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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winkup Jun 30. 2016

당신에게 '사랑'을 드려요

하트를 닮은 다육이, 축전

베란다에 있는 수십 개의 다육이들 중에는 당연히 좀 더 예뻐하고, 편애하고, 애정 하는 다육이가 존재한다. 물론 유일무이한 존재가 있는 건 아니고 간사한 주인 마음이다 보니 이 계절에는 이 녀석이 특별히 예쁘고, 이 시간대에는 이 쪽이 더 사랑스럽고 하는 식으로 애정이 옮겨 다닌다.


하지만 1년 내내, 365일 모든 관심을 자기 쪽으로 돌리려는 녀석이 하나 있다. 관심이 시들해질 만하면 짠! 하고 꽃이 피고, 심드렁해질 만하면 새 식구를 잉태한다고 힘들어하며 봐달라고, 지켜봐 달라고 아우성치는 통에 신경을 끊을 수가 없다. 결정적으로 이 녀석은, 과연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바로 그 하 모양이다. 진짜라니깐?



통통하고 싱그러운 연두색의 하트 다육이, 축전



축전
코노피튬Conophytum 속의 일종으로 코노피튬은 원래 남아프리카 건조지역에서 자생했다고 한다. 따라서 밤낮의 기온차가 큰 것에 익숙하며 공중 습도가 높은 장마철부터 8월까지는 뿌리가 무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가끔은 차라리 완두콩을 키울까.. 싶기도

다육식물 중에 코노피튬이라는 속이 있고, 그중에 하나가 축전이다. 그러니 축전을 보고 오! 코노피튬! 이라고 해도 되지만, 코노피튬을 보고 오! 축전! 이라고 하는 건 틀렸다는 이야기.


원뿔(cone=conus)+식물(plant=phytum)이라는 어원에서 비롯되었듯이, 코노피튬은 일반적으로 처럼 동그랗고 귀여운 다육이로 기억하면 편하다.


하지만 콩알 닮은 거 몇 개 모아둔 비닐 포트 하나에 1~2만 원씩 하는 건 기본인데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차라리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편이 나은 귀하신 몸이다.


찬 바람 부는 계절엔 귀여운 꽃구경도 가능!

헌데 유독 축전만큼은 다른 코노피튬에 비해 크기도 크고, 모양도 정확한 하트 형태인 것 치고는 몸값이 꽤 저렴한 편이다. 봄날 종로 꽃시장에 나가면 5~6천 원 정도에 구해올 수 있으니까.


축전은 평소에는 매끈한 하트 모양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물을 먹고 싶을 때는 몸에 주름이 생기고 쪼글쪼글한 모습이 된다. 이렇게 온몸으로 자기가 원하는 걸 알려주니 새내기 주인의 마음이 얼마나 편해지는지. 이럴 때는 듬뿍 물을 줘도 좋다. 하지만 다음의 두 가지 예외 상황에서는 주의해야 한다.


하나. 분갈이 직후

분갈이 후에는 뿌리가 몸살을 앓고 있어서 쪼글거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분갈이 후에는 바로 물을 주지 말고 2주 정도 기다렸다가 듬뿍 주거나, 저면관수를 해주면 대부분 정상으로 돌아온다.


둘. 탈피 준비 중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축전은 봄이 되면 몸 안에서 새 생명을 키우기 시작하는데, 이때 본체는 영양을 빼앗기면서 쪼글쪼글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모르고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마냥 "왜 물을 주는데 매끈해지지 않니~"를 외치며 계속 물을 주다가 뿌리가 무르는 바람에 새 생명도 못 본채로 첫 축전을 떠나보내야 했다는 슬픈 이야기. (다육이를 키우다 말고 생명 잉태의 신비와 출산의 고통을 간접 체험하게 될 거란 걸 상상이나 했어야 말이지.)


그러니 지금부터는 - 이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축전이 어떻게 새 식구를 늘리는지 집요하게 관찰한 두 달의 기록을 꺼내 볼까 한다.




봄바람이 불던 4월, 시종일관 균형적 통통함을 유지하던 몸매에 미세한 뱃살이 붙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주름이 지는 녀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앞에만 보지마세요, 뒤에도 있다고요!


한 달을 꼬박 저런 상태로 지내더니 5월 들어서면서 배가 불러오는 게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귀 끝처럼 보이는 부분이 빨갛게 변하는 건, 배 속의 새 생명에게 영양분을 뺏기고 있다는 증거란다.

왠지 고양이 얼굴처럼 귀엽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축전(임신 체질인가)


배가 불러오는 만큼 얼굴색도 노랗게 변했다. 점점 불러오는 배 때문에 힘들어하는 임산부 친구를 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아주 미세하게 열린 틈 사이로 새 얼굴들이 살짝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이 상태로 열흘을 보내는 축전을 보며 그 주인은 조바심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임신한 부인을 둔 남편의 심정으로 이것저것 정보를 찾다 보니, '탈피 중에 물을 주지 말라'는 말은 아직 잉태 시기의 이야기고, 어느 정도 안에서 형태를 갖추고 기존 얼굴이 껍질처럼 변했을 정도면 안에서 힘을 낼 수 있도록 물을 줘도 된다고 한다.


다행히 장마 오기 직전의 6월 어느 밤, 바람이 쌩쌩 부는 날을 골라 듬뿍 물을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베란다에서 나를 반기는 그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갑다 새 얼굴!


물 마시고 힘이 좀 붙었는지 껍질이 투두둑 벗겨지기 시작한다. 헐크가 찢은 옷깃처럼, 무참히(!) 벌어져 버린 구엽(舊葉 오래된 잎). 그리고 뽀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신엽(新葉 새로 돋아난 잎). 드디어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역사적인 순간.


바람에 잘 마른 껍질을 떼어내고 나니, 드디어 뽀얀 새 얼굴들이 제대로 세상 구경을 시작한다. 하나가 둘이 되소, 셋이 되어 식구가 대폭 늘어났다. 축전은 무사히 올해의 탈피를 마쳤다.



Epliogue.

2015년 1월에 들어온 신입은 2015년 6월 이 베란다에서 성공적인 첫 탈피를 끝냈다.


그리고 1년 후인 2016년 6월, 두 번째 탈피를 무사히 끝내고 베란다를 온통 '사랑'으로 채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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