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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an 10. 2019

싱가포르 육아 일기

내셔널 갤러리에 가면 아이들 모두 작가가 된다

미국과의 시차 때문인지 어제도 밤을 꼴깍 새웠다. 새벽 5시가 넘어 잠깐 잠이 들었다가 남편 출근하느라 준비하는 소리에 잠깐 실눈이 떴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쉽게 떠지지 않았지만, 결국 아침 일찍 일어나 활기를 되찾은 아이 때문에 겨우 침대 밖으로 나왔다. 이대로 있다가는 하루 종일 밤잠 같은 낮잠을 자게 될 것 같아(아이가 허락을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 9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하지만 1월 초의 싱가포르 아침은 벌써 한낮처럼 뜨거웠다. 우린 우선 택시나 지하철 대신 걸어서 다녀보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 이렇게 걸어보면 주변에 어디에 슈퍼마켓이나 약국이 있는지도 미리 알 수 있고, 또 위치 파악도 좀 수월해진다는 걸 알았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는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 지난 번에 한 번 가본 곳인데 한눈에 반해버렸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어린이 미술관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한 이후, 어디를 가든지 이런 박물관들의 어린이 프로그램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이 곳은 내가 가본 미술관 중에서 가장 시설과 프로그램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년에 유러피안 뮤지엄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어린이 미술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와 마찬가지로 이 곳도 어린이 박물관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 내 어린이 박물관 Keppel Center 

https://www.nationalgallery.sg/discover-learn/keppel-centre-for-art-education 

 

몇 달이 지나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이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인상 깊었나 보다.


이 곳에 오면 아이들이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작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를 배울 수 있게 된다. 어린이 박물관은 서너 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판화, 도자기, 멀티미디어, 도시 건축, 회화 등 아이들이 각 방을 돌아다니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윤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판화 만들기 방.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설계된 테이블엔 아이들이 스스로 판화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도록 종이와 도장이 준비되어 있다. 아이들은 순서에 따라 판화 작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또 완성된 작품은 한쪽 벽에 준비되어있는 빈 액자에 걸어두어 마치 자신의 작품이 갤러리에 걸리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그 옆 방은 도자기 만들기 방이다. 물론 진짜 흙을 도자기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 곳은 싱가포르! 최신 미디어 기술로 뭐든지 만들어내는 나라다. 아이들은 도자기 프로그램의 화면 안에서 진짜 물레를 돌리는 듯이 성형을 해볼 수도 있고, 만들어진 작품을 가마에 넣어 굽기도 한다. 불에 구워져 나온 작품은 자동으로 가상의 작업실 선반에 놓이게 되어 아이들은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단 몇 분 만에 배우게 된다. 이 어린이 공방에는 움직이지는 않지만 진짜 물레도 있고, 세라믹 컬러판도 다 벽에 붙어 있다. 정말 내가 몇 달 전에 배우러 다니던 도자기 교실과 똑같이 만들어놨다. 단지 아이들은 손에 흙을 묻히지 않을 뿐 도자기 작가가 된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자기 작품이 불에 구워져 나오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완성된 작품은 가상의 작업실 선반에 놓이게 된다.


이 외에도 윤서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좋아할 바닷속 체험 공간. 이건 설치미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저 공간 안에 들어가면 음악, 소리, 빛, 물체의 움직임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입구에 준비되어있는 물안경을 쓰고 마치 바닷속을 유영하듯이 공간을 탐험한다. 한쪽에는 병뚜껑, 고무줄, 플라스틱 통 등 생활하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활용품들이 종류별로 쌓여있어서 아이들은 이런 재료들을 붙이고, 꼬고, 접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낸다.



아이와 미술관을 갔다가 밖으로 나오니 아침보다 훨씬 더 더워졌다. 분명 구글맵에는 미술관에서 호텔까지의 거리가 20분이라고 했는데 유모차를 끌고 가니까 한 시간은 더 걸렸다. 시카고 추위를 피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싱가포르의 더위도 만만치 않았다. 왜 대낮 길거리에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 이제야 알았다. 두 번째 목적지를 검색하다가 그냥 아이와 얼른 호텔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긴 낮잠을 잤다. 저녁 6시가 다 되어 난 겨우 눈을 뜨고 아이는 아직도 한잠이다. 밖은 여전히 해가 쨍쨍하다. 추운 겨울 나라에서 갑자기 더운 한여름의 나라로 왔으니 우리 몸도 이제 이 곳에 맞춰질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거겠지. 내일부터는 좀 더 요령있게 아이와 다녀야겠다. 다시 초보 싱가포르 육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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