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계가 사람보다 번역을 더 잘하잖아?
**이 브런치는 홍보를 위한 목적보다, 경력단절을 겪은 아이엄마가 사회생활 복귀에 성공하기 위한 여정을 기록하는 곳입니다.
요즘 구직 공고를 보면 번역가나 로컬라이제이션 프리랜서 모집이 많이 올라옵니다. 전 이런 곳에 문을 두드리시는 분들 중 대학생, 통대 졸업생 아니면 번역 세계에 입문을 희망하시는 분들이 주의하셔야 할 부분들을 몇 가지 언급하고자 결심했습니다. 사실 경력이 오래된 번역가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업계를 잘 모르는 분들이 타깃이 되어 피해를 보시곤 하십니다. ( 사실, 번역 업계에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번역가들은 에이전시와 협업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는 번역가는 경력이 오래되고, 통번역 대학원 석사나 박사 과정을 거친 전문 직업군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번역 에이전시의 속성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도 기존의 여러 에이전시와 직접 협업을 했었습니다만, 주로 PM 들과 작업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번역료에 불만이 있었고, 에이전시에서 제시하는 번역료는 그들의 영업 비용과 마케팅, 그리고 인건비, 소개료, 검수료 등을 선 계산하고 남은 비용입니다. 고객과 직접 영업하여 계약을 맺은 다음에 여러 명의 번역가들을 컨택하여서 비용을 제시하고 기간을 정하여 번역업무를 맡기는 일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되면 번역가가 받는 비용이 굉장히 저렴해집니다.
고객이 제시하는 비용은 100%라면 번역가에게 실제로 지급되는 비용은 40-60% 수준인 것입니다. 게다가 하루 종일 작업을 해서 빠르게 dead line을 정하기에 나 한 사람에게 많은 양의 번역이 주어지지도 않습니다. 혼자 그 많은 분량을 하루 이틀 만에 처리한다면 맡기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게다가 요즘은 기계 엔진까지 번역 업계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초벌 번역 작업을 기계 번역에 맡기고 사람이 검수를 하는 형태로 바뀐 겁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단순히 기계 번역을 한 물량을 그대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기계 번역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Chat GPT는 번역 기계가 아니라 검색 및 소통 엔진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기존엔 구글 같은 검색 엔진을 우리가 단어나 연결 단어를 이어 검색하면 자료를 리스트 업해주고 주어진 모든 자료들 중에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직접 찾아야 했습니다. 단어를 검색 후, 막상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전혀 상관없는 내용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검색에도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습니다. 그 업무를 Chat GPT가 대신해주는 겁니다. 이제는 사과와 수박이 뭔지 알려줘 하면 GPT가 현존하는 모든 인터넷상의 플랫폼을 다 뒤져 대신 검색해서 사과와 수박의 정의를 알려주는 겁니다.
덕분에 인간은 검색 시간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이걸 잘 모르시는 분들이 GPT 검색 번역을 그대로 실무에 사용하였다가 낭패를 본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예시 A: 2023년 가을, 한 회사에서 영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회사 직원이 중요한 감사 과정에 사용될 지표 자료들을 전부 Chat GPT로 번역을 해서 공유했습니다. 미팅에서 감사를 진행하는 외국인 분이 번역이 이상하다며 지적을 계속하셨습니다. 저 또한 번역이 너무 이상하다 여겼습니다. 보다 못한 제가 통역을 하다가 '이거 번역 너무 이상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국어로 작성한 다음 기계로 번역을 돌리고 확인하지 못한 채 그대로 사용하면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예시 B: 통대에서 매우 다양한 자료들로 번역 과제를 주시는데 한 동기가 용접 기술 설명서(manual)를 기계로 번역을 돌린 다음 제출을 했는데 너무 티가 확 나서 모두가 한바탕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동기는 용접 기술을 접한 적이 없었고, 갑자기 해외에서 찾으라 하니 방법도 없고 하여 기계를 사용한 것이었는데, 기계 또한 검색을 해도 결과치가 없기 때문에 엉뚱한 번역을 literal 하게 작업해서 제시한 겁니다. 이러한 정밀 기술, 그리고 지적 재산권, 각종 특허가 달린 기술 등은 인터넷 검색 플랫폼을 아무리 뒤져도 나올 리가 없습니다.
