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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빈 Jan 17. 2018

마지막 화전민, 사무곡의 겨울

그래도 살아간다는 것.

<마지막 화전민, 사무곡의 겨울> 예고편




PROLOGUE.

개인짐과 촬영장비.

언젠가부터 나는 짐을 정말 잘 정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때는 짐을 풀자마자 다른 짐을 들고 곧장 나가야 하는 상황도 많았으니,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히 잘 해야 하는, 업 아닌 업이 되었다.


짐을 정리한다는 것은 내가 향하는 곳에 대한 설렘과 기대 속에 정해진 기간 동안 생활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인데, 비단 즐겁지만은 않지만 분명 어떠한 떨림을 주는 노동임이 분명하다.


특히 이번 촬영처럼 전기, 가스, 수도 3종 세트가 없는 산골자기로 자발적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짐을 몇 번이고 풀었다 다시 정리하는 틈에 벌써 아침이 찾아오곤 한다.


과연 나는 어떤 기억을 이 가방들에 차곡차곡 담아 올까?






아직 산 아래에는 낙엽이 울긋불긋 하다.

서울에서 네 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타고 흘러가다 보면 중간중간 'PYEONCHANG'이라는 문구를 조형물이나 광고판 같은 다양한 형태로든 만날 수 있다. '어디 사고 났나'싶을 정도로 교통이 지체되는 곳은 분명 평창이라는 길쭉한 영어 단어를 설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다들 올림픽 준비로 바쁜가 보다. 그러나 우리는 아쉽게 마지막 고속도로 휴게소를 등진체 삼척 IC로 핸들을 돌려 흘러나가야 한다. 그리고선 다시 인적이 끊긴 작은 길로 다시 한번 흘러가야 한다.


차로 갈 수 있는 만큼 굴러가다 보면 배를 타고 포항으로 갈 돌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과 먼저 인사한다. 저렇게 큰 차들은 모두 바삐 이곳을 빠져나가는데, 우리는 저들이 만들어낸 흙먼지 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

길이 있는 듯 길이 없고 길 옆에는 낭떨어지가 있다.


누군가의 좁은 발자국이 오랜세월 길이 아닌 길을 만들어냈다.

차에서 내려 짐을 꺼내고 함께 등산해줄 짐꾼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면 금세 등에는 한 껏 짐이 꾸깃 꾸깃 짊어져있다. 개인 짐과 촬영 장비, 드론에... 전기가 없으니 당연히 들고 가야 하는 발전기와 휘발유, 가서 먹고살긴 해야 하니 두 남자가 먹을 부식거리까지.


이 산이 이렇게 가파를 줄이야, 길이 이렇게 비좁을 줄이야, 이렇게 꼬불꼬불 거의 수직으로 올라갈 줄이야. 모든 숨에서 '오 마이 갓'을 되뇐다.


한때는 열댓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산속에 밭을 일구며 살았던 사무곡. 선비가 모여 사는 골짜기라는 뜻이라는 말을 얼핏 들었다 (선비 사, 무성할 무, 골/곡식 곡 士茂谷?). 일제시대 이후, 산에서 불을 내 밭을 만들던 화전민들이 살았던 곳 중 하나이다. 화전이 불법이 되고 모두가 사방 곳곳으로 퍼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버려진 듯 한 이곳, 이곳엔 마지막 화전민이 살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서울에서 누군가는 등산 지도를 보더니 30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을 거라 했다. 오르다 보니 그 말이 불행히도 기억났다. 그래서인지 30분은커녕 한 시간이 넘어가는 등산이 원망스럽다. 도대체 왜 이런 곳에서 사시는 거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시는 걸까, 아니 왜 여기서 사시는 거지. 반복되는 질문은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마다 메아리치듯 이 고요한 산속에서 울려 퍼지는 듯하다. 어디선가 구수한 장작 냄새가 나기 전까지.


할아버지는 우리를 기다리며 밥을 하고 계셨다.

집이 보이고 누군가 앉아 있는 모습이 얼핏 보이자 나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난생처음 보는 노인을 그렇게 간절히 불렀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말한 적도 없는데, 그토록 애절하게 나는 할아버지를 불렀다. '저희 왔어요'라는 말을 내뱉고선 가방을 마당에 내려놓으니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이 든다. 그것도 잠시, 아랫마을보다 5도 정도 낮은 기온과 매서운 바람에 금세 땀이 식고 추워진다.


흙, 나무, 굴피껍질. 모두 이 곳 고유의  재료로 지어졌다.

