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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Jul 26. 2016

#15.미디어 이슈에서 배우는 일상 커뮤니케이션의 꿀팁

"민중은 개돼지", 나향욱 사건에서 배우는 '설화를 피하는 방법'


 MB 정부 시절, 정부기관에서 2년 남짓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주무 부처(말하자면 모기업 비슷한)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였는데, 여느 기관들처럼 제가 있던 곳도 부처를 도와 정부의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느라 '열일'했었죠. 업무협의차 교과부 공무원들과 만나 종종 함께 일했던 바, 제가 만 청사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열심히 일했으며 조직에도 헌신적이었습니다.


 6~7년 전 제가 알던 그 분들은 현 정권 들어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 소속으로 다시 나뉘어 일하고 있습니다. 행정부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조직이 개편되는데, 예를 들어 교육과학기술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로 나뉘어 있던 두 부처가 mb정권에서  통합된 결과입니다. (따라서 당시 교과부 공무원들은 교육부 출신과 과학기술부 출신으로 나눌 수 있었죠.) 박근혜 정부 들어 교과부는 다시 예전 과학기술부에 지식경제부 일부 및 방송통신위원회의 기능이 합해진 미래창조과학부와, 교육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교육부로 분화되었습니다.


한 부서의 과장만 되어도 그의 결재라인을 거쳐가는 예산이 연간 몇 천억원 정도는 가뿐했으니, 말 그대로 청사의 공무원이란 나라의 큰 살림을 하는 사람들이라 불릴 만합니다. 나아가 국장급이 되면 행사에 참석해도 장차관을 대리하는 자리로서 귀빈 대우를 받는 일이 많지요. 예를 들어, 제가 있었던 부처 주최의 행사에서는 장관이나 차관이 불참했을 때 해당 부서 국장이 대신 축사나 인사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헌데 그렇게 열심히 나랏일을 해 오고 있는 많은 정부부처의 국장들을 우습게 만들어버린 한 사람의 언행이 온 국민을 분노케 했습니다. 일찍이 저 유명한 파레토의 법칙(소득 상위 20 %가 하위 80%의 전체 소득과 맞먹는다는 경제학의 고전 법칙)은 저리 가라, 이제 나향욱 전 국장님의 법칙이 대세로 등장할 기세죠. 1%와 99%로 사람을 나누고 사는 그의 머릿속 자아는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국민'이라는, 스스로 개돼지라 칭한 대상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직업적 소명일진대, 그는 봉사는 커녕 개돼지를 마냥 내려다보고 농장주를 한없이 우러러보며 사는 '하인' 쯤으로 살고 있지 않았 습니다.


 어느덧 자조적으로 쓰는 개돼지라는 말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예컨대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을 실은 기사 끝 수 많은 댓글 가운데, '우리는 개돼지니까요' 운운하는 '집단 디스' 글을 찾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금수저, 흙수저'에 이어 듣는 사람을 허무하고 답답하고 슬프게 만드는 참 나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절대! 나는! 개돼지가 아니야!'라고 말할 자신이 없기에 그가 건드린 나의 콤플렉스는 깊은 분노로 치솟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 진보 성향의 신문 기자들 여럿과 동석한 술자리에서 이와 같이 대범하고도 아슬아슬한 발언을 불쑥 꺼내었다는 사실이 잘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장차 장·차관으로의 승진 가능성이 높고 대내외적인 주목도가 높은 고위직 공무원일수록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요. '기자-공무원'보다 상대적으로 말조심의 부담이 적을 '준공무원-공무원' 간의 술자리에서도 흐트러진 언행으로 참석자들을 불편하게 만든 고위직 인사는 보지 못했습니다. (혹은 반대로도 추론 가능하겠군요. 단정한 언행의 사람일수록, 고위직에 오를 확률이 높다는 해석 말입니다. 헌데 그렇다면, 이 분은 대체 어떻게 국장 자리에 오른 걸까요?!) 사건 당시 국장급이던 나향욱씨의 나이는 47세. 공직 생활을 이십 년 가까이 했다면 눈치가 구렁이 담 넘는.. 아니 아나콘다 강 건너는 수준 쯤 될 텐데요. 더구나 그는 조직에서 소위 잘 나가는 메인스트림에 있던 사람 아닙니까.


