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 운행하는 진짜 기차 이야기
"진짜 아이들이 기차에서 일을 한다고? 오늘은 1월 2일인데 설마 문을 열었겠어? 어린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거 UN 아동 권리 협약에 걸리는 거 아닌가?"
부다페스트에 진짜 아이들이 운행하는 기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그 기차를 타러 가는 내내 난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초등학생들이 운영하는 기차역이라니. 그것도 새해 바로 다음 날인 1월 2일 대낮에 아이들이 기차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사실 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 부다페스트 어린이 기차는 시내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우린 이 곳을 가기 위해서 지하철과 버스를 연달아 2번 갈아타고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해서도 인적이 드문 산길을 따라 10분쯤 걸었을까, 왠지 길을 잘못 든 거 아닐까 싶었을 때야 저 멀리 기찻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난 당연히 문을 닫았겠거니 생각하고 기차역 구경이나 하고 돌아가야지 싶었다. 더 가까이 걸어가니까 파란색 기차역이 보이기 시작했고, 정말 기차가 서 있었다. 기차역엔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손님들도 멀리서 보였다. 가까이에 다가가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기차역의 모든 직원들은 정말로 제복을 갖춰 입은 어린아이들이었다.
난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보고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주 어린아이들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중학생은 안되어 보이는 목소리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아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기차역에 도착해서 서성이자 앳된 표정의 어린이 승무원이 오더니 기차를 타러 왔는지, 그렇다면 기차표를 먼저 들어가서 사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기차 티켓 판매하는 곳을 갔는데 그곳에도 어린이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기차표를 판매하고 있었다. 어린이 티켓 판매원이 앉아있는 의자 뒷 쪽으로 사무실이 보였는데, 한두 명의 어른들이 서있는 것이 보였는데, 사실 그들은 딱히 역할이 있어 보이지 않고, 아이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길잡이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부다페스트의 어린이 기차(Gyermekvasút)는 지금은 이 도시의 명물이 되었지만, 사실 그 출발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시작한다. 당시 전쟁에 나가기 위해 사람이 부족했던 헝가리는 어린 학생들도 소년병이란 이름으로 전쟁에 동원을 시켰는데, 그들의 역할 중 하나가 이 기차 운영이었다. 지금 이 어린이들은 그때 그 소년병들이 하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는데, 10~14세 사이의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실 이 기차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 좀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도 안 가고 일을 하면 어쩌나. 2차 세계 대전 소년병들이 하던 일을 하도록 놔두는 부모는 대체 누군가' 등등. 그런데 자세히 알아보니 이 아이들이 그냥 보통 아이들은 아니었다.
부다페스트에서 이 어린이 기차에서 근무를 하는 건 수많은 아이들의 소원 중 하나이다. 매년 많은 아이들이 지원을 하지만 모두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기차역 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약 4개월 과정의 교육을 받고, 실제 기차 공무원들이 보는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모든 지원은 각 학교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받아온 아이들만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돈을 받고 일하지 않는 대신 근무하는 날은 학교를 가지 않아도 대체 수업으로 인정이 된다. 한 달에 최대 2번 기차역 근무를 할 수 있다. 아이들은 티켓 판매원, 승객 안전 요원, 기념품 판매원 등 기차역 내의 다양한 역할들을 모두 번갈아 경험하게 된다. 부다페스트 아이들에게 기차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대단한 자부심이자, 보통의 아이들은 그 시기에 경험하지 못할 큰 교육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괜히 기차 타기 전에 마음이 짠하고 불편했던 것들이 다 풀어졌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아이들이 이런 방식으로도 자기 땅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기차가 천천히 플랫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까 승객들이 안전하게 탔는지 살펴주던 어린이 역무원 둘이 떠나는 기차를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돈을 벌기 위함도 아니고, 단순한 어린이 직업 체험도 아닌, 이 특별한 부다페스트 어린이 기차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게 맞는 방향일까에 대한 나의 고민에 작은 해답을 주었다. 이 세상 최고 좋은 것들만 고르고 골라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내주려고 하기보다는, 작은 것일지라도 아이 스스로 뭔가를 해볼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더 맞는 방향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특별한 기차역의 아이들이 잘 자란 어른으로 커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도 아이들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http://visitbudapest.travel/activities/fun-things-to-do/childrens-railway/
만약 아이와 함께 부다페스트를 간다면, 꼭 한 번 해보면 좋을 경험이다. 아이들이 운영하는 진짜 기차는 마치 동화 속에 들어간 듯한 환상과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또 스스로 폭넓은 경험을 찾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로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숲 속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아주 오래된 기차라 사실 어딘가를 가기 위한 이동 수단으로의 목적은 없지만, 7개의 기차역이 하나하나 특색이 있고 경치도 좋아 타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