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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an 12. 2020

딸둘맘이 된 후 첫 여행, 나파밸리 소노마

둘째 태어난 지 +20일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아기 우유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 갈아주고, 이렇게 밤낮 없는 24시간을 살아온지도 벌써 다음 주면 100일이 되어옵니다. 드디어 우리 집 둘째의 백일이 다가오고 있어요. 기특하게도 1주일 전부터는 밤 12시에 잠들어서 6시까지 통잠 자기 성공하는 날도 몇 번 있었죠. 대신 그만큼 낮잠을 안 자기 때문에 뭐 조삼모사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밤에 잠을 좀 잘 수 있다는 건 정말 신생아 부모에게 축복이에요. 지난 100일 동안 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으니 글쓰기는커녕 컴퓨터 전원을 킬 힘도, 여유도 없었어요. 그래서 틈나는 대로 밀린 이야기들을 다시 써보려고 합니다.


둘째 연우가 태어난 지 3주 즈음, 샌프란시스코 나파밸리로 아기 인생 첫 여행을 다녀왔어요. 사실은, 제가 임신 기간 동안 제일 가고 싶었지만 가도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 가지 못한 곳이 나파밸리 와이너리였거든요. 그래서 아기 낳고 몸조리 끝나면 꼭 가야지 생각해두고 있었는데, 우연히 미국의 땡스기빙 연휴에 남편의 대학원 동기가 그곳에서 웨딩 파티를 한다고 연락이 왔죠. 이 신생아 시기에 아기와 저희를 달랑 남겨 두고 남편 혼자 긴 연휴에 결혼 파티를 가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또 안 가자니 초대한 친구에게 미안해서 고민을 하다 온 가족이 다 같이 가게 되었죠. 태어난 지 갓 3주가 지난 둘째까지 모두 함께요! 사실은 아이들은 두고 휴식 겸 엄마랑 둘이 조용히 다녀오려고 했던 나파밸리 여행이 왁자지껄 정신을 쏙 빼놓는 '나 홀로 집에 3' 여행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태어난 지 3주 된 신생아를 데리고 첫 여행, 극기훈련의 시작.


파티가 열렸던 곳은 나파밸리 옆 동네인 소노마 지역의 The Lodge라는 호텔이에요. 참 정 많고 인심 좋은 한국 사람 문화로는 적응이 안 되는 문화이기는한데 미국은 결혼식 초대를 받으면 참석하는 사람이 비행기, 호텔 등 모든 걸 다 자비로 하더라고요. 예전에 미국에 사는 친척 언니가 하와이에서 결혼을 하면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해줘서 문화 충격을 적잖이 받았는데, 그게 이 곳 문화인 것 같더라고요. 정말 가까운 사람만 초대를 하고, 또 다음번에 상대방의 중요한 행사에 서로 참석을 해주는 거죠. 어쨌든 참석한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숙소 예약을 해야 되는데, 우린 아이들도 있고 해서 그냥 파티가 열리는 호텔, The Lodge에서 지내기로 했어요. 결과적으로 정말 잘한 선택이었죠! 이 소노마 지역의 분위기에 흠뻑 취하기에요. 


역시 이 곳은 온 동네가 와인 세상다웠어요. 마치 라스베이거스 그 도시에 도착하면 공항에서부터 촬촬촬하는 동전 쏟아지는 소리와 냄새가 비행기에서 막 내린 여행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듯, 나파밸리 표지판을 지나자마자부터 모든 게 포도밭, 와이너리였죠. 추수철을 한참 지나고 이미 추워진 날씨에 겨울을 준비하는 포도밭이었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을 여니 달콤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어요. 십 년 만에 다시 온, 그리웠던 나파밸리!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꽤 늦은 저녁이었는데 바로 파티에 참석해야 될 시간이라 방에 가서 얼른 옷만 갈아입고 내려왔어요. 다행히 함께 여행 온 엄마가 둘째를 봐주신 덕분에 어느새 첫째 딸이란 타이틀을 갖게 된 윤서도 오랜만에 엄마, 아빠랑 온전히 셋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죠. 대학원 졸업을 하고 각자 취업이 확정된 도시로 떠나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지인들도 다 같이 볼 수 있어 반가웠던 시간이었어요.


육아에 최적화된 옷만 입다가 오랜만에 윤서와 드레스업해서 기분이 좋아진 밤


매일 저녁이 되면 호텔 로비 한편에 근처의 와이너리에서 직접 나와 와인 홍보도 할 겸 와인 테이스팅을 하는데 투숙객들은 누구나 무료로 참석해서 와인을 즐길 수 있었어요. 많이 알려진 로버트 몬다비 같은 큰 와이너리 말고, 가족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와이너리들이 주로 방문했는데 그래서인지 더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와인 소개를 하는 게 참 좋았어요. 와인 테이스팅에 참여한 사람들은 와인잔을 채워 삼삼오오 로비 이곳 저곳에 둘러앉아 와인을 즐겼죠. 저희도 한 잔 받아와 다음 날 어디 와이너리를 갈까 계획을 짜보았지요. 하지만 신생아를 데리고 시카고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오느라 녹진녹진해진 몸과 마음에 달큰한 와인 한 잔이 더해진 시간. 아이와 다닐 때는 역시 '무계획이 계획이다'라고 결론을 내며 첫 날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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