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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맘 통역사의 삶

대한민국에서 중년 여성의 취업 도전기(1)

**이 브런치는 홍보를 위한 목적보다, 경력단절을 겪은 아이엄마가 사회생활 복귀에 성공하기 위한 여정을 기록하는 곳입니다.

누군가의 엄마이자 사회에서 온전한 한 사람의 몫을 하는 일꾼으로 살려면 이전의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20대에 한참 영어 강사로 그리고 회사에서 야근까지 하고 저녁엔 컴퓨터 디자인 프로그램을 배우던 시절에도 이렇게 시간이 부족하다 느끼지 않았다. 나 한 사람의 인생만 살면 모든 게 단순해지지만 다른 사람의 삶도 같이 살아야 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아이 한 명이 인생 하나. 아이가 둘이면 인생 둘.


이전의 글에도 언급했듯이 17년간 아이를 참 원했는데 갈망이 지나쳐 사전 조사를 미흡하였다.

자녀 양육의 현실을 잘 모르고 뛰어든 것이다. 말썽 없이 동생 돌보고 공부 잘하고 책벌레에 상복 많던 나였어서 엄마는 아이 키우는 게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신랑도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고 반장만 도맡아 하던 우등생이었어서 시어머니도 전혀 힘들지 않으셨던 거 같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금세 닥쳐올 후폭풍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시험관 임신 소식에 뛸 듯이 기뻐만 했다.



"아들이네요. 축하드려요. '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하나는 딸인가요? '

"음.. 둘 다 가운데 뭐가 솟아 나왔죠? 둘 다 아들이네요."


초음파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로 머리 몸통 밑 다리 사이에 뭐가 바늘처럼 쭉 삐져나와있었다. 선인장 가시처럼. 풋. 웃음이 나왔다. 저게 그거라고?


아이들의 그것은 온전히 모양을 갖추기까지 몇 달의 시간이 더 걸렸다. 솔직히 아들 엄마가 되면 생각지도 못한 고민들을 하게 되는 거 같다. 두 아들을 C-Section (수술)으로 분만하고 나서 아이들을 병원에 2주에 1번 간격으로 check up 했다. 그때 분만 병원의 소아과 남자 의사 선생님께서 첫째 아들의 거시기(?)를 만지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거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중에 나올 거예요'라고 하시는 거다.


처음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생님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첫째 아들의 거시기가 자라가 머리를 숨기듯이 말려서 쏙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응?


'이건 거시기가 작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없는 건데?'



내 아들의 거시기가 성인이 되어서 손가락 한 마디 사이즈밖에 안 된다 떠올리니 나도 병원 바닥 한가운데서 울고 싶었다. 또 작은 발진이 몸에 보이기라도 하면 호들갑을 떨면서 안없어지면 어쩌나 눈물이 글썽거리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사라지는 방법을 묻고, 찾고 하면서 지워질 때까지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해보는 엄마의 모성애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렇다. 요즘 내 삶은 대충 이런 고민들로 가득 차 있다.

다 늦게 전문대학원 다닌다, 유학 간다 하더니 이젠 취업준비한다고 눈코 뜰 새 없는 삶인데도 작은 생명체들의 장래 걱정을 앞당겨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신랑에게 이야기하면 짜증 낸다. 혼자 육아하고 돈 버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너까지 보탠다고. 늦게 공부 원 없이 하라고 대학원 보내줬으면 이제는 지 앞가림을 혼자 해야지 왜 아직도 이러고 있냐며 잔소리를 한 바가지 퍼붓는다.


그럴 때면 무슨 마음인지 알지만 속은 너무 원망스럽다. 취업을 제일 하고 싶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아닐까?


나이 마흔에 경력직도 아니고 갓 졸업한 싱싱한 이력서 한 장 달랑 밀고 그저 나 잘할 수 있으니까 믿어달라는 소리만 하는 고학력 백수인가. 교수님 중 그런 말씀하신 분도 계셨다. 학기 다 끝나면 이력서 내는 거 웬만하면 하지 말라고. 본인들 정신건강에 안 좋다고. 하긴, 갓 졸업한 사람과 경력 10년 된 사람이 같이 이력서를 내면 누구를 뽑겠는가. 경력이 있어도, 통번역 실무 경력이 재학기간부터 3년차여도. 졸업한 시점부터 우리는 이제 출발점에 온 것인가.



게다가 면접을 보러 가면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면접관으로 앉아있다. 계속 밀리는 이력서에 뭘까..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일까?라고도 생각했다. 간간히 면접 요청도 들어왔다. 운 좋게 대기업 면접도 4-5번 보았다. 그런데 TO는 딱 한자리였고 이력서는 백 장이 훌쩍 넘는단다.


