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미슐랭 레스토랑 알크론 & 라 데구스테이션
이번 프라하 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바로 '미식'이었어요. 모든 여행이 그렇듯, 여행에서 먹거리는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죠. 줄 서서 먹는 로컬 피플들의 국숫집이나, 달콤한 길거리 간식 같은 거 말이에요. 하지만 이번 여행의 미식 탐험은 좀 특별했어요. 바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가보기로 했거든요. 제 입맛은 한국 토종이라 지금껏 외국에서 감히 파인 다이닝을 시도해볼 생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죠.
프라하에는 총 3개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있는데 세 곳 모두 원스타를 받았어요. 저희는 그 세 곳 중 두 곳을 예약하고, 한 곳은 저희가 묵었던 아우구스틴 호텔의 레스토랑을 가보기로 했어요. 크리스마스 기간이라 한참 전에 예약을 했는데도 원하는 시간 예약이 힘들었지만 나름 선방했죠.
1. Alcron
제일 먼저 간 곳은 크리스마스이브 점심에 다녀온 알크론(Alcron). 래디슨 블루 호텔 안에 있는 알크론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아주 작아서 놀랐어요. 테이블이 8개 정도 있는 곳인데, 벽면이 1920년대 뉴욕 아르데코 시대의 이미지로 꾸며져 있었죠. 모던하거나 세련된 이미지라기보다는 7~8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이태리 식당이었던 을지로 라 칸티나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직원들은 그 어떤 식당에서보다 가족적인 분위기였고, 디저트가 나온 후에는 셰프가 나와서 테이블 별로 인사를 하며 얘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이 곳에서 특히 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뮤즈 부쉬였어요. 3~4가지 정도가 나왔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플레이팅한 것이 인상적이었죠. 마치 한겨울 숲 속을 산책하며 발견할 법한 소재들로 꾸민 플레이팅이 참 아름다웠어요. 물론 맛도 좋았고요. 어렸을 때 엄마, 아빠와 숲 속에서 솔방울이랑 마른 낙엽 등을 주어와 흰 종이에 풀로 붙이며 놀던 것이 생각났어요. 아마 셰프도 그런 추억을 떠올리며 이런 작품을 만든 거겠죠? 이런 걸 보면 어린 시절에 경험한 추억들은 다 잊히는 것 같아도 다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그 사람의 한 부분이 되는 것 같아요.
춥고 스산한 프라하 날씨에 몸을 덥혀줄 진한 맛의 랍스터 비스크로 참 맛있었고요, 튜나 한 가지 재료로 여러 가지 식감을 낸 튜나 타르타르도 입에서 살살 녹아 눈 깜짝할 새에 다 먹어버렸어요. 비록 전 도전 실패한 메뉴이긴 하지만, 사슴 고기 스테이크도 함께 나온 소스와 잘 어우러져 인상적이었다고 하구요.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 식사를 다 마치고 나니 웨이터가 와서 남편에게는 계산서를, 제게는 여기서 직접 구운 마카롱 박스를 선물로 주었어요. 예전에 베니스의 일치프리아니 호텔에서는 메뉴를 줄 때 제게는 가격이 쓰여있지 않은 메뉴판을 주고, 남편에게만 가격이 나와있는 메뉴판을 준 적이 있어요. 메뉴판을 서로 바꿔보면 없어 보일까 봐 남편이 자연스럽게 대화하듯 제게 한국말로 가격을 주욱 불러주던 웃픈 추억이 떠오르는데요, 이 또한 참 재밌는 문화지요. 아마도 요즘 시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럽의 독특한 문화라고 할 수 있겠죠?
2. La degustation
http://www.ladegustation.cz/en/
그다음으로 간 곳은 '라 데구스테이션(혹은 라 데구스타시옹)'이에요. 이곳의 특징은 각 코스 메뉴에 어울리는 와인 페어링은 물론 술을 못 먹는 분들을 위해 주스 페어링 서비스도 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면 까만색 편지 봉투를 하나 주는데 열어보면 그 날의 메뉴와 각 와인 이름과 설명이 자세하게 나와있어요. 마치 파티에 초대를 받은 참석자 명단을 받는 느낌이에요. 이 곳은 알크론보다 좀 더 인기가 있어서 그런지 예약 잡기가 힘들어서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자리에 앉았죠. 저희가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10시가 다 되어서도 계속 새로운 손님들이 자리를 잡았어요.
