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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an 12. 2019

싱가포르 숲 속 놀이터를 찾아서

어젯밤도 새벽 늦게까지 시차 때문에 잠을 못 자다가 아침이 가까워져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는 유럽에서 열 시간 넘게 비행기 타고 와서 바로 집에 들어가 샤워하고 출근을 해도 멀쩡했는데, 이제는 도무지 이 시차가  언제쯤 적응될는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 싱가포르 날씨는 웬일인지 선선했다. 아이의 성화에 눈을 반쯤 뜬 채 야외 수영장에 따라나갔는데, 바람도 꽤 쌀쌀하고 수영장 물은 너무 차가워서 금방 아이를 물에서 빼내서 방으로 올라왔다. 이왕 이렇게 눈뜬 거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지내는 마리나 배이 지역은 건물들이 지하로 대부분 연결이 되어있어서 우리는 지하 세계를 탐험해보기로 했다.



몇 개의 크고 작은 오피스 건물과 쇼핑몰을 지나니 지하철로 연결이 되었다. 지하철 광고판에 싱가포르의 주요 관광지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이가 그중에서 재밌는 걸 발견했나 보다. 싱가포르의 가장 북쪽, 그러니까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국경 근처에 있는 Admiralty Park에 커다란 놀이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안 그래도 어제 싱가포르에서 아이와 함께 하기 좋은 활동에 대한 기사를 찾다가 그 놀이터에 대한 소개글을 본 기억이 있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우리가 있는 곳은 싱가포르의 가장 남쪽, 그리고 그 놀이터는 가장 북쪽에 있어서 족히 지하철 타는 시간만 한 시간 넘게 걸릴 거리였다.  "그래, 이렇게 지하철역까지 왔으니, 오늘은 우리 숲 속 놀이터에 가볼까?" 그렇게 우리는 지하철 티켓을 사서 북쪽으로 향했다.



Raffles Place역에서 시작된 우리의 지하철 여행은 가도 가도 끝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다운타운에 있는 역들이야 거리가 짧아서 금방 금방 나오지만, 점점 시내에서 멀어질수록 역간 거리도 멀었다. 한참을 갔다고 생각했는데도 다시 몇 정거장 남았나 세어보면 열 정거장도 넘게 남았다. 도심 밖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달라지는데 점점 자연도 보이고, 평범한 싱가포르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울창한 정글 같은 숲도 나오고, 큰 호수도 나오고, 우리나라처럼 가정집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 상가엔 각종 학원들 간판이 빼곡히 달려있었다. 하나 둘 승객들이 내리고 거의 종착역을 향해갈 때쯤 우리의 역이 나왔다. 이름도 아름다운 Woodlands 역.



우드랜드 역에서 놀이터가 있는 Admiralty 공원까지는 한 15분 정도 걸어야 된다. 물론 구글맵상 이야기다. 아이는 언제나처럼 꽃도 따고 빙글빙글 춤도 추면서 30분 넘게 걸려 공원에 도착했다. 아침과 다르게 날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어 아이에게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짜증 섞인 말투로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던, 고작 놀이터에 가기 위해 두 시간이 걸려 오는 일을 기꺼이 하는 게 다 아이와 내가 재밌는 추억 만들자고 한 일 아니었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점점 등 뒤로 뜨거워지는 태양에 마음이 조급 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도착한 Admiralty 공원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깨끗하고 여유로웠다. 듣던 대로 놀이터 시설이 정말 훌륭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작은 언덕을 깎지 않고 그대로 살려 3층 높이에서부터 내려올 수 있는 미끄럼틀도 있고 마치 땅 속 굴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미끄럼틀도 있었다. 오랜만에 놀이터에 온 아이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며 방방 뛰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탈 수 있는 그네도 있었는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런 그네를 본 적이 없는 이런 유니버설 디자인의 놀이터가 싱가포르에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정오가 지나 무더위에 땅 온도도 달아오르는 시간, 오르락내리락 놀이터를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는 더 이상 더위에 지쳐 놀기 힘들어졌는지 오늘은 그만 집에 가고 다음에 다시 오자고 했다. 아마도 또래 친구가 한 두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혼자서 이 땡볕에 노는 건 좀 힘들었나 보다. 문득 칼바람 부는 시카고 겨울, 유치원 끝나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노느라 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떼쓰던 아이 모습이 생각났다. 얼른 아이를 다시 학교에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도 좋지만, 이제 아이는 뜨거운 무더위도, 무시무시한 추위도 함께 잊어버릴 정도로 재밌게 같이 놀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 나이가 된 것 같다.



새로 옮긴 센토사의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아이와 나는 테라스에 있는 야외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연주 소리와 달콤한 바비큐 냄새, 그리고 부드러운 바람에 잠이 깨어 눈을 떠보니 석양이 반쯤 지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지려고 하는 센토사 코브 마을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 밤도 제시간에 잠이 들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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