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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예슬 Mar 15. 2020

비정기적 빵 이야기

0번째

 



 안녕하세요, <비정기적 빵 이야기>입니다.

비정기적 빵 이야기는, 두 사람이 함께 기록하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먼저 인사드리고 싶어 이번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 일러스트레이터

야금이  YAGEUMEE

일상 기억을 그림으로 남기고 그 그림의 양이 쌓이면 책으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상 기억은 그날 기분 좋게 했던 요소들입니다. 그날 입었던 옷일 수도 있고 좋았던 곳, 그날 하늘 등 정말 일상에 스쳐가는 기억들입니다. 하루하루 만족감을 그림으로 채워가고 그 기억들을 좀 더 보관하고 싶어 시각적 형태인 책이라는 형태로 남겨가고 있습니다.

gomi0103@naver.com | instagram @loobrs


| 독립출판 작가

주예슬 JU YE SEUL

라디오 작가를 꿈꾸던 매일의 마음과 생각을 모았습니다.


2017년 7월 마지막 날, 첫 번째 독립출판물 <마음옷장>

2019년 3월, 두 번째 독립출판물 <생각옷장>을 출간했어요.


꿈은 이루었지만, 이제는 직업을 꿈꾸기보다 글을 쓰는 꿈을 꿉니다.

매일의 삶을 쓰고 싶은 사람이에요.


yeseulju@naver.com | instagram @seulyeju


(중간 생략)


“안녕하세요~.”

“아이고! 빵순이 왔나~. 오늘은 뭐 주꼬?”


빵집 사장님의 정다운 물음에, 매일 아침 “같은 걸로요.”라고 똑같은 커피를 주문하는 단골손님처럼 “네, 요걸로 주세요.” 하고 늘 똑같은 빵을 집어 들었다. 바로 완두 앙금빵이었다. 항상 같은 빵을 골라도 ‘오늘은’이라고 콕 집어 물어봐주시는 사장님의 인사는, 묘하게 기분을 좋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초록빛 완두 앙금빵을 한 손에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내밀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나, 집에서 어딘가로 나설 때면, 꼭 시장 입구에 있는 빵집에 들러 완두 앙금빵을 사 먹었다. (아직도 먹어보지 못한 숱한 빵들이 남아있지만,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만 질릴 때까지 먹는데, 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완두 앙금빵. 노릇노릇 봉긋하게 구워져 갈색 빛깔 윤기가 흐르고, 살짝 벌어진 반죽 사이사이에는 초록색 앙금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빵의 중심에 있는 소보루 가루와 검정깨들은, 마치 *실링 왁스처럼 보였다. 앙금이란 말이 익숙하지 않았고, 완두 앙금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초록색 팥빵’이라고 불렀다. 그때 알고 있던 빵의 종류는, 식빵·팥빵·크림빵·소보루빵이 전부였다. 팥 알갱이도 하나 없었지만, 크림과 소보루가 아니란 이유로 당연히 팥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반들반들하고 부드러운 빵 겉면을 베어 물면, 포슬포슬과 촉촉 사이 어딘가 쯤에 있던 완두 앙금이 입 속에 닿았다. 가끔 빵 밖으로 삐져나온 앙금만 맛볼 때면, 혀와 입천장으로 앙금을 으깨가며 먹기도 했다. 고소한 빵과 같이 먹을 때와는 다르게, 완두 앙금만의 단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종종 그렇게 먹었다.


(중간 생략)


부산 연동시장 시장통에 살던 초등학생 빵순이에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은, 언제든 부르면 나와서 함께 놀던 동네 친구가 있는 것처럼 든든했다. 완두 앙금빵을 못 보고 안 먹은 지가 옛날 동네 친구들을 못 본 만큼이나 오래되었다. 동네도 시장도 빵도 그대로인데, 나만 이만큼이나 커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나는 팥 앙금이 들어간 빵을 먹을 때만큼은 흰 우유를 찾는다. 아마도 어린 빵순이와 빵이, 손가락 걸고 약속이라도 했던 모양이다. 크고 작은 기억이 추억이 될 때마다, 떠오를 수 있는 시간들 덕분에 충만하다가도, 그만큼 멀어진 지금이 낯설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추억을 거슬러 올라갈 때 스치는 기억들은 어느새 나를 또 든든하게, 더 단단하게 한다. 입맛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니 알았다. 내 어린 시절 동네 친구였던 초록색 팥빵이, 그때의 나를 든든하게 해 주었고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해주고 있다는 걸. 고맙다 친구야, 내 친구 완두 앙금빵!


/ 페이지스, 책 <나를 채운 어떤 것-오늘은 뭐 주꼬?> 중에서



우리는 지난가을에 만났습니다.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렸던 독립출판 마켓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요. 조금은 비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서로를 응원하며 나란히 앉았던 시간이. 인연이 되어주었습니다.


  우리는 빵과 카페, 하늘과 비슷한 색감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걸 한 데 모아 각자의 손끝으로 기록해보기로 했어요. 한 사람은 글로, 한 사람은 그림으로요. 이번 기록을 시작으로, 우리의 기록들이 한 권의 책이 되는 게 두 사람의 작은 바람입니다.



  고소한  냄새가 묻어 있는 문장과 그림들에게로 초대하고 싶어요,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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