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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Sep 05. 2018

싱가포르 아이들의 미술관

유목 육아 in 싱가포르 - 3

아침 일찍 눈을 떠보니 눈 앞이 뿌옇다. 32층에 있는 우리 호텔방은 통창이 있어서 전망이 좋은데 아침에 일어나니 하얀 캔버스 같이 변해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엄청나게 무거워 보이는 안개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르릉 쾅쾅 소리를 내면서 폭우가 무섭게 내리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둘째 날 아침, 오늘도 역시나 어제처럼 큰 욕심 내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만약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면 어제 발견한 실내 놀이방이나 가서 시간을 보내지 뭐.


아빠 출근 전, 안개 캔버스
이렇게 에너지 넘치는 애를 잠시 유치원을 쉬기로 한 건 정말 큰 결정이었다


다행히 스콜성 폭우였는지 점심을 먹고 나니 하늘이 다시 개어있었다. 하지만 하늘이 꿈틀꿈틀 언제 다시 비가 쏟아질지 모르니 오늘은 멀리 가지 말고 호텔 가까이에 있는 곳들을 구경하기로 했다. 지도를 펼쳐보니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이 바로 아트 사이언스 뮤지엄. 시카고에 있을 때도 아이가 어린이 미술관을 좋아해서 항상 미술관 가자고 노래를 불렀는데 다녀오면 내가 지쳐서 그 가까운 거리에도 잘 못 데리고 다닌 게 항상 미안했었다. 그래서 9월 한 달은 아이가 '놀고, 놀고, 또 놀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이므로, 아주 잠깐 고민을 하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아트사이언스 뮤지엄
밤이면 저 연꽃 모양 건축물에 미디어 아트를 상영하는데 매번 시간을 놓쳐 아직 못봤다.


사실 미술관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여기는 미술을 접목한 과학박물관에 좀 더 가까웠다. 지금은 한시적으로 Future World라는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미디어 아트를 이용해서 직접 전시를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아이들은 방 안 가득 흩날리는 꽃 사이를 뛰어다니며 가상의 나비를 잡고, 세차게 내려치는 폭포 아래 들어가기도 한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며 풍선을 터뜨리기도 하고, 비행기 그림을 그리면 실제로 한쪽 벽면에 아이가 그린 비행기가 하늘을 날기도 한다. 물론 다 가상 속에서 말이다.


내가 요즘 봉사 활동을 시작한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라이언 교육 센터에도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 물론 여기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물론 아트의 장르가 다르기도 하지만, 그곳은 종이와 연필을 이용한 좀 더 고전적인 방법이라면, 싱가포르는 디지털이다. 엄마로서 좀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재밌는 디지털 아트 미술관에서 뛰어노는 재미를 알아버린 아이에게 다시 시카고에 가서 밋밋한 종이와 연필을 쥐어주면 예전처럼 좋아할까? 이미 아이패드의 맛을 알아버린 아이에게 종이 그림책을 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가 내일 아침에 다시 일어나면 정정해주어야겠다. 우리가 어제 다녀온 곳은 미술관이 아니라 새로운 놀이터였다고. 아이가 살아갈 시카고엔 아직 이런 게 없는데 '미술관'에 대한 기대치를 훌쩍 높여놓으면 곤란할 테니.


큰 공을 굴리며 뛰어놀면 색색가지 색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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