생전 처음으로 머무는 '이런 집'은 정상흥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4살부터 평생을 이곳에 살다. 직업군인으로 처음 4년간 밖에서 살았고 그는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왔다. 이미 형님은 예전에 돌아가셨으니 그는 일찍 장남이 되어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었다. 군에서 돌아와 다시 동생들과 가족을 위해 농사를 지었고 할아버지는 이 곳에서 나는 재료들로 이 집을 지었다. 마치 자신의 생을 담듯.

 

옛 그대로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숫불을 화로에 담는다.

나는 아궁이를 처음 봤다. 아니지, 아궁이를 진짜 사용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처음 봤다. 손 씻은 물을 버리지 말고 아궁이 (가마솥)에 넣으라는 할아버지는 물이 없으면 아궁이가 터진다고 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살 때는 열명도 넘게 살았다는 이 집. "그때는 쌀도 지금보다 많이 먹었어." 큰 가마솥 옆에 있는 작은 솥으로는 감당이 안될 정도였다니. 조용한 산이 옛날에는 시끌벅적했을 생각이 든다.


아궁이는 이곳에서 삶의 중심에 있다. 날이 추워지고 겨울이 오니 당연히 방을 뜨듯하게 데워줄 보일러이며 동시에 숯불을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나중에는 아궁이(가마솥) 안에 들어가 목욕도 할 수 있는 욕조이자 스파 이기도 하다. 하루에 상당한 시간이 불을 짚이고 밥 하는 시간으로 보내야 하는데, 그 시간을 아궁이 앞에서 보내야 하니, 이곳이 바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자 어떤 때는 목적이기도 하다.


해가 저물고 호롱불이 방안을 밝힌다.

이곳은 오후 4시가 되면 슬슬 어둑해져 여섯 시가 되면 별이 보인다. 저녁 8시가 되면 별이 쏟아지는데 저녁 10시가 되면 우주 한가운데 서있는 것 같다. 바람은 누군가 소리 지르듯 불어오고 동물들은 중간중간에 화음을 넣는다. 전기가 없는 이곳을 밝혀주는 것은 호롱불, 마음의 불은 건전지 라디오의 몫이다.

 


해가 뜨자 새로운 어두울때와는 전혀 다르다.

골짜기에 해가 뜨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맞은편 산 넘어에서 해가 인사를 하고 이쪽산 뒤로 해가 숨으니 그림자 지는 시간이 해 뜨는 시간만큼 길다. 저 길을 따라가면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평생을 일구고 섬겼던 밭이 있다. 아버지의 묘는 밭 한가운데 있다. 아버지의 곁을 지켜야 했던 아들은 밭에 평생을 바친 아버지와 그의 밭을 아직도 지킨다.


집 옆에 있는 밭에서 바라본 집은 부끄러워하듯 숨어있다.

할아버지는 평생 농부였고 지금도 현역 농부이다. 작년에 자연이 단풍으로 신호 보냈듯, 이번해 농사는 석연치 않았다. 땅콩과 고추 등을 심은 할아버지. 밭에서 난 땅콩을 같이 볶아 먹었더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는데. 농사가 잘 안됐다는 말에 '맛있을 것 같은데요?' 하고 한 움큼 쥐여 땅콩을 까 보니 첫 세 개는 속이 비어있다. 진짜 잘 안됐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농사를 짓는다. 비록 예전만큼 많이 지을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그는 계속 걷는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날수록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엔 동년배의 감나무를 맨발로 타고 올라가서 있는 감이라곤 모조리 땃는데, 이제는 자신의 키보다 두배나 되는 대나무 장대로 몇 개 따기도 힘들다. 결국 감은 까마귀의 차지가 되거나 떨어지고 만다.

굴피나무 껍질이 얹혀진 집은 이질적이면서도 자연과 어울어진다.

이 땅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집 뒤에는 소나무로 엮은 담장이 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것 같은 바람을 막아줄 담장도 손수 만들어야 했다. 이 곳에선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거나 고치는 수 밖엔 없다. 그래서 그만큼의 자유가 허락된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내가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사용한다는 게. 분명 그것을 위한 노동은 쉽게 생각할 수 없지만.

해가질때 그림자는 마치 이곳과 도시의 모습처럼 극과 극이다.

무슨 이유에 선지 이곳에서의 삶은 단조로운 듯 하지만 시간이 빨리 간다. 생각해보면 세월이 너무 빨리 갔다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보름 남짓하게 머무는 나에게도 이곳의 하루와 밤은 자신들만의 일정대로 돌아가듯 흐른다. 일어나서 무엇을 조금 하다 보면,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여쭙다보면 벌써 밥을 하기 위해 부엌으로 모여야 하고 아궁이가 만들어 줄 숯을 기대해야 한다.

