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 부러워, 그저 부러워."
지성이가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친구 이름이 적힌 종이들을 유치원에서 받아왔다. 학창 시절에 했던 롤링페이퍼였다.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에게 고마운 점 감사한 점, 또는 칭찬할 점들을 적어서 내라는 숙제였다. 지성이 이름까지 28명의 아이들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ㅇㅇ은 근육이 많아서 튼튼해요.”
“ㅇㅇ는 장난을 잘 치는 꾸러기여서 웃겨요.”
아이의 장점과 고마운 점을 기억하며 한 줄씩 써 내려간다. 물론 맞춤법은 뒤죽박죽. 써온 걸 다시 확인했는데, 빈칸이 없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칸은 비워둘 줄 알았는데, 한 줄 가득 뭔가가 쓰여 있다.
김지성 : 나는 나를 무지무지 사랑해요.
기가 막힌 한 줄이었다. 나 자신을 무지무지 사랑한다니. 내가 저 나이 때에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싶으면서도, 아니 지금 마흔에도 저런 문장이 잘 안 나오는데…. 그러니까 그냥 막 부러운 거다.
지성이 목욕을 해주며 지성이에게 물었다.
“지성이는 지성이를 사랑해?”
“응, 나는 내가 좋아.”
“왜 좋아? 어디가 좋아?”
“음, 이름도 마음에 들고. 몸도 마음에 들어.”
“몸 어디가 마음에 들어?”
“손가락도 좋고, 무릎도 좋고, 코도 좋아.”
“손가락은 왜?”
“손가락으로 종이접기를 할 수 있잖아. 무릎으로는 공을 찰 수 있고.”
그리고 대화 주제는 빠르게 다른 걸로 옮겨갔다.
“엄마, 내가 어몽어스 열쇠고리가 너무 갖고 싶은데. 딱 하나만 사주면 안 될까?”
나의 엄마는 어릴 적 내가 갖고 싶은 게 있거나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늘 “기도해보자”라고 하셨다. 작게는 자질구레한 인형들이었겠고, 크게는 대학생 때 필리핀 해외봉사활동까지 폭과 범위, 종류는 다양했다.
“지성아, 하느님께 기도해보자.”
거의 5초 후였을까.
“엄마, 하느님이 너가 꼭 갖고 싶으거면 사래.”
“기도를 벌써 했어?”
“응, 엄마 근데 하느님 목소리가 어디서 들려?”
“글쎄, 지성이 마음에 들리게 이야기해주시지 않을까? 그런데, 지성이는 열쇠고리를 사주면 안 들고 다니고, 보관만 하잖아.”
“엄마, 이건 진짜 가방에 달고 다닐 거야.”
“그럼, 엄마가 지난번에 사준 콘 열쇠고리랑 이모가 준 브롤스타즈 열쇠고리는 어디 있어?”
“그거야 잘 보관하고 있지! 내가 어디에 뒀는지도 모를까 봐.”
“어차피 보관만 할 거, 그냥 문방구에서 잘 보관해놓게 두자. 굳이 뭘 사.”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한다.
“아니, 그러면 다른 사람이 사갈 수도 있고, 내가 할아버지가 되면 없어지잖아.”
대단하다. 그럼 이번에 사 주면 할아버지 될 때까지 써야 한다고 차마 말하진 않았다.
“엄마, 그러니까 진짜 이번만 딱 한 번만 살게. 나는 나를 무지 사랑하니까 어몽어스 열쇠고리 사야지. 하느님이 꼭 필요하면 사래. 진짜야.”
웃으면 사라지는 눈웃음을 따발로 발사하며 입가에 함박웃음을 걸고 나를 바라본다. 졌다.
그리고 나는 그날도 넘어갔다. 아이가 자는 밤, 휴대전화로 어몽어스 열쇠고리를 검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