man grinding 어쩌고였는데- 기계는 이걸 '사람을 갈아 넣는다' 뭐 이런 식으로 번역했습니다. 이때, 시기가 2024년 겨울이었습니다. 정말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같은 맥락으로 법률 관련 통역도 그렇습니다. 저는 법학을 4년 과정을 이수했고 졸업했습니다. 4년의 과정 동안 정말 많은 법 과목을 공부했더라고요. 그런데도 공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사실 chat GPT를 이용해서 법을 해석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이 아이 또한 기존에 나온 판례를 검색해서 제시할 뿐입니다. 제가 호주에 있으면서 법률 통역 과목 이수과정 중, 그리고 법원 사건을 직접 참관하며 에세이를 쓰는 과정들을 겪다가, 많은 법률 케이스들을 문의해 본 결과, 기계는 단순히 웹 사이트 상에 올라온 판례 케이스들을 저에게 제공해 주기만 하였습니다. 기계에게 사건의 해석을 맡길 수도 없으며, 판례 케이스 검색이 제한적이고 모든 정보가 매우 폐쇄적이라 로펌도 기계를 사용은 하지만,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터넷상에 올라온 (그것도 접근 가능한) 정보만 가지고는 놓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의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도대체 번역 업계에서 번역 에이전시가 왜 필요한가?
에이전시는 결국 번역가, 통역사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할 뿐입니다. 중간에서 적지않은 수수료를 떼고나면 번역가는 어떨 수 없이 허덕이는 겁니다. 생계유지가 어려운 순간까지 가면 결국은 실력 있는 사람은 업계를 떠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재주는 원숭이가 부리고 돈은 서커스 단장이 가져가는 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업은 PM에게 일을 맡기어 빨리 작업을 받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은 번역 업계를 퇴화시키고 번역가를 퇴출시키고 있습니다.
에이전시는 기계 번역을 운운하며 비용을 더 깎고 있습니다.
원래도 통대, 한국 통번역협회가 정한 비용도 못 받고 있었는데 거기서 더 내려간 겁니다. 그 비용으로 번역가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일은 산더미처럼 많고 데드라인이 짧아 하루 24시간 잠도 못 자고 일을 공장 돌리듯 납품하는 상황이 됩니다.
에이전시들은 서로 가격 경쟁이 붙어 고객을 대상으로 번역료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고객은 가장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에이전시와 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에이전시에서 맡기는 번역가들이 정식 교육 및 훈련을 받은 번역가라고 생각하면 정말 오산입니다. 제대로 된 번역가가 그 가격에 번역일을 맡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두절미하고 기계 번역을 마주하는 번역 업계의 자세에 대한 고찰을 저의 브런치 공간에서 적어보고자 합니다.
기계 번역의 MT 번역 검수를 22년부터 1년간 해온 사람으로서 일부 기계 번역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매우 후회하는 1 인으로서 기계 번역의 한계에 대해서 반드시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기계의 번역 기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것을 보고 놀라서 중단하자 기계번역 검수를 담당하는 에이전시들에서 돌아가며 저에게 재차 콜이 들어왔습니다. 도대체 에이전시들은 제 연락처를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하는 걸까요).
결국 제가 제 발등을 찍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제가 2022년 가을에 국내 전차 제조 기업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전차 관련 기술과 전기, 기계 부품 등 기술 번역을 기계 번역을 활용하여 초벌 번역할 때만 해도 번역이 참 허접했는데요.. 그랬던 MT기계 번역이 1년도 안되어 발전한 것입니다. 제가 머신 러닝 능력을 간과한 결과였습니다.
그 뒤로 업계도 웅성거렸습니다. 통대에서 GPT를 활용해서 번역을 검수하기 시작했고 통대생들 중 일부는 기계 번역을 활용하여 과제를 하기도 했습니다. 본인이 한 것을 기계에게 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시험 삼아 저도 교정을 받아 보았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문법 교정은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기계 번역에도 허점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기생충에서 서양 문화에 없는 짜파구리를 번역해야 했을 때 번역가가 고심 끝에 Ram-don이라는 단어, 그리고 서울대를 Oxford라고 번역한 행동은 말하자면, 번역가가 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동일한 값을 찾아 그 규칙성을 발견하여 가장 높은 확률의 결과값을 제공하는 기계는 제시는 하지만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질 수 없습니다.
