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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Jan 03. 2016

#1. 프롤로그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을 쓰다


답답했습니다.

왜 이것밖에 못 할까.

못난 내가 미워 쥐어뜯고 뜯다가

가슴에 생채기가 나고 딱지가 앉도록

답답했습니다.



나는 말을 하는 사람,

정확히는

말하기가 직업인 사람입니다.

9년 째 이 길을 걷고 있지요.


전공과 관계 없이 그저 이 길이 손짓하는 매력에 이끌려 선택했고, 미친 듯이 사랑에 빠져있었습니다.



나는 너를 더 알고 싶어
너에 대해서라면 모두 알고 싶어
난 너를 정복하기를 원해



로써 누구에게나 감탄을 이끌어내고

어느 자리에서나 박수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하느라 뒤척이며 잠 못 들던 수 많은 날들이

저의 이십 대를 촘촘히 채웠죠.


뒤척이고 괴로워만 했던가요? 아닙니다.

말이란 게 뭐 대수?라면서

말의 칼을 마구 휘두른 적도 있었습니다.

역시 천직이야. 나는 정말 소질이 있나 봐.

치기어린 시기였지요.


그러던 가 지나자

갑자기 답답함이 밀려왔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신나게 먹어대다 덜컥 체한 딱 그 기분이었죠.

목구멍이 꽉 막힌 듯했습니다.


이놈의 사랑이란 게

아무리 열렬히 마음을 주어도

도무지 짝사랑을 벗어날 길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과연 어느 누구의 가슴에라도 가 닿아서
그의 삶을, 아니 일상을, 아니
단 하루 한 순간만이라도
밝혀 줄 수 있긴 한 걸까?



사랑이 나를 힘들게 하는데도
나는 그 사랑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너무 괴롭지 않느냐고요?

괴롭습니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인 것을


10년 째 그 괴로움과 동거하며 깨달았지요.
내게 '말하기'란 그런 대상입니다.


애증의 존재.

차라리 내려놓고 벗어나고 싶어도

사랑이 깊어 도저히 그렇게가 안 되는.

나만 애태우는 내 반쪽.


그 반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말에 관하여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한

그간의 제 이야기들을

이 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보석을 세공하는 일이, 저는 말하기와 많이 닮아있다고 느낍니다.

첫째, 잘 보이지 않던 원석의 가치를 최대한 발현해줍니다.
우리의 영혼은 각자 하나의 원석이고요.

둘째, 세공의 숙련도와 솜씨에 따라 우리의 눈에 전혀 다른 보석으로 보일 수 있으며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뛰어난 세공조차  원석 본래의 품질 차이를 뛰어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옛 말인 서 말의 구슬을 꿰는 일, 즉 보석의 세공을 스피치와 같다고 보았습니다.


글을 연재하는 일 또한 구슬을 꿰는 일이지요.

아무쪼록 잘 꿰어 놓아야 읽기에 좋으실 텐데, 한 번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다소 감상적으로 써 내려간 프롤로그와 달리

이후의 글은 말하기에 관한 '기술을 기술'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생각을 거듭해도 '가능성이 높다'는 모호한 표현이 가장 적절하겠군요.

어떻게 씌어질 지 저도 흥미진진합니다.

예전의 저 같으면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이런 저에게 화가 났겠지만

이젠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알게 됐달까요?하하)



시작은 여기까지입니다.

모쪼록 남은 하루, 많이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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