여긴 정식 메뉴도 맛있지만 그전에 나오는 애피타이저 핑거푸드가 하나하나 맛있었어요. 특히 좋은 재료의 식감을 잘 살린 메뉴들이 좋았는데 예를 들어 향 좋은 트러플을 올린 파스타, 바삭함과 고소함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소고기 타르타르,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의 달팽이 요리 등이 있었지요. 사실 제가 평소에 잘 안 먹는 서양 요리 재료들에 거부감이 있는 편인데, 그런 저도 그릇을 싹싹 비울 정도로 유니버셜한 맛이었다고나 할까요!
특히 이 곳은 오픈 키친이라 셰프가 직접 플레이팅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조명을 받아서 그런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하죠? 식당 불이 꺼진 후 저 셰프들은 저 주방 뒤에 모여서 어떤 야식을 만들어먹을지가 정말 궁금해졌답니다. 아무리 셰프들이라도, 우리에게 서빙되었던 눈이 즐거운 아름다운 음식보다, 지친 하루를 달래주는 소울 푸드는 따로 있을 거예요!
3. Augustine
http://www.augustine-restaurant.cz/
미슐랭 스타는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디너에 갔던 곳은 바로 저희가 묵었던 아우구스틴 호텔 1층에 있는 아우구스틴 레스토랑이었어요. 프라하에서는 나름 유명한 손꼽히는 식당이고, 앞서 얘기한 알크론의 셰프도 이 레스토랑을 추천해주었죠. 이 곳은 14세기에 마구간으로 쓰였던 곳을 레노베이션한 곳이라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요. 이번에 다녀왔던 세 개 식당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편이었죠.
이 날은 크리스마스 코스 메뉴가 정해져 있었고(제가 이것만은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비둘기 요리가 포함되어있는), 또 그 큰 레스토랑에 손님이 가득 있는 날이라서 서버들이 정신없이 그릇을 나르고 있었어요. 아마도 평소에 왔으면 좀 더 프라이빗한 분위기에서 더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있었지요. 그래도 탱탱한 식감의 Pike perch 농어구이, 보르드 와인으로 맛을 낸 오묘한 향의 비프 쇼트 립 등은 참 맛있는 크리스마스의 맛이었어요.
아직 제가 많은 미슐랭 레스토랑을 가본건 아니지만, 이번에 몇 군데를 방문해보며 느낀 게 있어요. 바로 미슐랭 스타를 받으려면 맛도 맛이지만 레스토랑의 전체적인 팀워크가 정말 중요하다는 거지요. 예약을 확인해주는 직원부터, 물 잔이 빌 때마다 순식간에 채워주는 직원, 빵가루가 떨어지면 어느 새인가 와서 감쪽같이 치워주는 직원, 해박하고 친절한 와인 소믈리에, 전체적인 식사의 흐림이 잘 이어지게 해 주고 서빙을 할 때마다 메뉴 하나하나를 소개해준 담당 서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셰프까지 말이에요.
특히 저희가 감동받은 부분은 이거였어요. 저희는 라 데구스테이션에 어쩌면 한 살 아기 동반을 해야 될 수도 있는데 가능한지 여부만 이메일로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가니 잊지 않고 여러 명의 직원들이 차례로 와서 아기는 누가 어디서 돌봐주고 있는지 물어봐줬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따뜻한 관심과 배려, 애기 엄마 아빠들에게는 감동 그 자체랍니다.
이제 곧 시카고 우리 집에 돌아가면 삼시세끼 제 손으로 밥을 해야겠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기 식당들에서 밥 먹은 후에, 왠지 요리를 잘 하고 싶다는 욕구가 불끈 불근 생기고 있어요. 이제 이쁜 그릇도 사고, 같은 재료라도 좀 색다르게 손질해보고, 조리해보려고요. 요리를 한다는 거, 그리고 잘 어울리는 플레이팅을 한다는 건, 마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창의적이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이번 미식 여행을 통해 깨달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