내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도 나이 많다고 시집이나 가라고 하던 취업시장이었다. 회사에 입사를 하면 회사 사내 규정에는 결혼을 하면 여성직원은 회사를 퇴사해야 한다는 항목이 있었다. 이직도 쉽지 않았고 계약직을 전전해야 했다. 내가 세상을 너무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이 너무 시대를 못 따라가는 것일까. 여자의 가임기간을 따져보면 30대에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는 것이 생물학적 근거로는 맞는 시기인데, 사회생활에서 자리를 잃어버리면 다시 복귀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여성의 삶을 읊조아렸다.


이 나라는 여성의 출산율 저하 문제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여성의 일과 가정 양립을 도와야 하는데 아직도 나이 많은 경력 단절 여성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중년 여성이 집에서 밥벌이하는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육아와 살림만 하는 그림은 언제 적 시나리오인가.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아졌다. 호주 다녀오기 1년 전과는 딴판이 되어 있었다. 20-30대 젊은 고스펙자들도 취업이 잘 안 돼 허덕이는데 내가 감히 명함을 내밀겠다고 이러나 싶었다.



연이어 이어지는 취업 낙방 소식에 자신감이 바닥을 뚫었다.


기분 전환할 겸, 생활비도 벌 겸 수출 상담 통역을 신청했다.

3일 통역을 하니 기분이 한 결 나아졌다. 통대생들이 있었고 취업소식을 물어보았는데 그들도 형편은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 수출 상담 통역이지만 5년 선배과 10년 선배도 만났다. 우리는 일이 없으면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적으니,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도 쉬었지만, 역시 나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 젊은이들은 점점 더 고스펙자들이 늘어만 가는데 마땅한 일자리는 없는 것 같고. 며칠 전 커피숍에서 커피랑 간식을 주문하는데 사장님이 한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프랜차이즈 회사의 해외지사 본부장이셨다고 한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퇴사하고 커피를 내리는 남자로 사시는데 지금이 더 행복하다는 그. 요즘 취업난 심각한데 그래도 면접 전화는 받으니 다행이라는 그의 말에 난 웃을 수 없었다. 30분을 대화하고 가게를 나오며, 이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그처럼 자영업자가 되는 것뿐이라면 너무 슬플 거 같았다.



이력서에 있는 이력이 무색했다. 통번역 경험도 에이전시에서 고객 평가로 계속 일이 늘어났으며 통역 현장에서 입사제의도 10번 넘게 받았고, 그중엔 PM, 유통업 담당을 해달라는 해외 고객분들도 계셨다. 신이 난 나는 졸업하고 나면 이런 제안이 계속 넘쳐날 줄로만 알았다. 고객에게 다른 무엇보다 영어 실력으로 인정받았고 계속 일을 주시는 회사고객도 있었으니까. 2월에 한국에 들어와서 이제 겨우 2달 남짓 취업이 안된다고 성급한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며 계속 해보라는 조언도 들었다.



20대에 내 생각은 그랬다. 내가 학벌이 부족해서 혹은 경력이 미달이라 그래.

이제는 고학력에 고스펙이라 임금이 적은 거 같은데 괜찮겠냐며 물어보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자녀가 어린데 괜찮겠댜는 질문도 빼놓지 않고 듣고 있다. 아이들은 신랑과 시부모님이 현재 전적으로 돌봐주시고 계시는 상황인데도 엄마의 모성애가 느껴지나보다.



잘했다. 수고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이런말이 절실한 지금이다.


요즘 전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든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 아이유가 IMF로 실직하고 오랫동안 새 직장을 못 구하고 해가 가도록 면접만 보러 다니다 남자친구에게 사람이 자기 앞가림하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고 하는 대사가 마음을 후벼 팠다.


최근에 여성 노동자회에 가서 추천서 받고 저녁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근황을 나누다 이 나이 먹고 대학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자괴감을 털어놓았다.전문직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양권만 해도 사람이 각자 삶의 모양새가 다양하고, 자기 소개할 때 나이를 물어보는 일도 거의 없었다. 이력서엔 사진이나 나이를 올리면 안 된다.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는 어떤 조건도 명시하면 안 된다고 한다. 하긴 호주만 해도 대학 나오나 안 나오나 벌이는 비슷해서 구태여 대학 가는 현지인들은 정말 학업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정도. 직업의 편견도 없고.


선진국일수록 없는 게 있다면 바로 선입견이 아닐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인생의 희로애락, 흥망을 겪건만, 각자 다른 삶의 모양새를 인정해 주는 포용이 더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대학원에서 들은 Intercultural Communication 학에서 스테레오 타이핑 'Stereo Typing'이 사람을 그 사람이 가진 어떤 특색, 성향, 인종, 문화 등을 가지고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태도라고 배웠다.


그래도 이만치 살아보니 건강한 사회가 너무 그립다. 죽어라, 죽어라 하는 사회 말고 다 함께 살고 싶어 지는 사회로 만들어가면 좋겠다.모든 사람을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여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남 시선 상관없이 자기 선택을 온전히 존중받는 시대가 빨리 오길 바라며 오늘도 끄적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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