그의 발언을 뜯어보자면, 동석한 기자가 했던 인터뷰를 보는 것이 정확하겠죠.


http://www.nocutnews.co.kr/news/4620552


 인터뷰 원문을 실은 위의 기사를 통해 추론한 바, 위 사건이 촉망받던 고위 공무원이 단시간 내에 실업(失業)에 이를만큼 치명적인 설화가 된 이유는 바로


1. '토론'이 아닌 '논쟁'의 방식으로
대화를 이끈 커뮤니케이션의 미숙함


그리고


2. 실언임을 시인할 기회를 얻고도
이를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은 아집


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자들' VS '본인' 이 대립 구도가 될 수 밖에 없도록 대화를 주도해 갔던 형편 없는 말솜씨(feat.알코올 기운)에다가, 불을 낸 집주인에게 끄라고 소화기를 쥐어 주었는데도 알량한 자존심으로 내팽개처버린 그의 아집(feat.알코올 기운)에 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개돼지 운운한 말의 내용에 비난을 피할 여지가 없으며, 근본적으로는 사회 계층에 관한 그의 사고 구조가 완전히 잘못됐지요. 하지만 훌륭한 말솜씨에 잘 버무려 내었다면,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이처럼 치명적인 실수로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문제의 발화점을 보시죠. 위 기사에 실린 인터뷰 내용 일부입니다.


김현정(라디오 진행자, 이하 김): 화기애애하게 얘기하다 어떻게 갑자기 개, 돼지 발언이 나온 거에요? 어떤 맥락에서?

송현숙(경항신문 기자, 이하 송): 그러게요. 저도 그 맥락을 도대체가 알 수가 없는데요. 갑자기 이분께서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느닷없이 꺼내셨습니다. 교육부는 이제 그 해명 자료에서 기자와 논쟁을 벌이던 중에 실언을 했다. 이렇게 해명을 내놨는데요. 선후가 바뀌었습니다. 이 말부터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김 : 갑자기 난데없이 나는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는 바람에 논쟁이 시작됐다고요?

송: 그렇죠.

(중략)
김: 그런데 기획관의 자녀도 비정규직이 돼서 99%로 살 수 있는 거 아닙니까?남의 일 아니잖냐고 기자가 물었더니 뭐라고 하던가요? 내 자식처럼 생각이 안 된다 그랬나요?

송: (나 기획관이) '그렇지는 않다. 송 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제게 동의를 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애들은 99퍼센트에 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김: 그렇군요. 비정규직이 내 자식 일이 될 것 같지 않다. 그건 남의 일처럼 생각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이어가는 거죠.



애초에 논쟁을 벌이다가 그가 이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불쑥 꺼낸 개돼지, 신분제 발언 때문에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이후에도 계속 그는 기자들의 의견 제시를 무시한 채 단정적으로 자기 의견을 툭툭 던지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가려고만 했습니다.




사람은 논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내 말이 옳고 상대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적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논쟁을 시작하지 말라.

 20세기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꼽히는 데일 카네기가 쓴, 누적 판매 6천 만 권에 달하는 저서 '인간관계론'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가 하면

나는 사람들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행동과 내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삼갈 것을 규칙으로 세웠다. 누군가 내가 생각하기에 틀린 점을 주장하면 나는 그 사람의 주장에 퉁명스럽게 반박하거나 그의 잘못을 입증해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라고 말한 위인도 있습니다. 바로 미국에서 유명한 정치가·외교관이자 과학자·저술가였으며 신문사의 경영자 등 여러 방면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위인 벤자민 프랭클린이죠.


세기를 뛰어넘어 위인으로 추앙받는 이들도 이토록 일방적인 자기주장을 조심했을진대, 평범하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향욱 씨는 대체 왜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며 기자들과 자신을 대립 구도에 있는 토론자로 만들었을까요.

 중도적인 주제라 해도 다수와 다른 의견을 불쑥 꺼내면서 논쟁을 시작하면 내 편을 만들기 힘들진대, 하물며 누가 듣더라도 심히 거부감이 드는 내용으로 불쑥 대화를 시작하다니요. 그러면서 변론의 기회가 생겼는데도 바로잡지 않은 채 계속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며 대화를 주도하려고 했으니, 참석한 경향신문 기자들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럽고, 그가 교육정책을 펴는 고위공무원이란 사실이 또한 착잡했으며 참담한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실수를 인정하지 않은 것 또한 커다란 실수였습니다. 계속 보시죠.

김: 그러면 이게 어쨌든 공식자리는 아니니까 좀 우스개 농담으로 했을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유머스럽게 하려고 그게 말이 되는 질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송현숙: 저희가 그 말씀을 여러 번, 저기 농담하신 거 아니냐, 실언 아니시냐 하면서 여러번 해명 기회를 드렸고요. 저희가 시간도 충분히 드렸습니다. 녹음기를 켜면서 이게 심각하다. 그렇게 설명을 해라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말씀만 계속 하시고 자신의 발언을 수정하거나 철회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김: 바로 그 부분인데요. 그러니까 공개적으로 휴대폰 녹음기 틉니다. 그거 해명하십시오. 본인 생각입니까? 실언입니까라고 다시 물으신 거잖아요?

송: 실언이냐고 여쭤보지는 않았는데요. 거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얘기해 보시죠.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드렸습니다.

김: 그분이 녹음기 튼 것까지도 분명히 알고 있고요. 알고 있는 상태에서.

