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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Nov 09. 2017

위스콘신 가을 여행

세상에서 제일 예쁜 단풍을 찾아서

시카고의 가을은 요즘 하루하루 깊어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 밖 너머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겨울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지요. 마루에 나와서 창 밖을 보면 하룻밤 새 어제보다 한층 더 노랗게 변한 단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며칠 전부턴 집 앞 공원에 일하시는 아저씨들이 열심히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계시더라고요. 이제 이 아름다운 가을이 절정을 이루고 나면 길고 긴 시카고의 겨울이 시작되겠지요.



지지난 주말에는 식구들과 단풍 맞이를 하러 위스콘신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날씨가 빨리 추워지지 않아서 그런지 여기 일리노이 주에는 단풍이 이쁘게 안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사는 곳보다 더 북쪽으로 가면 더 이쁜 단풍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마침 핼러윈 직전이라 여기저기서 펌킨 패치도 있고,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있었지요.



저희가 갔던 곳은 위스콘신주 매디슨 근처의 한 랜치였습니다. 아이가 동물을 좋아하는데 이 곳에 가면 아기 동물들도 만날 수 있고, 또 트레일을 따라 승마도 할 수 있다고 해서 가게 되었지요. 규모가 아주 큰 곳은 아니지만, 한 가족이 소유하고 직접 식구들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라 아주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해서 한 것은 이 랜치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트랙터 타기. 아마도 이 랜치의 삼촌 뻘 되어 보이는 분이 트랙터를 운전하고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핼러윈 기간이라 랜치 이 곳 저곳을 분위기가 나도록 헌티드 하우스도 만들어놓고, 마녀 수프를 끓이는 곳도 연출했지요.



농장 안 마당에는 아이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고리 던지기, 볼링 같은 저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 있어서 아날로그 향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재밌는 건 이런 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 아이가 가진 성향을 알아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독립심이 강한 아이인지, 승부욕이 있는지, 집중력이 있는지, 잘 못하더라고 계속 도전을 하는지 등 그런 성향들을 발견해나가는 게 전 참 재밌습니다.



핼러윈이니 펌킨이 빠질 수 없지요. 입장료를 구입하면 여기서 일인당 한 개씩 호박을 고를 수 있게 하는데요, 크기는 상관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서는 들기 힘든 큰 호박을 고르기도 하고, 일부러 못생긴 호박을 고르는 사람들도 있고, 흠집 하나 없는 이쁘고 작은 호박을 고르는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다양한 취향들이 있어서 하나의 호박을 놓고 싸우는 경우는 없지요. 고른 호박은 집에 가져가도 되고 또 옆에 마련된 그림 그리기 도구를 통해서 호박 얼굴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걸 너무 좋아하는 아이는 자기 것을 다 끝내고, 엄마, 아빠 것까지 모두 다 그린 후에야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마지막 순서로 타게 된 승마 시간. 한 시간 정도 말을 타고 트레일을 도는 건데 늦게까지 잘 참고 기다린 덕분에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석양이 지는 시간에 맞춰서 말을 탈 수 있었어요. 사실 시카고 도심에 살면 여기가 서울인지, 시카고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도시 생활인데, 가끔 이런 곳에 와서 전원을 즐기게 되면 아, 여기가 미국이었지, 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직 혼자서 말을 탈 수 없는 아이는 아빠와 함께 말에 올랐습니다. 우리가 평소 보던 말보다 무척 덩치가 컸었는데 아이는 무척 좋아했습니다. 자기 손으로 먹이도 주고, 말머리도 쓰다듬어 주고요. 저는 이 세상에 두렵고 무서운 게 참 많은 사람인데 아이는 저를 닮지 않았는지 겁이 없습니다. 요즘은 말문이 트여서 "엄마(가) 아가 손(자기 손) 잡아(잡으면), 아니 무셔 (무섭지 않아)"라고 하며 제 손을 꼭 잡아주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싫어하는 동물들도 만지게 하고, 곤충도 보게 하고, 세상 싫어하는 개구리도 보게 하고. 용감한 아이 덕분에 요즘 제가 평소에 안 보던 걸 많이도 보게 됩니다. 재밌어요.



그리고 드디어 이 여행 시작의 아이디어가 되었던 '세상의 가장 이쁜 단풍 찾기'의 대미를 장식할 단풍을 발견! 말을 타러 기다리는데 마지막 잎새처럼 거의다 잎이 떨어져 간 나무에 나 홀로 빨간 색으로 물든 단풍을 발견했어요. 사실 올해는 날씨 때문에 일리노이나 위스콘신이나 작년만큼 이쁜 단풍을 발견하기 어려웠는데, 오히려 이렇게 작고 이쁘게 생긴 단풍 하나를 발견할 수 있어서 행복했지요. 그 어떤 단풍 보다도 이 날 본 단풍은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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