을 뜻하죠. 우승 확률이 낮을수록 배당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손실을 한방에 만회하고 싶어서 마지막에 소위 ‘몰빵’을 하는 심리를 일컫는 것입니다.
스포츠 경기 결과에 대한 계약에서도 비슷한 편향이 발생합니다. 경기 막바지에 승리 확률이 낮은 팀이 역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이러한 기대를 거래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연구자는 이렇게 스포츠 경기에서 나타나는 롱샷 편향을 ‘요기 베라 편향’이라 칭합니다. 그는 요기 베라 편향을 살펴보기 위해 2006년 11월부터 2007년 9월 사이에 트레이드스포츠에서 거래된 미국풋볼리그(NFL), 미국프로농구(NBA), 미국프로야구(MLB), 미국프로아이스하키(NHL), 미국대학스포츠(NCAA)의 미식축구와 농구 경기에 대한 다양한 계약 거래를 분석합니다.
먼저 시간에 따른 계약 가격의 분포를 조사했더니 아래와 같은 히스토그램이 그려졌습니다. 경기 종료가 2시간 이상 남은 시점에서는 가격이 50포인트 근처에 모여 있지만(오른쪽), 경기 종료 15분 전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0과 100의 극단적인 가격에 집중되는 모습을 보입니다(왼쪽).
위의 히스토그램에서 나타난 가격은 과연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위의 가격이 계약 성공 확률의 정확한 추정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Page는 계약의 거래 가격과 계약 성공 확률의 추정치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만약 거래 참가자들이 정확한 예측을 했다면 아래 그래프에서 거래 가격(가로축)과 지금까지의 그 가격 하에서의 계약 성공 확률(세로축)은 동일해야 할 것입니다(45°선인 점선에 위치). 즉, 이 둘이 같은 값을 가지는 점선을 벗어난 곳에서 거래가 일어난다면 예측에 편향이 발생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래프를 다시 보겠습니다. 이 그래프에서 30포인트 이하의 낮은 가격에서는 점선 아래에, 50포인트 이상의 높은 가격에서는 점선 위에 계약 성공 확률(우승 확률)의 추정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예를 들어, 가격(가로축)이 80포인트 일 때 사람들이 편향 없이 예측을 했다고 가정을 해보죠. 지금까지의 경험, 즉 과거의 거래 데이터로 미루어 볼 때 가격이 80이라면 그때의 계약 성공 확률은 80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시장에서 거래되는 계약의 가격은 계약 성공 확률의 추정치’라고 했던 것을 다시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래프에서는 가로축인 가격이 80일 때 세로축인 그 가격 하의 계약 성공 확률(우승 확률)은 90 정도로 더 높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평균적인 우승 확률의 추정치보다 낮은 가격에서 계약이 거래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가격이 0포인트 근처의 작은 값일 때는 계약이 그 가격일 때의 평균적인 우승 확률보다 높은 곳에서 거래됩니다. 가격이 0포인트 근처라는 것은 이미 우승 확률이 희박한 상황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합리적인 수준보다 더 높은 가격에 계약을 거래하는 것이죠. 한마디로 사람들은 패배한 팀이 경기 직전에 상황을 역전시킬 확률을 과대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루고 싶은 것과 이룰 수 있는 것
이와 같은 과대평가가 왜 경기 막판에 일어날까요? 스포츠 경기의 마지막 순간에 형성되는 긴장감이 거래자들의 예측력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아냐, 이길 수 있어!” 스포츠팬으로서 자신의 팀이 이겨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희망이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이러한 편향된 판단은 오늘날 행동경제학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요기 베라 편향’이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개인행동의 일반적 패턴인지에 대한 연구도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죠.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도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아름답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면 한 번쯤은 ‘요기 베라 편향’을 떠올려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끝]
(인용문헌)
Wolfers, J. & Zitzewitz, E. (2004). Prediction markets.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18, 107–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