송: 예. 녹음기를 끄라고까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이런 식으로요?

송: 한 가지 좀 더 말씀드릴 부분은 이 보도 이후에 저희 회사에 해명차 오셨을 때도 내용 자체는 잘못된 것이 없다는 점은 인정을 하셨습니다.

김: 그렇군요. 많이 놀라셨겠어요. 현장에서는?

송: 예. 정말 충격을 받았고요. 같이 있는 후배도 정말 너무 충격을 받아서 잠이 안 오더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맙소사. 대단한 아집이군요. 논란의 자리를 떠나서 술이 다 깬 후의 대면에서조차 실언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니. 두 손 두 발 다 들 수 밖에 없군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도 잘못을 했으면 신속하고 확실하게 인정하라는 내용의 챕터가 있습니다만, 꼭 유명인사의 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이 비난받아야 함을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깎아내리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편보다, 스스로 인정하고 자책하는 말을 함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나에 대한 적의를 누그러뜨리고 심지어 다시 호의를 느끼게 하는 편이 훨씬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이번 설화로, 그는 (징계 소청심사 청구소송을 제기해서 승리하지 않는 한)직장을 잃었고 언론과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죠. 민중의 한 사람인 저는 민중이 개돼지라는 저열한 생각을 품고 사는 그가 진보와 보수 정권에서 두루 대통령이 나왔던 근 20년 동안 순조롭게 승진해, 차관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거드름을 피웠을 생각을 하니 너무나 속상하고 울화가 치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와 같은 일들이 간혹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목격합니다. 우리들도 다소 도발적인 편가르기성 발언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것이 실언이 될 소지가 다분함을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예를 들 여러 친구들과 있는 술자리에서


 "여자도 군대에 가야 공평한 것 아닌가."라든지

 "군 가산점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라는,

입 밖으로 쉽게 내긴 어렵지만 마음 속으론 슬며시 생각한 적 있는 류의 발언들 말이지요.


 이렇게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발언은 될수록 삼가는 것이 좋겠지만, 불가피한 순간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자칫 원치 않는 논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내가 토론의 발제자라고 생각하고,
상대의 의견을 묻는 의문문으로 대화를 시작하세요!

"나는 지금 '주장을 하려는 중'이 아니라, '여럿의 의견을 청취하는 중'이다."

 대화의 분위기를 설정해 놓으면, 갈등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한결 낮아집니다.


"여자도 군대에 가야 된다는 의견이 있잖아, 어떻게 생각해?"

"군 가산점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해?"

"우리 회사에도 출산휴가 눈치 안 보고 쓰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하지 않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단 들어 보고' 스스로 붙인 불을 구경?하다가 발언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원래 하고 싶던 이야기를 적당한 수위의 용어 부드럽게 표현한다면 나를 둘러싼 적대적인 분위기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최초의 발언자인 내가 어느 새 양측의 과열된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하여 진짜로 중재에 나서야 할 지도 모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다소 민감한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논쟁으로 적을 만드는 일을 피하고 싶다면,

내가 논쟁 당사자인 양쪽 편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사회자 석에 있다 생각하고 질문으로 시작하세요!



 실수를 실수라고 쿨하게 인정하는 것은 훌륭한 지도자의 덕목 중 하나로 꼽힙니다. 반면,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나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아 망신살이 뻗친 사례 또한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지난 총선을 앞두고 표창원 의원과 MBN 앵커이 했던 인터뷰에서, 앵커는 바로 위와 같은 실수,  '실수'를 인정하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https://brunch.co.kr/@jeongdahee/12



실수임을 자각했을 때 즉시 깨끗이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끝까지 잘못된 주장을 고수하는 편보다 훨씬 쿨하고 멋진 사람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스피치 칼럼을 쓰기 시작하며 저는

'말하기'가 곧 '구슬을 꿰어 보석을 세공하는 일과 같다'는 생각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https://brunch.co.kr/@jeongdahee/1


그 이유 중 세 번째인, 말솜씨가 아무리 뛰어난들 원석의 결함을 완전히 덮을 수는 없다는 말을, 글을 마무리하다보니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가 이번 설화를 피했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그릇된 생각을 마음 속에 품고 사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패가망신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교묘한 말솜씨로 당장의 화는 피할 수 있을 지 모르나 근본적인 사고의 결함을 영영 덮어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1%가 되고 싶은 99%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던 나향욱 씨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합니다.

웰컴 백 투, 개돼지 월드 어게인!! 고시 패스로 사다리가 열렸다고 믿고 이십 년간 열심히 살아오셨을텐데, 어쩌나요. 다시 되돌이표를 따라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이번 글의 내용은 짧은 영상으로도 제작되어 있습니다. 링크하며 마무리합니다.

https://youtu.be/ESgmlOdfj0Y



 실수 없는 완벽한 하, 아니죠. 실수해도 많이 웃는 쿨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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