보일러 버튼 하나로 온수가 나오는 생활보다 훨씬 느린 기다림과 고요함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저렇게 좋게 사는 건지, 부럽다'라고. 아랫마을 (도시) 사람들은 분명 편하게 살지만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한다. 경쟁 사회 속에서 일을 하고 누군가는 지옥철을 타고 누군가는 더 좋은 스펙을 쌓으려 발버둥처야한다. 평생 학교도 가보지 못하고 군에서 가서야 글을 배운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한다. 누군가는 할아버지의 삶을 부러워한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이렇게 사는 사람을 왜 누가 부러워해. 부러워하는 사람 없어'라며 웃으신다.   

벽에는 벽지대신 달력이나 신문이 붙어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연도의 달력들이 벽 곳곳에 붙어있는 것은 그저 마냥 신기한 일이며 비교적 최근 달력이 붙어있을 때는 반갑기만 하다.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과 화로의 열기가 치열하게 방안에서 싸우는 사이에 벌써 할아버지는 양대 콩을 까고 계신다. 우리에겐 너무 낯선 이 어둠 속에서 모든 게 보인다는 할아버지. 이 곳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 같이 이질적인 라디오 교통정보나 뉴스들과 음악이 할아버지의 유일한 말동무이자 넓은 세상의 한 결이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 걸어놓은 홍시는 마치 할아버지와 감나무의 전투의 전유물인 듯 하다.

곶감은 할아버지에게 중요하다. 사는 것보다는 직접 준비해야 조상들이 좋게 봐주신다는 할아버지의 표정에는 뿌듯함과 안도감이 자리 잡았지만 이제 한 해가 저물 때마다 다른 몸과 마음이 걱정되는 노인의 마음이 담겨있다.


잠들기전에 내놓은 화로 불을 다시 살려내는 것도 할아버지에게 중요한 일과이다.

집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할아버지를 닮아있다. 이제는 '문화재'라고 불리는 '이런 집'과 이 곳의 모든 물건들이 할아버지에게는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또한 이곳에서의 불편함을 모르지 않는다. 매번 아랫마을에 들릴 때마다 주변에서 '그러다 죽으면 어떡하냐 내려와라'는 핀잔에 머쓱한 웃음을 소주잔에 섞어 삼켜야 하고 '어떻게 내가 떳떳이 내려갈 수 있을까'하는 마음과 지난 역사에 대한 아쉬움이 공존한다.


그래서일까? 적지 않게 방문하는 등산객이나 손님들이 떠나고 나면 그는 홀로 외로움을 달래야 한다. '사람들이 오면 온기가 돌고 좋지'라는 할아버지는 그들이 떠난 냉기를 술로 떨치려 한다. 다시 찾아온 적적함에 밭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하루를 보낸다는 노인.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먼 산을 더욱 자주 본다.


대자리를 보수해야 앞으로 몇년간 불을 많이 때지 않아도 뜨듯하다는 할아버지

그래도 할아버지는 다시 대나무를 다진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아도 결국은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어디 밭뿐인가. 십여 년 전 손수 만든 대자리를 보수하려면 적어도 몇십 개의 대나무를 베어 물에 불려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반으로 자르고 대나무를 망치로 두드려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망치 또한 그 자리에서 수리하고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5년에서 8년은 불을 많이 때지 않고도 방이 따듯할 거라는 말은 평생 고추 장군으로 남을 것 같았던 그도 이제는 나무를 하고 장작 패기 힘겹다는 말과 같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곳에 남아 앞으로의 날들을 준비하고 살아간다. 이제는 그래도 아버지 이름이 적혀있던 문패 옆에 당신 이름 세 글자 세겨진 문패도 달았다. 이름만 쓰면 안 되냐는 물음에 주소가 있어야 찾아올 수 있다는 말. 그렇게 그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한다.


EPILOGUE.

굴피집, 그리고 할아버지의 겨울.

어쩌면 처음엔 나는 할아버지가 '나이 탓에 감을 다 못 따도 까마귀와 같이 나눠 먹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을 지키는 마지막 할아버지는 비록 휴대폰도 안 터지는 산골에서 살지만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고민하고 고분 고투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흡사하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럼에도 살아가고 내일을 준비한다. 결국 우리 모두 그러하다.


2018년 1월 13일 (토) 7시 10분

KBS 1TV 다큐공감


기획 KBS

제작 미디어 길

작가 이영옥

촬영 문창용, 김동빈

연출 문창용, 김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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