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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un 19. 2018

아빠의 소원을 들어줄게요, Father's Day

인디애나 듄스, 미시간 호수 백사장

어제는 미국의 Father's day였어요. 여기는 어머니 날, 아버지 날 따로 있는데 Mother's day는 지난 5월에 있었지요. 우리나라 어버이날에 백화점에서 프로모션 상품을 기획하고, 식당 예약 잡기가 힘든 것처럼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의 어버이날과 차이가 있다면, 미국은 단지 자식에게 축하받는 날이 아니라, 아내나 남편이 서로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날이죠. '우리 아이들의 어머니(아버지)로 열심히 살아주어, 내 와이프(남편)가 되어주어 고맙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재밌는 건 Father's day보다 Mother's day의 규모나 중요도가 훨씬 더 커요. 쇼핑몰들의 프로모션이나 좋은 식당들의 예약 건수를 봐도 말이죠.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건 같은 것 같네요!)


우리 어렸을 적 종이 카네이션 만들듯이 아이의 유치원에선 아빠를 위한 넥타이 선물


일요일이었던 어제 이른 아침, 그 전날 늦게 잠을 잔 탓에 달콤한 아침 꿀잠을 자고 있는데 남편이 깨웠어요. "일어나서 우리 인디애나 듄스(Indiana Dunes) 놀러 가자! 거기에 해변이 있대!" 하지만 전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죠. '집 옆에도 호수 해변가가 있는데 왜 거기까지 운전을 해서 가야 되나, 아무 장비도 없는데 땡볕에서 무슨 고생을 하려고, 가기 전에 먹을 것 챙기고 다녀와서 정리하고 다 내 몫일 텐데 정말 가기 싫다. 무엇보다 난 지금 너무 졸렵다...' 머릿속에 안 가고 싶은 이유 리스트가 순식간에 열 개도 넘게 생각났지만, 그래도 꾹 참고 일어났죠. 왜냐, 오늘은 아버지 날이니까요!



인디애나 듄스는 State Park로 지정되어있는 곳인데 미시간 호수를 끼고 있는 모래사장이에요. 시카고에서 출발하면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있지요. 꽤 이른 아침 출발을 했는데도 도착하니 벌써 주차장이 꽉 차 있었어요. 날씨도 좋고, 또 Father's day라서 가족 단위로 나들이 온 집들이 많았죠. 한국에서도 육아를 잘하려면 장비발이라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대신 아이템이 좀 다른데, 여긴 아웃도어 용품들이 육아 장비지요. 집집마다 준 캠핑 전문가 수준으로 구비되어있는 것 같아요. 돌돌 끌고 다니며 아이들이 탈 수 있는 수레, 군장비 같이 생긴 거대한 아이스박스, 식구 수 대로 비치 의자와 파라솔 등. 물론 무소유를 미덕으로 살아가는 요즘, 저희는 아무런 장비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돗자리 한 개, 물 한 병, 과자 한 봉지 단출하게 들고 비치에 도착했습니다.


저 호수 건너엔 토론토


이 곳은 바닷가와는 달리 호수라서 그런지 물이 정말 얼음물처럼 차가웠어요. 그늘이 없어 이글거리는 태양을 무방비상태로 쬐고 있었지만, 물속에 발을 담그니 마치 산속 계곡에 온 것처럼 시원했지요. 물론 보이는 풍경은 수평선뿐이라 마치 태평양 앞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요. 아이는 아빠랑 모래성을 만들다 차가운 물속에 첨벙 들어가서 놀기를 반복하면서 제일 열심히 이 여름을 즐겼습니다.



한 시간쯤 놀다 정오가 가까워지니 더 이상은 장비 없는 상태로는 내리쬐는 햇살을 피할 수 없었어요. 저흰 다음을 기약하며 후퇴하기로 했습니다. 해변에서는 텐트랑 시원한 음료 단긴 아이스박스 있는 집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는데, 다시 주차장으로 나가는 길에 보니 우리가 더 나은 건가 싶기도 했어요. 장비가 가득 든 무거운 수레를 끌면서 모래사장 언덕을 헉헉 대며(심지어 아이를 목마 태우고) 올라가는 한 아이 아빠의 모습을 보고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죠. Father's day에도 아빠는 멀티로 제 할 일을 해야 되는구나, 싶었지요.



Father's day라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인디애나 듄스를 가고 싶다는 남편의 소원을 들어주었으니, 내년 Mother's day에 남편은 제 소원을 들어줄까요? 아마도 한 달 전부터 남편 핸드폰에 알람을 수십 개 맞춰놓는다면, 그 소원은 이루어지겠죠?




아이와 인디애나 듄스 여행 Tip


1. 6월부터는 한여름처럼 뜨거워지기 때문에 충분히 머물기 위해선 파라솔, 텐트, 돗자리 등 장비가 필요해요. 특히 돗자리 없이는 백사장에 도저히 앉을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답니다.

2. 근처에 상점이 전혀 없기 때문에 물, 음료수, 간식은 필수예요. 아이스박스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3. 시카고-인디애나 사이에 Johnson's Farm이라는 유명한 농장이 있어요. 딸기, 호박 등 제철 과일, 야채를 직접 딸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고, 재미난 야외 놀이시설 등이 있어서 미국 아이들의 연례행사 장소지요.

4. 무료 주차장은 여러 군데 있지만, 빨리 자리가 차 버린답니다. 10시 이전에 도착을 하는 걸 추천합니다.

5. 샤워 시설은 없지만, 짠물이 아니기 때문에 수건만 가져가도 충분해요.


http://www.indianadun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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