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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Sep 14. 2017

링컨파크 동물원의 가을

시카고에서 제가 다음에 살고 싶은 동네를 고르라면 시내에서 북쪽으로 차 타고 10분 정도 올라가면 있는 링컨파크입니다. 높은 건물 많은 도심 지역에 비해서 운치 있는 주택들도 많고, 좋은 교육 시설, 그리고 무엇보다 링컨파크 동물원이 바로 앞에 붙어 있기 때문이죠. 


어제는 주말인데 남편이 친구와 풋볼 경기를 보러 나가겠다고 해서 전 아이와 처음으로 단둘이 동물원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집에만 있기엔 어제 시카고의 날씨가 정말 아름다웠거든요. 


그림 그리는 걸 워낙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서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들고나갔습니다. 그렇게 하니 마치 학창 시절이 야외 사생 대회를 나온 기분이 들었어요. 친구들과 원하는 곳에 앉아서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백일장을 하던 그 시절처럼 말이지요. 아이는 동물 구경을 하다가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는지 벤치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링컨파크 동물원은 입장이 무료입니다. 규모가 엄청 크지는 않지만 도심에서의 좋은 접근성 덕분에 시카고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지요. 그리고 제가 꼽는 시카고 랜드 스케이프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스폿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동물원 앞에 있는 야외 노천 카페 호수에서 시카고 도심을 바라보면 그 어떤 도시가 부럽지 않게 멋지답니다.


이미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나는 동물원에는 수많은 도토리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이는 한참 동안을 땅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모아 가방에 넣어두었지요. 이렇게 모은 도토리와 나뭇가지들은 아이방 한 구석에 잘 모아두었다가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할 때 사용합니다. 못생긴 도토리는 못생긴대로, 부러진 나뭇가지들은 부러 진대로 다 훌륭한 아이의 미술 재료가 됩니다.



사실 어제 아이가 고른 패션은 너무 웃겨서 동물원에 가서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만, 그러기엔 어제 시카고 날씨가 너무 좋았습니다. 결국 꼬마 기차를 타고 있는 저희를 친구네 아이가 발견하고는 달려왔지요. 덕분에 저희는 같이 신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엄마랑 둘이 놀 때도 좋았지만, 또래 친구가 같이 있으니 둘이 같이 클래식 기타리스트의 음악에 맞춰 한참 동안을 춤추며 놀았습니다. 역시 30개월이 된 아이에게 이제 엄마 말고도 또래 친구가 더 재밌는 시기가 왔나 봅니다.

 


엄마랑 둘이 동물원에 와서 이렇게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아주 잠깐, 학교를 너무 일찍 괜히 보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매일 아침 학교 보내는 건 전쟁이거든요. 눈 뜨자마자 학교 가기 싫다고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를 생각하자니, 그냥 아이 학교를 관두고 이렇게 매일 동물원 놀러 다닐까 생각을 하다가도, 곧 추워서 집 밖에 나가는 건 상상도 못 할 혹독한 시카고 겨울을 생각하고 이내 마음을 접었습니다. 주중엔 엄마도 좀 쉬는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 집중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아이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기로요. 시카고에 길고 긴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더 부지런히 아이와 추억을 쌓으러 다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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