기계가 '짜파구리라는 단어는 서양 문화에 없는 단어이니 Ram-don이라고 하는 걸 추천드립니다.'라는 말은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추천을 하더라도 인정 받지 못합니다.업계에서 기계번역을 인정한다면 기계의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한다는 말인데 인공지능은 아직 저작권을 인정받는 개체가 아닙니다. 만약 무언가 추천을 했다면 그건 빅 데이터 상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추천이 되는 가장 통계적으로 높은 확률을 가진 단어를 발견한 것일 뿐입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번역 에이전시에서 기계 검수를 하여 번역가의 번역을 검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또한 기계 검수를 돌리고 나서 제출을 하기 때문에 (어떤 걸로 꼬투리가 잡힐지 모르기에 다 대비를 합니다.) 이미 기계번역 결과물을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기계 번역이 교정을 권장했다 하더라도 그 번역이 옳지 않으면 번역가는 선택하지 않을 수 있어야 맞는 것인데, (결국 그 책임은 번역가에게 있기 때문에) 추후, 에이전시에서 기계 번역을 돌리고는 기계 번역이 더 맞다며 제 번역에 딴지를 걸면 정말 어이가 없는 겁니다. 이것은 이론을 학습한 연구자의 의견보다 인공지능의 번역을 인정하겠다는 건데 번역일을 소개하는 에이전시가 번역가의 전문성과 역량을 자체적으로 깎아내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직업윤리를 잊고, 번역가와의 상도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에게 어떤 사건을 조사하고 해석을 요청했는데 AI가 사건의 개요나 해석을 제시한 겁니다. 변호사가 읽어보고 이건 아닌데,라고 하면 거기에 반박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번역가는 번역이라는 고대부터 이어온 꽤나 오래된 학문이자, 학계가 있고 굉장히 많은 논문과 세계적으로 저명한 언어학자들이 존재하는 영역임에도 전문 공부를 한 사람을 무시하고 기계가 옳다고 믿다니요. 이것은 전문성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에이전시가 우리의 전문성을 인정안하는데 고객이 인정할리 만무합니다.
여러 전문직군처럼 저희는 통번역 학사과정도 있고 심지어 정식인가받은 전공심화 전문대학원과정도 았습니다. 한 학기 대학원 등록금은 의대, 로스쿨보다 비쌉니다. 통역료. 번역료도 정식 책정 비용은 사실 어느 전문직보다 비쌀 겁니다.
한국에 통번역 기준이 모호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이유라고 생각은 합니다. 예를 들어, 호주만 해도 호주 통번역협회 정규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반드시 정식 인가받은 통번역대학 또는 대학원의 통번역 학과 과정의 교수님의 추천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통, 번역사로 일하려면 반드시 NAATI 통번역 시험을 통과하여 자격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 시험자격도 통대를 졸업해야 시험을 칠 수 있습니다. 통대졸업장이 없으면 아무리 언어를 내가 잘한다 해도 회원이 될 수 없는 등의 허들이 있습니다. 한편, 한국의 통번역 업계는 지금 아무나 '나 번역가야, 통역사야' 할 수 있게 기준이 모호하고 선이 흐릿합니다. 의대나 로스쿨은 아무나 의대를 나오지 않고 '나 의사야', 변호사야 하며 practice를 할 수 없듯이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bar를 높여 놓았는데, 한국 통번역 협회도 그런 기준을 마련해 놓으면 좋을거 같습니다.
한국어 특성상 기계 번역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되는 데, 이대로 가다간 번역업계 미래가 어둡다는 견해를 가지고 말씀드립니다.
그 어렵다는 통대시험을 2, 3년씩 공부하고 들어가는 전문대학원에서 정식 교육과정과 어려운 졸업시험이 있는 만큼, 업계에서 통대 졸업생들에 대한 업계 대우에 대하여 고민을 해 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과정 전부 비용 결코 적지 않습니다. 갓 졸업한 졸업생들을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틀을 어느 선까지는 마련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지는 번역, 통역의 기술도 체득, 훈련이 되지 않은 이들과 적어도 동등선에서 경쟁하지 않는 상황 정도는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이곳이 정글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러고보니,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에이전시에서 아프리카 사절단이 국회 방문일정을 3일 잡고 통역사를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에이전시에서 통대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해외 거주 경험이 많은 사람을 보낸 겁니다. 그랬다가 통역 시작 한 시간만에 업체에서 통역사 컴플레인과 함께 교체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연락을 받고 나머지 일정을 메꾼 것입니다. 전날 연락받아 갔기에 자료 학습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제가 국회에 도착하자 전날에 오신 분은 통역사가 아니었다는 말을 국회 상주 통역사분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양방향 순차라고 해도 하루종일 하면 더 힘듭니다. 저도 해보니 당이 얼마나 당기던지. ^^;;
PS: 번역 에이전시에서 보는 샘플 번역 팁: 에이전시에서 샘플번역을 보는데 NDA 서명을 요청하면 응시하지 마세요. 고객의 일을 받아서 무료로 번역을 시키려는 의도입니다. 샘플 번역의 양이 A4 용지 절반을 넘어가면 응하지 마세요. 역시 고객의 일을 대신 시킬 확률이 큽니다. 만약 이런 곳을 발견하셨다면 번역 카페 등에 이름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