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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an 14. 2019

싱가포르 미술 수업엔 특별한 것이 있다





난 지금 막 아이를 싱가포르 미술 학원에 들여놓고 잠깐의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기고 있다. 뭐 대단한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니고 아이가 다니는 미술 학원 상가 카페에 앉아서 책장을 넘기다 이렇게 브런치에 끄적끄적 글을 쓰고 있다. 지난 9월에 와서 우연히 발견한 이 미술 학원은 나의 싱가포르 육아 생활에 단비 같은 도움을 주는 고마운 곳이다.



이번 주에 새로 옮긴 Bugis 역 호텔에서 몇 정거장만 오면 미술 학원 상가가 있는 Botanic Garden 역이 나온다. 몇 달 만에 다시 왔는데도 아이는 이 곳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 여기가 내가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는데, 어떻게 알았어?” 얼마 전에 싱가포르에서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예전에 다니던 미술 수업이라고 말하던 아이는 이 건물 앞에 도착하자마자 날아갈 듯이 기뻐하며 뛰어 들어갔다.


미술 수업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다시 올 줄 몰랐던, 그리웠던 미술학원 상가


아이가 말도 잘 안 통하는 싱가포르 미술 학원을 이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 미술 학원은 나이대별로 수업 내용이 다르지만 기본적인 수업 형식은 비슷하다. 우선 수업 시작 전에 15분 정도 미리 와서 그 날 수업을 받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아이들은 블록 놀이도 하고 자석 놀이도 하면서 공간에 익숙해질 시간을 갖는다. 수업 내용과는 상관이 없다.



그 다음은 수업이 시작되는 공간으로 이동해서 각자 앞치마를 입고 수업 준비를 한다. 선생님은 잭슨 폴록이나 피카소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작품의 특징을 아이들에게 소개해준다. 아이들은 그 작품에서 배운 형식으로, 어떤 날은 점묘화를, 어떤 날은 판화를, 어떤 날은 물감 뿌리기를 하면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든다.



한 시간 동안 만든 작품은 액자에 담아줘서 아이들은 멋진 미술 작품 하나씩을 품에 안게 된다. 미술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갤러리 타임. 부모들이 아이들을 픽업하러 올 때 그냥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교실 안으로 모두 들어와 그 날 작품을 감상한다. 아이들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오늘 배운 작가에 대해서 선생님의 몇 가지 질문에 대답도 하고, 자기 작품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하는 시간을 갖는다. 관람객들의 큰 물개 박수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오는 아이의 표정엔 자신감이 가득 차있다.


사실 내가 아이의 미술 실력을 아는데 미술 학원에서 만들어오는 작품을 보면 몇 단계 레벨업된 작품을 완성시켜 오는 날도 있다. 특히 미국에서 유치원을 다니는 만 세 살 아이가 집에 가져오는 그림은 기껏해야 디즈니 색칠 공부 정도인데, 그거에 비하면 이건 같은 아이가 한 거 맞나 싶을 정도이다. 아마도 한국 부모들보다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못하지 않을 싱가포르 부모들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한 타협점이겠지? 미술 학원에서조차 쭉쭉 진도 빼기를 좋아할 싱가포르판 SKY 캐슬 부모들의 모습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고갱의 정물화 오마쥬


오늘 아이는 고갱의 정물화에 대해서 배웠다. 꼴라쥬를 하고, 고갱의 오렌지색으로 과일을 물들이고, 소금을 뿌려 질감을 표현했다. 소재와 재료는 모두 같지만 아이들의 작품엔 자기들만의 성격과 좋아하는 색, 감정이 담겨있다. 아이가 완성한 작품 하나엔 한 시간 동안 엄청 즐거워했을 아이 표정이 담겨 있다. 그건 어떤 비싼 작품보다도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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